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는 사람. 무조건 샅샅이 읽는 사람.
완독가는 글자를 읽는다. 단어나 문장이 아닌 글자를. 마침표와 쉼표를 포함해 종이에 배열된 기호를 빠짐없이 읽는다. 모든 기호에 한 번 이상 시선이 닿게 하는 것. 그것이 완독가의 목표다.
완독가는 독서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다. 유익한 정보를 습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재미라든가 쓸모 같은 것은 완독가의 시야에 없다. 완독가는 완독이라는 행위를 위해 책을 손에 든다. (중략)
완독가는 등반가와 다르다. 차라리 보도블록의 금을 모조리 밟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책에 꽂힌 사람. 완독이 끝나도 성취감이나 희열은 따라오지 않는다. 책을 덮으면 모래벌판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든다.
_ 신해욱, 『창밖을 본다』(문학과지성사, 202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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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신해욱은 이 글에서 독서의 새로운 기술을 발굴한다. 완독. 책을 읽지 않고 밟는 것.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책 하나를 모조리 읽는 것.
특히, “비문과 오역이 남발되어 문맥을 파악하기 어려운 번역서, 세로 조판에 글자가 깨알 같은 옛날 도서, 인명과 지명이 낯선 길고 긴 대하소설 같은 것들”을, 즉 “읽히지 않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책”을, “읽기 싫은 꺼림칙한 책”을, “끝까지.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읽는 것.
이럴 때 읽기는 시 쓰기와,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탐구와 동등한 행위가 되지 않을까.
친구한테 공책을 선물받으면서 시작한, 그 공백을 채울 수 없는 괴로운 날들을, 읽기로써 보충하면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일기 같은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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