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職)/책 세상 소식

“소설이 좋은데 싫어요”...우린 왜 책을 읽나? ―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의 의미

이홍 한빛비즈 이사와 함께하는 프레시안 좌담. 이번 달에는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대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소설이 좋은데 싫어요"...우린 왜 책을 읽나?  

―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의 의미



많은 학부모님들이 아이의 성적을 고민하시면서, 동시에 아이의 독서 습관도 걱정하실 겁니다. 어릴 적에는 분명 책을 끼고 살던 아이가 나이 들자 책을 멀리하고 스마트폰 게임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 경험을 하신 부모님이 적잖으실 겁니다. 

이번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아이가 책과 친구가 되는 가장 확실한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여태 세계 수많은 부모가 직접 입증한, 정말 확실한 방법입니다. 굳이 힌트를 드리자면, 아이의 독서습관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이 자신이 아닌 부모님이라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선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이 책과 얼마나 친한가를 알아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매 홀수 년마다 시행, 발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뜯어보고자 합니다. 마침 얼마 전,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사 결과는 익히 예상한 대로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책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성인의 경우, 우리 국민 대부분은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습니다. 여가 시간에 책을 읽는 시간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요. 

특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책을 읽는 목적이 뚜렷하다는 데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죠. 어릴 적부터 독서 습관이 길러지지 않은 결과일 것입니다. 

우선 독서실태조사 결과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이를 바탕으로 어릴 적 독서 습관을 잘 형성하는 게 왜 중요한가에 관한 이야기까지 정리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이홍 한빛비즈 이사와 함께한 이번 대담은 설을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진행됐습니다. 

▲ 한국인은 대체로 학생 때 책벌레였다가, 성인이 되면 책을 놓는 것으로 보인다. ⓒpixabay.com▲ 한국인은 대체로 학생 때 책벌레였다가, 성인이 되면 책을 놓는 것으로 보인다. ⓒpixabay.com



학생 독서율은 90%, 성인 독서율은 60%?


 ―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59.9%고, 초·중·고등학생의 독서율은 91.7%였습니다. 2015년 대비 성인은 5.4%포인트, 학생은 3.2%포인트 감소했네요. 

연간 독서율이란 '지난 1년간 일반 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을 뜻합니다. 간단히 말해,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2017년 기준 10명 중 4명이라는 뜻이군요.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한 '연간 종합 독서율'의 경우, 지난해 성인은 62.3%, 학생은 93.2%였습니다. 우리나라 전자책 시장이 아직 워낙 작은 만큼, 큰 의미는 없다고 보입니다. 일단 이 수치부터 얘기해 보죠. 


장은수 : 예상은 했지만 충격적이네요.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국민의 40%라는 뜻이니까요. 

문체부가 우리나라 자료와 함께 미국과 일본의 독서율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얼핏 보면 우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만, 사실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미국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종이책+전자책)은 2014년 76%에서 2016년 73%로 감소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독서여론조사 결과, 일본인의 월평균 서적 독서율은 2015년 49%에서 2017년 45%로 감소했다. 편집자.)

우리나라는 '작년에 책 몇 권 읽었느냐'고 묻지만, 일본은 '지난달에 무슨 책을 읽었느냐'고 묻습니다. 한국의 실질 독서율이 매우 낮을 수 있다는 뜻이죠. 

사실, 통계의 특성상 숫자 자체보다 추세가 더 중요합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독서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 연간 독서율은 76.7%였으니 10년 만에 무려 16.8%p나 줄어든 셈입니다. 출판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 성인의 그것과 별개로 학생의 독서율은 매우 높은데요,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학교의 '아침독서' 프로그램이나 논술 대비 등의 목적으로 억지로 이행하는 독서라면 별 의미 없어 보입니다. 


