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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차별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올해 편집자들이 가장 사랑한 책 중 하나가 『마이너 필링스』(마티 펴냄)이다. 재미교포 2세인 캐시 박 홍이 쓴 이 책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겪는 인종차별 경험과 그로 인해 뒤틀리는 자아에 관한 에세이다. 2020년 미국 출간 직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자서전 형태로 쓰인 이 책에서 저자는 백인 우월주의 국가에서 태어나서 느껴온 더러운 기분을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언어로 그려내서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자는 그 기분을 마이너 필링(minor feeling)라고 부른다. 소수적 감정, 즉 사회적 차별 탓에 소수자가 느끼는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이다. 소수자가 이 기분을 느낄 때 다수자는 이를 ‘지나친 예민함’이나 ‘과민반응’ 등으로 폄훼하면서 사소한 것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상처 입은 사람이 비난받는 적반하장이 벌어지고, 억울함을 견디며 살다 보면 소수자는 자신이 잘못 느낀 건 아닌지 하고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생긴다. 이러한 감각 훼손 상태는 결국 “피해망상, 수치심, 짜증, 우울” 등으로 번져간다. 마음에 깊은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항상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던 저자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더듬으면서 그 원인이 소수 감정에 있음을 깨닫고, 그 뿌리가 1800년대 중반 중국인 이민자에 대한 인종주의 공격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흑인 혐오만큼이나 아시아계 혐오 역시 오래고 꾸준했다.
저자는 서툰 영어를 무기 삼아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시로 표현하면서 얻어낸 치유 경험과 전복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전하기도 한다. 유머와 언어 파괴를 통해 백인이 지배하는 질서를 망가뜨리는 이 부분은 소수자들이 내면의 균열을 이기고 주류에 저항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무척 시사적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아시아계 정체성은 소수자 감정 표현에 족쇄로 작용한다. 흑백 차별이 노골적이라면, 아시아계 차별은 은근하다. 아시아계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 백인들은 “왜 화를 내! 다음은 너희가 백인이 될 차례야!”라면서 틀어막는다.
‘다음’이란 거짓말에 홀린 아시아계는 일만 열심히 하면 차별은 없다는 백인의 서사를 받아들이고, 백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다른 인종을 무시하고, 백인들 마음에 들도록 과도하게 행동을 교정하면서 꼭두각시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아시아계의 근면은 평등과 존엄을 절대 보상받지 못한다. 코로나19 이후 드러났듯, 인종주의의 희생양으로 굴욕을 견디는 삶이 이어질 뿐이다.
억눌린 언어는 아시아계의 가슴에 쌓여서 울화가 되고, 답답한 현실은 인종적 자기혐오를 부른다. 백인 미달인 자신을 비난하고 구박하면서 자기 파괴의 충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저자가 한걸음 물러서 ‘근처에서 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소수자 감정을 분석해 털어놓는 이유는 연대를 위해서다. 백인한테 배제당하고 흑인한테 외면당하는 박쥐 신세를 벗어나 아시아계가 흑인, 난민, 아메리카 원주민 등 모든 비백인과 힘을 합쳐 낡은 인종 서사를 갈아치우고, 자신의 삶을 백인 구미에 맞추는 보편성을 파괴하고 찢어버리자는 것이다.
소수자 감정이라는 더러운 기분은 미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다수의 강자가 소수의 약자를 억압하는 모든 사회에서 차별 경험은 내면을 파고들어 자아를 일그러뜨린다.
물론 한국 사회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접어들어 인종차별 문제가 확연해진 데다가 성별, 지역, 학력, 나이, 신분 등에 따른 차별도 일상적으로 흔하다.
미국 사회에서 보듯이, 부당한 차별을 방치하면 우울과 분노, 범죄와 폭력을 부른다. 소수자 차별 금지 등 우리 안의 인종주의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노시내 옮김(마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