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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단어 수집가

녹는점: 시를 쓰며 가장 자주 도달하는 상태. 내게 녹는다는 건 부드러움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 물속에서 녹고 있는 물고기. 한낮의 태양 아래, 아이스크림보다 먼저 손이 녹아 버린다면? 눈사람에게 허락된 마지막 밤. 흰 사슴의 눈동자가 호수로 변하는 순간.
_ 안희연, 『단어의 집』(한겨레출판, 202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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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이 시인의 주요 임무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시인이 단어 수집가로 살아간다.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하므로, 민감하게 단어를 모으고 강박적으로 의미를 되새김하는 이 작업은 일종의 정거장이다.

안희연 시인이 모으고, 다시 뜻을 풀이한 이 사전(私典)은 일찍이 김소연 시인이 『마음 사전』이나 『시옷의 세계』에서 보여 준 단어에 대한 열정만큼 흥미롭다.

안희연의 산문에는 가냘픈 충동이 나타나는데,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삶을 구체성 속에서, 자신의 감성적 질서 안에서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는 어여쁜 몸짓이다. 아마도 이 책이 대중성을 획득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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