이홍 : 맞습니다. 학생 독서율에서 퍼센티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학생 시절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학생이 이를 통해 향후 독서 습관을 만들고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서 자율성과 만족도, 즐거움이 중요합니다. 입시 목적의 독서가 단순히 독서율을 높이기만 했다면, 결과적으로 학생의 독서 염증만 키울 뿐이겠죠. 이미 부작용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번 조사 자료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 혹은 대학교 진학 이후 독서를 왜 포기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몹시 적나라한 답변이 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장은수 : 특히 학생부 종합평가에 독서기록이 반영되기 때문에 학생 대부분의 독서 기록은 사실상 강제 독서의 성격을 띱니다. 더구나 학교는 학생에게 독서 결과를 독후감 등으로 보고하게 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기 힘든 탓이지만, 읽기도 버거워하는 학생의 독서를 더 어렵게 하는 꼴이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학생은 독서란 힘들고 괴로운 행위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학생 때 90%에 달하는 엽기적 독서율이 성인이 된 후 50%로 뚝 떨어진 현재의 조사 자료입니다. 학생과 성인의 독서 권수 차이가 엄청난 것도 이를 반증하죠. 자발적 독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8.3권이고 학생은 28.6권이다. 학생의 경우도 학령별로 나누면, 초등학생은 67.1권, 중학생은 18.5권, 고등학생은 8.8권이었다. 앞으로 나올 모든 통계에서 학생의 독서 통계 자료는 교과서, 문제집, 만화책 등이 제외된 수치다. 편집자.)

독서 선진국이라 불리는 영국이나 스웨덴 등 유럽 국가를 보면, 나이에 따른 독서 격차가 우리처럼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 들고 나서 책을 가까이 하는 '노년독서' 현상마저 있죠. 우리나라의 독서 정책은 근본부터 잘못됐습니다. 

  ▲ 성인과 학생의 독서율 지표.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성인과 학생의 독서율 지표.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책을 진정으로 즐기는 이, 얼마나 될까


이홍 : 의외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번 조사 자료에서 다소 심각하게 봐야 할 부분은 '독서의 목적' 부분입니다. 성인이나 학생 모두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새로운 지식과 정보'입니다. 얼핏 정상적인 답변으로 보입니다만, 실은 우리의 서글픈 독서 현실을 보여줍니다.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23.7%)였다. 그 뒤로 '교양·상식 쌓기'(19.8%), '위로와 평안'(15.2%)이 이어졌다. 학생의 경우 '새로운 지식과 정보'(28.8%), '책 읽기가 즐거워서'(16.7%), '교양·상식 쌓기'(14.1%) 순으로 나타났다. 편집자.)

독서 목적 중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성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큽니다. 나쁜 건 아니지만,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제 막 글을 깨우치거나 몸과 영혼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독서가 왜 중요할까요?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말하는 건 지극히 어른들의 관점입니다. 그 나이에 중요한 건 정제된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판타지'의 존재입니다. 만들어진 지식을 습득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상상력을 키우고 꿈의 세계를 만드는 데는 독서만한 수단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창작동화를 읽는 걸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목적지향의 아동 대상 논픽션 독서 시장이 갈수록 커지는 데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빨리 학습에 적응하게끔 돕는 기능적 독서의 중요성만 갈수록 커집니다. 이 결과를 뒤집어볼까요? '새로운 정보를 못 얻는다면 더 이상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경향이 우리나라 유·아동서 트렌드에서도 드러납니다. 

다시 앞서 연간 독서량을 보죠.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한해 무려 67권의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이 방대한, 더 극단적으로 말해 엽기적인 독서량이 말하는 것이 뭔가요? 

장은수 : 성인 독서 목적을 보면, 1위는 물론 2위인 '교양·상식 쌓기' 역시 목적형 독서입니다. 학생의 경우는 '독서의 계기' 1위가 '학교 숙제나 독후감을 쓰기 위해'입니다. 우리나라의 독서란 결국 강제된 타율적 독서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국민독서실태조사의 '독서의 계기' 조사를 보면, 성인의 경우 '스스로  읽고  싶어서'(36.7%), '자기계발을  위해서'(18.7%)  순이었다. 학생은 '학교  숙제나  독후감을  쓰기  위해'(28.1%), '스스로  읽고  싶어서'(25.6%)  순이었다. 성인은 '스스로 읽고 싶어서'가 가장 많기는 했으나, '독서의 목적'에 '새로운 지식과 정보', '교양·상식 쌓기'가 많았음을 고려하면 '스스로 읽고 싶다'는 생각의 근원이 과연 독서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였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있다. 편집자.)

