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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소출판 인플레이션 - 발행종수 8만 종, 실적 출판사 8000개 시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8년 출판산업동향 보고서’가 발표됐다. 한국 출판산업의 상태 변화 추이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공식 자료에 해당한다. 국민이 출판 실상을 알 수 있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게 정부 산하기관의 임무일 터인데, 이상하게도 아무 보도자료 없이 자료실에만 올려 두었기에 내려받아 한 해 동안 출판산업의 변화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2018년 출판산업은 한마디로 ‘소출판 인플레이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체 산업 규모는 단행본 1조 1698억 원, 교육출판 2조 8244억 원 등 3조 9982억 원으로, 전년 대비 0.1% 상승에 그쳤다. 오래전부터 시장규모는 정체와 하향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에 반해 해마다 출판사 숫자는 늘어나고 발행 종수는 폭증 중이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등록 출판사는 전년에 비해 6.3% 늘어난 5만 9306개다. 2013년 4만 4148개였으니 5년 만에 34.2%나 증가했다. 예전엔 출판 등록만 해 놓은 ‘좀비 출판사’가 많았지만, 최근엔 무실적 출판사가 줄어드는 추세다. 2018년 실적 출판사는 8058개로, 한국 출판 역사상 처음 8000대에 진입했다. 2017년에 비해 13.6%, 2013년과 비교하면 40.4% 증가했다. 전자책, 만화, 잡지 등을 제외한 발행 종수도 8만 1890종으로 2017년 8만 130종 대비 2.2% 늘어나 또다시 8만 종을 넘어섰다.

한국출판, 발행종수 8만 종, 실적 출판사 8000개 시대로 진입하다



101종 이상 발행 출판사는 121개로, 전년에 비해 9개사가 늘었다. 10종 이하 발행 출판사 역시 6625개로 1년 만에 259개 증가했다. 둘의 동시 증가는 출판 양극화의 한 지표로 읽힌다. 각각 연매출 50억 원 이상 대형 출판사와 5억 원 이하 소출판사의 평균 발행 종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형 출판사(31~50종 발행) 숫자가 221개에서 212개로, 중대형 출판사(51~100종) 숫자가 159개에서 150개로 줄어든 것도 좋지 않다. 시장 규모는 그대로인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종당 평균 판매량이 줄어드는 바람에 인건비, 마케팅비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지면서 규모의 경제를 감당하기 힘든 중(대)형 출판사가 약해지고, 출판사 세포분열이 심해지는 징후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이 어려운데도 도전이 줄지 않고 발행 종수가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 즉 소출판 대팽창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책을 만들려는 출판인의 열정 덕분이다. 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네 가지 현실적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려 독자를 확보하는 ‘누구나 저자, 모두가 출판사 시대’의 개막, 교정교열·디자인·인쇄 및 제작·영업 등 생산 및 영업의 서비스화, 인터넷서점이나 대형 체인서점의 판매 비중이 높아지는 등 단행본 유통 용이성의 증가, 텀블벅·와디즈 등 소셜 펀딩 업체를 활용한 독자 직접 투자의 활성화 등이다.

출판산업 전반의 자본 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환경은 소출판사들이 작지만 강한 책으로 초니치(niche) 시장을 공략하는 등 오히려 종 다양성을 늘리면서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을 택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물론 중대형 출판사는 몸집 때문에 이 길을 택하기 힘들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지금껏 없었던 제품이나 시장을 개척하는 등 사업 자체를 혁신하는 길로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규모의 위축 또는 사업 전환의 유혹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소출판 인플레이션은 그 자체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는 출판인들이 주변에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따라서 출판인들의 열의가 사그라지기 전에 독자 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독자 개발(수요 창출)에 나서야 한다. 도서관 장서량을 늘리는 등 국가적 지원 시스템이 구축되고, 출판사가 모험 투자에 나설 때 도움받을 출판펀드 사업이 조속히 시행되어 혁신의 힘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출판 종합정보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책의 실제 판매량 등을 알지 못하는 깜깜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출판 단체의 무관심이 안타깝다. 내년에는 무엇보다 이 보고서 숫자 자체가 추정에서 확정으로 혁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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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문화마당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