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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_ 실뱅 태송,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

실뱅 태송,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실뱅 태송,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소로는 귀뚜라미 노랫소리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다. 반 고흐는 전원에서 풍경의 역선(力線)들을 보았다. 네르발은 파리의 길들과 자기 영혼의 미로를 혼동했다. 풀카넬리는 황금비가 천체의 운행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암술을 둘러싼 꽃잎들의 배치도 주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고는 산사나무 향기가 별자리와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견자(見者)’는 눈이 만족하는 곳에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지엽적인 것들을 모두 뒤져서 우주를 추격한다. 이것이 관찰에 적용되는 환유의 원리다. 여행자는 풀잎에서 우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평면구형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정신이 모래알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면, 사막의 모래 언덕에 던져진 그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얼마나 무한하겠는가! (33쪽)




주말에 시골 마을을 오르내리면서 실뱅 테송의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을 완독했다.

산문으로 시를 짓는 이 여행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책이 아니라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은둔자의 삶, 바이칼 호에서 보낸 6개월」에서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들고 아주 고민하던 때여서 곧바로 몰입해 보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바이칼 호 주변의 오두막에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여, 낮에는 육체의 힘으로 하루를 온전히 하고, 밤에는 주로 쓰기로 내면의 영토를 탐험하는 고독한 여행자의 삶을 따라붙는 것은 순간순간 영감이 넘치는 체험이었다.

『여행의 기쁨』은 한 발짝 한 발짝, 대지 위를 걸으면서 압축한 사유들을 시적 문체로 펼쳐 놓는다. 이 책은 일상의 모든 사슬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한 사람이 먼저 발로 쓰고 나중에 손의 도움을 받아 기록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육체의 한계를 건드리는 격렬한 체험을 통해서 사유의 고유성에 도달한 사람만이 새길 수 있는 언어의 아름다운 세공품.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조차 뮤즈의 방문을 받고서야 힘들게 이룩할 수 있는 높은 밀도가 갈피마다 숨을 막는다. 이런 책은 영감을 훔치면서 순간적으로 빠르게 읽기보다는 반복해서 페이지를 거슬러가면서 천천히 저자와 사유를 겹쳐 적으면서 읽어야 한다. 여행자의 가방에 들어가야 할 책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걷기는 시간의 롤러에 공간의 크기를 대립시킨다. (17쪽)


진정 자유롭고 무모한 유랑은 모더니티(Modernity)를 거부할 의무가 있다. (23쪽)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에게 길의 이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제야 해방된 정신은 지금껏 애써 달려온 그 땅에서 평온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사고가 완전히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사유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지표면이다. (30쪽)


산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꿈을 추억으로 만드는 것이다. (36쪽)


도보 여행길에서 텅 빈 공간과 싸우려면 시가 있어야 한다! 방랑자는 한없이 시를 암송할 수 있다. 시는 텅 빈 시간들을 채워 준다. 시는 정신을 붙잡아 주고, 영혼을 확장시킨다. 시는 음악이 되는 리듬이다. 시는 행군에 박자를 붙여 주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36~37쪽)


자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할 수 없는 사람은 아직 유랑 생활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63쪽)


유랑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배려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애는 과도한 루쿰 사탕처럼 행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참호 속에서 저항을 계속하고 육체가 보내는 경고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이를 통해 인간의 육체는 깨끗해질 수 있다. (68쪽)


반더러는 걷는 동안 약탈해 온 이 모든 행복을 저녁마다 자신의 공책에 모두 집결시킨다. 그는 깨끗한 종이와의 약속 때문에 낮 동안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더 열심히 비축하게 된다. 긴 여정을 걸어가는 자에게 글쓰기는 가장 강력한 평정의 계기이고, 낮의 역량을 연장시켜 주는 늘임표다. 긴장했던 근육들이 공책 위에서 피로를 푼다. 정신은 기분 좋게 기억 속을 뒤적이는 일에 몰두한다. 저녁마다 글을 쓰면서 여행자는 계속해서 또 다른 길을 가고, 그렇게 평평한 종이 위에서 행군을 연장시킨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수 킬로미터를 주파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한 줄 한 줄 자신의 밭고랑을 파 간다. 그의 눈은 배의 항적을 고정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펜의 움직임을 좇아간다. 그는 언제나 고독하게 낮에는 모험을 땅에서 길을 가고, 저녁이면 글쓰기의 땅에서 길을 간다. (70~71쪽)


혼자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은 더욱 밀도 높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 (105쪽)


훈련을 하다 보면 우리 주변의 세상에 다시 마법을 걸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꿈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경이로운 것들이 널려 있다.”라고 확신했다. 그런 확신으로 다시 생기를 얻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것, 신들을 만나 보기 위해 숲 속으로 떠나는 것, 자기의 상상력으로 말고삐를 늦추는 것, 이것들만 있으면 세상에 다시 마법을 걸기에 충분하다. (106쪽)


우아함은 고독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로빈슨은 매일 저녁 자신을 마주 보고 장식단추가 달린 정장을 입은 채 억지로 참아가며 저녁 식사를 하곤 했다. (147쪽)


어떤 삶이 행위 동사들로만 이루어진다면 그 삶은 성공한 것이다.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