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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프리랜서 전문가와 잘 일하는 법




때때로 전자우편, 문자, 메신저 등으로 불쑥 강연이나 원고를 청탁받는다. 나로서는 이런 접촉 방식이 다소 어색하다. 신입 편집자 시절, 먼저 문자 등을 보내 연락 가능 시간을 확인하고, 대화를 통해 뜻을 전한 후, 실제 청탁을 진행하는 게 글이나 말을 얻는 정중한 예의라고 배운 까닭이다. 


이는 청탁하는 글과 말의 힘을 깊게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고, 글과 말의 빚을 더 무겁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청탁의 예가 곡진할수록, 아무래도 원고나 강연에 더 신경 쓰게 마련이니 말이다.


또 청탁할 때에는 원고료나 강연료, 지급 방법, 지급 시기 등을 정확히 밝히는 게 당연하다. 청탁받는 이들은 대개 프리랜서 전문가다. 이들한테 원고나 강연은 가욋일이 아니라 먹고삶에 이어지는 노동이다. 내용을 살펴 청탁을 받을지 말지 정하는 일 자체가 벌써 기회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청탁서에 원고료나 강연료 등이 적혀 있지 않다면, 청탁을 수락한 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같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경우, 원고료 등의 대가가 사회 통념보다 적은 경우가 경험적으로 많다. 사회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일이 아니면 당연히 거절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도 시간 쓰는 대가를 어느 정도는 따질 수밖에 없으니, 결국 원고료나 강연료를 묻고서야 마음을 정하게 된다. 차라리 수락 여부를 빨리 판단할 수 있도록 청탁자가 먼저 배려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정부, 언론, 학교, 기업, 도서관 등은 원고료, 출연료, 강연료를 해마다 적절히 인상해야 한다. 돌아다녀 보면 정기적으로 일을 내보내는데도 몇 년씩 방치하는 곳이 많다. 이러면 대가가 너무 적어져 나중에는 청탁 자체가 일종의 모욕이 된다. 담당자는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좋은 사람을 청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감정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럴 이유가 별로 없지 않은가.


게다가 프리랜서 전문가들은 '가치 있는 일이니 재능 기부' 논리를 가장 질색한다. 일의 진정한 가치는 청탁자가 아니라 그 일을 할 사람이 정한다. 차라리 그 일의 내용과 의미를 잘 정리해 전한 후, 수락 여부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나의 경우, 독서 관련 청탁은 가능하면 수락하고, 주관 단체에 따라 받는 대가도 다르며, 마음 내키면 내 비용을 치르면서도 진행하는 편이다.


대단히 무례한 이들도 있다. 다짜고짜 만남부터 요구하는 경우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고 청탁할지 정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이 경우, 나 말고도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니, 그분하고 일하는 게 낫다.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떠보는 만남을 요청하면 곧장 거절한다. 


낯선 이들이 식사나 한번 하자는 말을 건네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멋모르고 몇 번 만났는데, 지금은 안 되겠다 싶어서 시간당 상담 비용 등을 청구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면 대부분 연락 두절이다. 심지어 친한 사이라도 일을 위해서 만났다면, 일정한 비용을 주고받는 게 낫다. 프리랜서 전문가의 시간은 밥이 아니라 돈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기 처지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남의 살림을 생각해서 말하는 것. 이것이 청탁의 예의이고, 프리랜서 전문가와 잘 일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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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칼럼, 조금 수정해서 올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