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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나는 사랑한다, 남편과 남자친구 모두를 동시에

 

죽을 때까지 이성 한 사람만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 시대 사랑의 통념을 의심, 

철학자 자기 경험으로 풀어내


“내 남자친구의 아파트를 나와서 남편과 같이 사는 우리 집으로 걸어가는 아침이면, 이 시대와 장소에서 흔히 이해하는 로맨틱한 사랑의 방식과 나 자신의 로맨틱한 사랑 경험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에 대해 이따금 생각에 빠지곤 한다.”

『사랑학 개론』(여문책, 2019)의 첫 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마음과 함께 도발적 호기심이……. 저자 케리 젠킨스는 철학자.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 전통이 엄연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공부했고, 현재 브리티시콜럼비아대학교 철학 교수다. ‘탐구된 고백’은 철학의 전통에 속한다.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는 자기 마음의 미세 지도를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예감했다. 젠킨스 역시 자기경험에 기대어 충격적인 ‘사랑의 형이상학’을 전개한다.

케리 젠킨스, 『사랑학 개론』, 오숙은 옮김(여문책, 2019)

 

젠킨스는 폴리아모리(polyamory)다. poly-는 ‘많다’ ‘다(多)’라는 뜻이고, amory는 ‘사랑’이라는 뜻이니, 폴리아모리는 ‘다자간 연애’, 즉 복수의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남편이 있지만, 남자친구와도 다섯 해째 사랑을 나누고 있다. 젠킨스는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고, 이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 사회에서 이 사랑이 아주 낯선 사랑의 형태라는 점도 안다. 이상하다고 느낄 때 용기를 내 당대의 상식에 도전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 소크라테스의 후예답게 그녀는 우리 시대가 생각하는 사랑의 실체를 철저히 파헤쳐 들어간다.

 

동성애도, 다수와 하는 사랑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 

 

젠킨스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흔히 “사랑, 섹스, 결혼, 번식”을 하나로 이어 붙여 생각한다. 사랑하면 섹스하고, 섹스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방향으로 욕망이 작동한다고 여긴다. 이 ‘자연스러운’ 사랑, 즉 ‘결합 관점’의 귀결은 이성애를 즐기는 ‘두 사람’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핵가족 구조”를 이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구적 이성애 단혼제 사랑”이 이 시대 사랑의 일반모델이고, “로맨틱한 감정”은 그 모델을 작동시키는 열쇠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모델은 안정적이지 않다. 동성애는 더 이상 금지된 사랑도, 낯선 사랑도 아니다. 동성과 이성을 넘나들면서 사랑하는 양성애도 마찬가지다. 영구적이라 여겼던 결혼이라는 사랑의 계약은 쉽게 무너져 곳곳에 ‘돌아온 싱글’이 넘쳐난다. 저자처럼 애인을 두고도 다른 사람과 또는 수시로 낯선 사람과 애정을 나누는 폴리아모리도 드무나마 있다. 사랑의 윤곽선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 본래 사랑은 아주 복잡한 실체를 갖고 있다.

따라서 ‘영구적 이성애 단혼제 사랑’만 정상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히 어리석다. 이 사랑은 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하고 재산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가부장제 서사에 불과하다. 사랑을 반드시 [육체] 결합과 연결해 생각하고, 더 나아가 러셀처럼 성적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완전한 성장에 이르지 못”하고 잠재적으로 “질투, 억압, 잔인성” 등의 성향을 드러내는 지질한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연애규범성(amatonormativity)에 빠져 현실을 무시하는 일과 다름없다. 연애규범성은, 연애하는 존재를 ‘정상 인간’의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는 가설이다. 하지만 “더러는 자신이 선택해, 나머지는 어쩌다” 비혼이나 독신 또는 무성애(asexual)로 살아가는 이들 중에도 “생산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무척 많다. 한 번도 사랑에 빠진 경험이 없더라도 사람은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이성 간] 섹스는 정상의 표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물학적 아이가 없더라도 비정상은 아니다. 아이 유무가 인류의 공동선에 참여하는 필연적 과정은 아니다. 사랑은 “진화를 통해 보전된 신체현상”, 즉 도파민 등 호르몬 작용과 분명히 관련이 있지만, 일부 생물학자의 주장처럼, 로맨틱한 사랑이 “짝짓기와 번식을 위해 진화”했다고만은 볼 수 없다.   

사랑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고,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인간 본성과 젠더, 양육, 좋은 삶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한 우리의 깊은 생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랑은 다양체다. “사랑이 사랑을 한다.” 특정 사랑을 표준으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각자 사랑의 경로에서 자신만의 모험을 고민해서 선택하면 된다. 아이 낳는 사랑을 할 사람도 있고, 동성과 알콩달콩할 사람도 있고, 저자처럼 복수의 사람과 사랑할 사람도 있고…….

이 책의 원제는 what love is and what it could be(사랑이란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가). 저자는 사랑의 가능태들을 해방함으로써 독자들을 낡아빠진 “사랑 관념의 감옥에서 탈옥”시킨다. 사랑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랑의 신비”에 대한 통념을 의심하고, 가부장제와 결부된 ‘영구적 이성애 단혼제 사랑’만을 정상으로 수용하도록 부추기는 그 허약한 기둥들을 부러뜨림으로써 우리가 “사랑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다. 

저자는 제안한다. “감히 사랑을 알려고 하라.” 그다음, 결혼서약을 하면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구절을 “사랑이 지속되는 한”으로 대체하는 등 앎을 모험으로 바꾸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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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학 개론

21세기의 포용적 사랑을 위한 철학 토크쇼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나누는 사랑에 관한 대화사랑이란 무엇일까? 두근거리는 가슴? 신비로운 인연? 느낄 수는 있지만 정의할 수 없는 게 사랑이라고들 한다. 사랑에 관해 지나치게 고민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 또한 흔히 맞닥뜨리는 일상사다. 비록 사랑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불가능한 과제처럼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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