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사이비 정치가 사람들의 감수성을 고취함으로써 그들을 오히려 어린애로 만들어 버린 데 대해 ‘성인언어’는 어린애처럼 좋은 생각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하여, 다른 사람이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성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고려하는 언어의 성숙이다.
_ 로베르트 팔러, <성인 언어>, 이은지 옮김(도서출판 b,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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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언제부터인지 출판에도 '나'를 주어로 한 책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나'의 고통을 전시하고, '나'의 불편함을 표시하고, '나'의 능력을 몰라 준다는 칭얼대는 어린이 같은 호소들...이 대량으로 복제되고 있다.
'나'에서 '우리'로 크게 비약하지 못한 문집의 언어들이 여기저기 범람한다. 자기 언어를 타자의 언어로 만들지 못하는 무능이 출판 같은 공적 언어의 영역을 장악하면, 세상은 아우성 치는 고통과 흐느끼는 신음 속에서 길을 잃어 버린다.
계몽은 어린아이의 언어(미성숙)를 어른의 언어로 바꾸어 가려는 기획이다. 후자의 언어에 깃든 폭력성을 충분히 의식하되, 여전히 더 나은 언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데에서 어떤 길이 열린다. 출판의 언어가, 즉 책의 세계가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은 어른의 언어를 쓰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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