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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베스트셀러 어뷰징

독서운동을 빌미삼아 단체를 만들고 회원을 모집해 서적을 추천한 후, 읽고 나서 별점 달고 댓글 쓰고 서평 활동을 하도록 독자들에게 권한다. 여기까지는 여느 독서단체와 비슷한 일을 한다. 

그런데 운영자 자신이 간여하는 특정 출판사의 신간이 발행된 직후, 이를 활동 도서로 추천해 집중구매를 유도하면 어떨까. 당장 제 이익을 위해 공공성을 위장하는 이해충돌 문제를 유발하기에, 윤리적으로 양두구육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규모가 크지 않은 한국 출판시장의 특성상, 일종의 ‘사재기 효과’가 나타나 해당 도서가 단숨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를 수 있다. 최근 출판계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어뷰징’ 현상이다. 독자들의 자연스러운 구매활동이 누적되어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독서단체의 활동결과에 따라 베스트셀러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 베스트셀러 어뷰징이 출판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특별한 사회적 유인이 없는 한, 정상적 베스트셀러는 보통 200위권 바깥에서 움직임이 생겨난다. 출간 시점에서 1~2주 이후엔 전문가 서평 등이 나타나고 입소문이 생성되면서 8주에서 12주에 걸쳐 서서히 상위권으로 옮겨온다.

이와 달리 ‘어뷰징 베스트셀러’는 저자가 알려진 인물도 아니고 주요 언론에서 소개되지 않았으며 전문가 추천도 별로 없었는데, 출간 직후 대량의 긍정적 독자 별점, 댓글, 서평 등과 함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의 베스트셀러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역시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는 의심을 받는 중이다.

출판계의 골칫덩이였던 출판사 사재기의 경우, 독자활동을 거의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차라리 사실 여부를 가려내기 쉬웠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어뷰징은 독서운동을 도서 마케팅으로 변질시키기에 진실을 모르는 독자들을 호도할 가능성이 높아 문제는 오히려 심각하다. 

서점의 적극적인 대응이 우선 필요하다. 미국 아마존의 경우, 특정 마케팅 업체가 댓글, 서평 등을 돈을 받고 조작하자 독자를 혼란에 빠뜨려 자사의 정상적 영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고발한 적도 있다. 당연한 대응이다. 이 정도 윤리 감각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우리 대형서점에도 있다고 믿는다. 

출판활동의 신뢰도를 무너뜨리고 독자들 선택권을 침해하며 서점의 영업활동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단체 역시 더 이상 방치할 일이 아니다. 리스트를 잠깐만 훑어봐도 어뷰징 베스트셀러로 의심되는 도서가 눈에 띄는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전에 종합적 현황조사와 함께 유통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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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중 《매일경제》 칼럼입니다. 지면 한계상 몇 줄 줄여 쓴 것을 덧붙여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