이런 식의 독서 강요 문화는, 결과적으로 숙제가 없으면 책을 읽지 않는 아이를 키웁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사실상 독서를 교과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 아이들이 숙제를 위해, 교과를 위해 책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걱정되네요. 아무래도 논술 시험 등을 대비해 책을 골라 읽다보면, 읽는 책의 종류도 편중될 것 같은데요? 

장은수 : 맞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학생에게 논픽션을 읽힙니다.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죠. 잘못입니다. 

학생은 우선 문학을 읽어야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언어 능력을 키우고,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멀리하는 분위기가 아이는 물론, 성인에게서도 감지됩니다. 얼마 전 아내가 지역 독서모임에 갔는데, 모임 간사가 '소설은 읽지 말자'고 했더랍니다. 기왕 독서모임하면 책에서 뭔가 배워야 하는데, 소설로는 어렵다는 거죠. 전형적으로 목적의식을 가진 독서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독서율이 올라갈리 만무하죠. 

이홍 : 반면 국민독서실태의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분야는 문학과 장르소설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선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책에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독서와 개인이 바라는 독서가 불일치한다는 거죠. 이는 단순히 독서 환경을 개선한다고 독서율이 올라가지 않음을 반증하는 사례입니다. 

(국민독서실태조사의 '도서 선호 분야'를 보면, 성인은 문학도서(23.7%),  장르소설(13.0%),  취미·오락·여행·건강(10.9%), 철학·사상·종교(10.3%) 순의 선호도를 보였다. 중·고등학생은 장르소설(30.3%), 문학(17.3%), 연예·오락·스포츠·취미·여행(9.9%) 순으로, 초등학생은 소설(19.7%), 인물 이야기(12.2%), 취미(10.6%), 역사(10.4%) 순으로 독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독서의 목적' 응답률과 대조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읽고 싶어 하는 책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이 불일치함을 추론 가능하다. 편집자.)


소셜미디어 시대, 책이 설 자리는 있을까


 ― 학생이야 입시 문제로 인해 그렇다손 쳐도, 성인마저 읽고 싶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게 얼핏 이해가 가지 않네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인에게 끝없는 자기계발을 요구함을 보여주는 걸까요?

장은수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인의 독서 문제는 학생과 나누어서 살펴야 합니다. 

우리나라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상위권은 항상 소설이 차지합니다. 즉, 책을 읽는 사람은 소설을 상대적으로 많이 읽는다는 뜻입니다(사실은 가리지 않고 골고루 읽는 편이죠.). 

어쩌다 책을 읽는 사람이 목적 지향적 독서를 합니다. 한 번 책을 읽을 것, 직접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니 소설보다는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 등과 같은 실용적 목적이 있는 책을 고르기 마련이죠. 자연히 소설 선호도는 떨어집니다. 


 ― 실제 어쩌다 책을 읽는 사람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는 듯합니다. 본인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답한 이가 성인은 59.6%였고, 심지어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학생마저 51.5%가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장은수 : 독서의 중요성은 인지하는데, 실제로는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다’고 답하고 있죠. 전형적인 면책성 답변입니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독서장애요인으로 성인은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32.2%),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19.6%), '다른 여가활동'(15.7%) 순으로 답했다. 학생은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9.1%),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21.1%),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18.5%)을 꼽았다. 편집자.)

일이 바쁜 사람도 TV를 보고 영화를 볼 시간은 있죠. 이 시간에 책을 안 보고 다른 여가 활동을 찾을 뿐입니다. 결국 책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독서의 책임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는 성인은 매우 적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자발적 독서 습관이 없어서죠. 성인에게도 직장독서 강요 문화가 만들어지는 이유입니다. 당연히 직장에서 원하는 독서 목록이란 일에 필요한 실용서 위주로 채워질 수밖에 없죠. 이런 독서 문화가 독서의 즐거움을 깨우쳐줄 리 만무하죠. 

