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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민주적 불평등

세인트폴은 변두리의 작은 학교다. 전체 학생 수 500명. 미국 뉴햄프셔 주 외곽의 후미진 곳에 있다. 그러나 이 학교의 한 해 학비는 5000만원에 가깝다. 부모가 내야 하는 수억 원의 기부금은 별도다. 서민들은 입학을 상상조차 못할 이 학교 학생들은 상당수 아이비리그에 입학한다. 미국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셈이다.

졸업생이었던 세이머스 라만 칸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 연구자’로서 세인트폴의 교사로 취업한 후, 달라진 학생들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물려받은 특권을 과시하면서 별세계 삶을 살던 자기 때의 학생들 모습이 그사이 사라진 것이다.

세이머스 라만 칸, 『특권』, 강예은 옮김(후마니타스, 2019)

칸이 쓴 『특권』(후마니타스)에 따르면, 세인트폴 학생들은 ‘특정한 역사와 취향을 가진 계급’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인식하지 않는다.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누리려는 태도는 철없고 무례한 짓으로 여겨져 교사나 선배의 주의와 경고를 받는다. 태도를 끝내 고치지 못하면 누구라도 엘리트에 부적합하다는 낙인을 받는다. 새로운 엘리트들은 ‘대물림’을 자랑하는 이전의 낡은 특권층과 자신들을 완벽히 차별화한다.

세인트폴은 더 이상 백인 학교가 아니다. 인종적·계급적으로 다양해진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한 방에서 서로 어울린다. 아이들은 계급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인트폴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들과도 전혀 격의 없이 지낸다. 문화적 취향도 흐릿하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고 와서 힙합을 즐기기도 하고, 영문학 고전인 『베오울프』를 읽으면서 대중영화의 고전인 「죠스」도 함께 배운다. 

학생들은 이제 특권을 물려받는 대신 획득한다고 여긴다. “가장 재능 있고 가장 노력하는 개인들의 집합”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들은 늘 열심히 공부하고 누구보다 힘들여 노력한다. 신분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적절히 행동하는 놀라운 개방성을 품성으로 익히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잡종성을 취향으로 길러낸다. 팔방미인인 세인트폴 학생들과 달리, 특정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고, 힙합 등 대중 취향에 치우친 이들은 모자란 사람이다. 이로써 세인트폴은 특권층 학교가 아니라 특권을, 즉 모든 일에 능숙한 능력을 길러주는 학교가 된다.

칸은 세인트폴의 새로운 정책인 능력에 따른 차별화를 ‘민주적 불평등’이라고 부른다. 능력주의가 겉으로 공정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은 대부분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의 부로부터 나왔다. 점심에 뉴욕에서 오페라를 보고 저녁에 기숙사에서 힙합을 들으려면 전용 비행기가 필요하다. 다재다능한 학생들을 길러내려면 학생 일인당 교육비가 일반 학교의 10배는 되어야 한다. 칸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부가 아니라 노력이요, 혈통이 아니라 재능이라고 주장할 때 엘리트들은 허구 속에 있다.”

지난달 28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듣자마자 ‘민주적 불평등’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개인의 수학 능력이 무엇에서 오는가를 묻지 않을 때, 공정은 공정이 아니다.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드러낸 것은 불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학종의 불공정을 수능의 불공정으로 바꾼다고 불평등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또다시 입시는 누더기가 되고 교육 현장은 카오스에 빠지며 학생들은 더욱더 사교육에 뛰어드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