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국민독서실태조사의 발표를 계기로, 독서습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글을 조금 보충해서 올려둡니다.
어릴 때 부모가 자녀한테 책을 읽어준 경험이 잦을수록, 독서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중고생 이후에도 습관적 독자로 남은 경우가 많았다.(사진출처 : Flickr)
책 읽는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59.9%로 나타났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4명이라는 뜻이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도 2007년 12.1권에서 2017년 8.3권으로 3.8권이나 감소했다. 책을 읽는 사람도 한 해에 서너 달은 책 없이 보내는 셈이다. 모바일 기기의 등장 등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면서 독서 이탈의 흐름이 빨라졌다.
출산율 저하와 마찬가지로 독서율 저하에 따른 사회적 파장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너울의 높이를 더하면서 나중에야 쓰나미로 밀려든다. 시민사회 전반의 지력 상실, 주체성 소실, 창조성 하락 등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인간은 습관이 잡히지 않은 일은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일단 하락한 독서율을 제고하는 데에는 몇 배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지극히 낮은 편이다. 국민독서실태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며칠 동안 호들갑을 떨고 나면 더 이상 깊은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 『생각에 대한 생각』(이진원 옮김, 김영사, 2012)에서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차량이 돌진해 오는 것과 같은 종류의 급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서서히 진행되어 문명의 붕괴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장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음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문명의 역사로부터 획득한 특별한 지성적 관심이 필요하다. 주요 OECD 국가들이 독서율을 높이려고, 선제적으로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완전히 손 놓았던 것은 아니다. 2006년 ‘독서문화진흥법’을 마련하여, 독서진흥계획을 5년 단위로 수립해 여러 가지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이처럼 참담하다. 갖은 노력에도 성적표가 이러하다면, 독서문화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박적으로 강조하는 행사나 캠페인 등에 더 이상 정책의 중점을 두어선 안 된다. 그보다 한 사람이 평생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반인 독서 습관을 이룩하는 작지만 강한 실천을 일으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습관은 반복으로만 이루어진다. 독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1회성 이벤트보다 사람들이 자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조사에 따르면, 매일 책을 읽거나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책을 읽는 ‘습관적 독자’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같이 읽기’의 경험이다. 어릴 때 부모가 자녀한테 책을 읽어준 경험이 잦을수록, 독서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중고생 이후에도 습관적 독자로 남은 경우가 많았다. 부모의 따뜻한 품, 다정하고 흥미로운 목소리, 함께 고동치는 일치된 심장 소리 등이 책과 함께 결합한 체험이 있을 때 사람은 평생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성인의 경우, 주변의 유혹이 많은 탓에 독서를 결심해도 사흘을 넘기기 어렵다. 해마다 연초에는 책을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지만,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독서에 익숙해지는 건 아주 힘들다. 이럴 때 독서습관을 들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 역시 ‘같이 읽기’다. 도서관 등의 도움을 받아 자신한테 맞춤한 독서공동체에 들어서는 것이다. 독서공동체에서 책 친구를 만나서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사교를 통해 책과 함께하는 좋은 체험을 반복하는 게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흔히 독서는 혼자 하는 고독한 행위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독서는 사회적 행위였던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 것 자체도 사랑하지만, 책을 함께 체험함으로써 관계를 증진하는 일을 그만큼 사랑한다. 아니, 이러한 체험 없이 독서는 결코 우리에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독서가 침몰하고 있다. 독서문화 부흥의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에, 사람들을 평생 독자로 만들어 주는 ‘같이 읽기’를 창출하는 쪽으로 독서문화 정책의 중심을 빠르게 옮겨야 한다. 2018년 ‘책의 해’는 그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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