이홍 : 사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을 일정 정도 이해할 여지는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책을 대체할 대안이 크게 늘어난 시대죠. 

이제 책은 다른 책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다른 문화매체, 여가매체와 경쟁하죠. 이들 매체는 더 화려해지고, 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문화·테크놀로지가 발달할수록 우리가 이들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겁니다. 스마트폰의 정보 처리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지만, 여기에 담긴 콘텐츠를 즐기려면 예전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하게 되죠. 그만큼 같은 시간 내 정보량이 더 늘어나고, 해당 테크놀로지에 최적화한 정보가 끝없이 쏟아지니까요. 

자연히 책에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감은 비단 출판계뿐만 아니라 오랜 전통 문화계·언론계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가질 겁니다. 

장은수 :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지적입니다. '이제 동영상 강의로 얼마든지 지식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뭐 하러 책을 읽느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시대죠. 

그런데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국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본래 독서에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겼으니까요. 진화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독서를 사람들이 계속하는 이유는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획득한 경험을 세대를 뛰어넘어 전달할 수 있고, 이러한 집단 작업이야말로 문명의 탄생, 축적, 번영을 만들어 낸 원동력입니다. 독서는 사회적 학습을 가능케 하는 문명의 엔진이라는 겁니다. 

독서의 또 하나의 이점은 창조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존재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고 낡은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창조성이라면, 창조성은 '느린 생각(slow thinking)'을 통해 주로 만들어집니다. 

느린 생각은 뇌가 즉시 처리할 수 없습니다. 느린 생각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을 사용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는 훈련을 통해 익숙해지지 않으면 힘이 드니까 우리는 좀처럼 사용할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독서가 느린 생각을 훈련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슬로 리딩'을 통해 정보를 느리게 습득하고, 이를 충분히 자기화하는 과정이 바로 독서입니다. 이는 느린 생각을 하는 것이나 비슷합니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빨리 습득한 정보는 결코 자기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독서가 필요한 이유: 생각하는 사람


 ― 독서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세를 바꾸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갈수록 사람이 텍스트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유튜브가 네이버를 대체하는 검색 포털로 기능하는 시대입니다. 

장은수 :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각이 아닌 것을 생각으로 착각'하는 시대에 접어들게 됩니다. 남의 생각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뿐인데, 이를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거죠. 

생각에는 콘텍스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선 정보를 받아들인 후, 기존에 쌓아둔 내 정보 어딘가에 배치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 '정보의 재배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내 생각이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생각의 구조를 다져둬야 응용과 창조도 가능합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는 기본적으로 반응 미디어입니다. 시청자가 화면으로 보고 바로 반응하게끔 합니다. 대부분의 소셜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페이스북을 놓으면, 인스타그램을 놓으면 불안함을 느낄 정도죠. 이러한 반응 미디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펴냄)에서 니콜라스 카가 얘기했듯 '생각을 증발시킵니다.'

생각은 그냥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의 기본 구조는 책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오랜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서론-본론-결론이나 기-승-전-결 구조를 거쳐 아주 빠른 속도록 생각을 일으킵니다. 라캉이 말한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된' 상태죠. 이때 '언어'란 '책의 언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의식은 책처럼 구조화된 상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구조적 사고란 이처럼 제목과 본문을 구분하고, 이미지와 텍스트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훈련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훈련이 되지 않은 사고, 즉 텍스트로 훈련되지 않은 사고를 생각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건 단순한 의식의 흐름이고 호르몬 반응일 뿐입니다. 유튜브 먹방을 하루 종일 본들, 그건 정보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지 구조화하는 과정이 되지 못합니다. 

생각의 구조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보고 정보를 구조화하지 못합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의 '가짜 뉴스'에 휘둘리기 쉽죠. 최근 김일성 가면 논란이 전형적인 사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텍스트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건 일리 있습니다. 마셜 매클루언은 일찌감치 '활자인간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TV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TV야말로 인간이 오감을 다 사용해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문명시대로 접어드는 상징이라는 거죠. 그러나 이는 실제로는 중세 문명의 특징입니다.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현재와 같은 양의 지식과 정보를 다 처리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우리 문명이 생각의 구조화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포기한다는 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문명의 붕괴'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 아이에게 독서 습관을 물려줄 유일한 방법은? ⓒwikimedia.org



우리 아이 독서습관 들일 유일한 방법


 ― 개개인이야 책을 읽든 말든 우리가 책의 중요성을 강제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어쨌든 정부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책과 조금 더 가까운 체제로 나아가기를 바랄 여지가 크다고 보입니다. 

앞서 우리가 얘기한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어릴 적 독서 습관을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개인의, 나아가 사회의 독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장은수 : 흔히 어릴 적 독서 습관을 들여야 성인이 되어서도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고 하죠. 맞는 말입니다. 

실제 우리나라 매우 많은 부모가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빨리 글자를 익히기 바라죠. 글자만 알면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글자를 아는 것은 독서습관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 인류가 터득한 가장 효과적인 독서습관 들이기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겁니다. 이것 외에 효과가 입증된 확실한 독서습관 들이기 방법은 없습니다. 왜 북미·유럽권에서는 '베드타임 스토리'가 하나의 장르로까지 형성되었을까요. 

책 읽어주기가 자주 이어질수록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됩니다. 아이가 책과 친해지는데 부모와 같이 읽기의 경험이 압도적으로 중요합니다. 이게 어릴 적 정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은 한, 이미 머리가 굵은 아이가 아침독서를 하든 말든, 저는 별로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이유를 사회에서 찾으려 하죠. 

물론,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책 읽어주기를 꾸준히 진행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부모님은 일에 지쳐 피곤한데, 아이는 같은 책을 수십 번 읽어달라고 하죠. 그러나 아이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상상하며, 같이 읽기의 경험을 통해 책을 사랑하게 됩니다. 다시금 강조합니다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같이 읽기를 대체하고 아이를 책과 친해지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란 없습니다. 

독서습관이란 결국 인간적 경험입니다. 아이가 부모와 책을 매개로 한 인간적 유대를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따뜻한 품, 다정하고 흥미로운 목소리 등이 어우러진 체험이 있을 때 사람은 평생 책을 가까이 합니다. 어릴 적 책 읽어주기 경험이 아이가 더 큰 후에는 부모와 함께 서점을 찾거나, 부모와 함께 책 관련 박물관이나 행사에 가는 식으로 발전할 수 있죠. 이처럼 부모와 함께 하는 책 경험이 중요합니다. 


 ― 중요한 건 책을 매개로 한 부모와의 인간적 경험이네요. 어릴 적 습관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다손 쳐도, 성인이 되었는데 책과 친해지려는 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릴 적 습관이 들지 않은 이가 책을 가까이 하기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만.

장은수 : 역시 독서 경험이 중요하죠. 

우리 주변을 보면, 주위 사람과 책을 매개로 교류하는 이를 찾기가 갈수록 어렵습니다. 바꿔 말하면, 주위 사람과 책 이야기를 자주 할수록 독서율이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독서 경험을 나누기 위해 돈을 내는 유료 독서 모임까지 생기겠습니까. (☞관련기사 : 내돈 내고 내책 읽고 독후감 쓰는 모임에 간다고?) 책을 매개로 한 경험이 독서습관을 만든다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성인에게 독서 경험을 제공할 가장 쉬운 방법이 뭘까요? 시설을 늘리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독서 진흥 정책이 독서실 늘리자는 식으로만 진행되죠. 요즘 북카페가 크게 늘어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설만 만든다고 해서 독서 습관이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책을 매개로 한 경험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독서모임이 중요하게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홍 : 오롯이 독자에게만 그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출판사도 당연히 이에 부응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책은 전자매체, 인터넷매체와 경쟁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정보 전달자가 폭증하는 지금이야말로 책은 본연의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출판계가 책 고유의 역할 대신 '쉬운 책 만들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디어셀러 열풍이죠. 과거에는 TV나 영화 등이 책을 복제했는데, 이제는 책이 이들 매체를 복제합니다. 이는 책의 역할이나 자세가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출판사 경영에 도움이 되겠지만, 책 정보의 고유성은 사라지죠. 이런 트렌드화는 책도 한 번 보고 버려도 되는 매체로 전락하게끔 합니다. 

책은 결국 정보와 상상력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에게는 꿈을 주고, 성인에게는 첨단의 지식을 전해야 합니다. 

▲ 아침독서 시행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다시 아이의 독서로 넘어가 보죠. 중요하게 짚어야 할 건 독서경험입니다. 이와 관련해 장 대표께서 유아의 경우 베드타임 스토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기 독서경험의 중요한 책임은 부모가 진다는 얘기죠. 그러나 아이가 부모 품을 벗어나는 청소년 시기가 되면 사회가 본격적으로 개입합니다. 아침 독서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앞서 두 분께서는 아침 독서가 별반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셨어요. 


장은수 : 앞서 말했듯 현재 아침 독서는 사실상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독후감을 쓰기 위해 시행하는 과제로 전락했습니다. 이 시간이 도움 된다고 답한 아이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 아이죠. 독서에 익숙지 않은 나머지 아이에게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교의 아침독서 시행률은 초등학교 81.7%, 중학교 52.9%, 고등학교 3.5%다. 아침독서가 독서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2011년 49.5%, 2013년 51.0%, 2015년 57.6%, 2017년 61.1%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편집자.)


 ― 그런데 아침독서가 독서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아이의 비율이 생각보다 커요.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장은수 : 물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상당수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독서습관이 형성되었다면 책을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읽는 습관적 독자의 비율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급속히 떨어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어떤가요? 초등학생 때 습관적 독자는 75.7%인데, 중학생은 23.9%, 고등학생은 12.5%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습관적 독자의 비율이 이렇게 급속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침독서가 아이들의 실질적 습관 형성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률적으로 책을 읽히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 어쩌다 읽는 아이, 아예 읽지 않는 아이 등으로 세분화해서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학교에 이를 전담하는 사서교사, 독서교사의 배치가 필수적입니다.

이홍 : 아침이냐, 저녁이냐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쨌든 학생이 책을 꾸준히 접하면서 독서 습관을 만들거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학생에게 학교라는 공간과 선생님의 존재는 특히 저학년일수록 절대적이거든요. 아침독서를 본래 취지에 맞게 잘만 활용한다면,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책을 읽는데서 즐거움을 얻는 학생이 늘어날 것입니다. 

물론 나 혼자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다 함께 한다는 자발성이 전제되어야하겠죠.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해 중요성이 점점 소홀해지고 있지만, 학교 체육도 아침독서와 마찬가지 효과를 낳습니다. 우리 교육이 점수 따는 기계를 만드는 데만 열중할 게 아니라면 깊은 성찰을 해봐야 합니다. 


다문화사회 한국에 꼭 필요한 도서 지원 정책은?


 ― 결국 청소년 독서에서 중요한 건, 책에 익숙지 않은 아이에게 어떻게 재미있는 독서 경험을 주느냐일 겁니다.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요?

장은수 :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아이들이 책을 저절로 좋아할 리 만무하죠. 이와 관련해,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대체로 남학생이 책보다 다른 매체를 더 좋아합니다. (웃음) 

영미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남자아이들의 우상과 함께하는 책모임 프로그램입니다. 예를 들어, 축구클럽 선생님과 축구 관련 책을 같이 읽는 프로그램을 도서관에서 진행하지요. 아이들의 우상이 될 법한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학교에 와서 자기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죠. 자유학년제 프로그램 등으로 개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선생님과 아이들이 도서관 견학을 실시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지역 사회와 학교가 협력하는 프로그램이 더 다양하게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의 책 읽기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으나, 문해력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아이가 있다고 해 보죠. 이런 아이에게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책을 읽으라고 하면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우니까요.

이런 아이를 대상으로 한 특별 교과서를 보급하면 됩니다. 5학년 수준의 문제의식을 3학년 수준 어휘로 설명한 책을 만들자는 겁니다. 북유럽권에서 시행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책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죠. 그러니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해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느린 속도의 학습자를 배려한 독서 프로그램이 존재하죠.

하나 더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문화가족과 탈북자 가족 등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 가족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모가 한국말에 익숙지 않습니다. 자연히 아이의 어휘력, 문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아이가 한국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와 공정한 경쟁을 이어가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스웨덴의 경우, 우리로 따지면 한국어로 된 책과 베트남어로 된 책을 한 세트로 만들어 학교나 지역 도서관이 대여해줍니다. 우리가 본받을 점이죠.

탈북자 가족은 같은 한국어를 쓰는 가족이라고 하지만, 북한과 한국이 사용하는 고유명사가 매우 다릅니다. 문화 차이로 인해 북한에서 사용하지 않은 언어를 한국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하나원에서 독서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탈북자의 한국 정착을 위해 중요하게 고려해 볼 법합니다. 단순히 남한 영화를 보여주고 남한 TV 프로그램을 보여준다고 어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북한 출신의 지식인에게 남한 문학을 읽게 하고 남한 책을 읽게 해야 남한 언어로 사고할 길이 트입니다. 

지체장애인의 교육권 문제도 생각해야 할 대목입니다. 이들은 느리게 배울 뿐이지, 배우지 않는 게 아닙니다. 이들의 학습 속도에 맞춘 책 보급이 필요합니다. 육체가 성인이 되었는데 사고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으로 하는 이가 있다면, 성인이 되어 찾아오는 몸의 변화를 초등학교 5학년 수준으로 설명해줘야 학습이 됩니다. 

이런 데 우리 사회가 너무 둔감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의 책 읽기 프로그램은 철저히 책 좋아하는 사람을 위주로만 만들어집니다. 


 ― 그 밖에 정부나 사회 공동체가 책과 친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볼 법한 방안은 없을까요?


장은수 : 독서문화 정책 전반에 근본적 방향전환이 필요합니다. 문체부의 인식은 안이한 예전의 답습일 뿐입니다. '촛불의 힘'으로 일어선 새로운 정부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박적으로 강조하는 계몽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행사나 캠페인과 같은 스펙터클 이벤트로 독서문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올해가 '책의 해'라는데,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달부터 '책의 해 선포식'을 개최한 후, 세계 책의 날, 서울국제도서전, 대한민국 독서대전, 전국도서관대회, 서점의 날 등 여러 행사를 한다지만, 일회성 행사인 선포식을 제외하면 '작년에 왔던 각설이' 수준 아닐까요. 대부분 민간에서 내실을 기하면 될 일이고, 지원 이상으로 정부가 신경 쓸 바는 별로 없죠. 

그동안 우리가 익히 보아왔듯, 각종 행사나 대규모 이벤트가 없어서 독서문화가 무너진 게 아닙니다. 정책의 중점을 독서공동체 등 일상에서 독서습관을 이룩하는 작지만 강한 실천을 일으키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홍 : 독서가 정보나 지식을 강요받는 학습 수단으로만 인식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삶에 필요한 도구는 첨단화되었는데, 그럴수록 평생 뭔가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부담이 더 늘어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섭고 도망가고 싶은 겁니다. 

책 읽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인간은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나진 않았어요. 의무와 가치로서의 독서보다 즐겁고 편한 독서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공원 벤치나 해변에 앉아 책 읽는 유럽인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그들이 무슨 지식과 정보에 목말라 그러고 있겠어요? 대부분은 재미있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고 있겠죠. 독서는 곧 공부라는 다소 경직된 가치를 깨지 않으면 책 읽기의 즐거움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