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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당태종 부부는 독서광이었다(임사영, 『황제들의 당 제국사』, 푸른역사, 2016)

임사영의 『황제들의 당 제국사』(류준형 옮김, 푸른역사, 2016)를 읽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제국을 이룩하고, 주변 민족의 문물까지 흡수하여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당나라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 읽는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고구려를 침략한 일로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추앙되는 당태종의 훌륭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무위를 떨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태종은 즉위한 이후로는 손에서 책을 떼어놓은 적이 없는 독서광이었습니다. 특히 역사를 좋아했던 그에게 책은 현재에 대한 거울을 제공했고, 역사를 통해서 그는 일의 흥함과 쇠함을 꿰뚫어볼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태종의 황후로서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성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장손황후 역시 독서광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머리를 빚을 때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책을 사랑했으며, 그로써 지혜를 쌓아 고비마다 당태종의 뛰어난 동업자로서 역할을 다했습니다.

아울러 당태종은 아들인 당고종 이치에 대한 교육도 엄격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훌륭한 군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시때때마다 엄격한 가르침을 베풀었고, 고종 이치 역시 그 가르침을 물 흐르듯이 받아들여 부인인 무측천과 함께 성세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태종과 장손황후는 여러모로 잘 어울렸습니다. 두 사람 모두 리더의 성패는 남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래에 이 책에서 마주친 구절들을 옮겨 둡니다.




황제라는 자리는 차지하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황위에 앉는다고 해서 안정적으로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창업의 군주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제껏 공훈이 없이 제왕이 된 자는 없다. (당고조 이연)


짐은 비록 어려서부터 전쟁에 참가했던 탓에 독서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정관 연간 이래로는 손에서 책을 놓아 본 적이 없고 또한 이를 통해 백성들을 교화하고 국정을 다스리는 근본 이치를 깨달았다. (당태종 이세민)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일의 흥함과 쇠함을 꿰뚫어볼 수 있다. (당태종 이세민)


거센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을 찾을 수 있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겪어야 진실된 신하를 알아보게 된다. (당태종 이세민)


법이라는 것은 천하에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당태종 이세민)


치안의 근본은 오직 인재를 얻는 데 있다. (당태종 이세민)


여러 주장들을 두루 들어야 사리가 분명해지고 일부의 이야기만 들으면 사리에 어두워진다. (위징)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했던 태종은 화살과 궁에 대해 스스로 정통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아끼던 양궁(良弓) 십여 자루를 공장(工匠)들에게 보여 주었다가 하나같이 궁의 목심(木心)이 바르지 않아 좋은 활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조차 실수와 잘못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한 사람의 능력에만 의지해 넓은 사해천하를 통치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치세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로써 태종은 자주 신하들로 하여금 정사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도록 요구했다. (57쪽)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사리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당태종 이세민)


장손황후는 또 개인의 수양을 중시해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했고 과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교훈을 얻고자 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머리를 빗을 때에도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태종이 크게 감탄했다. (64쪽)


제가 알기로는 명군 아래의 신하만이 황제에게 직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위징이 황상의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로 직언한 것은 황상께서 도를 갖춘 명군이심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는데 제가 어찌 정식으로 예를 갖춰 감축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장손황후)


이치가 하루라도 빨리 성장해 자격을 갖춘 태자가 되길 바랐던 태종은 태자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중략) 일상생활에서도 각종 소재를 이용해 교육했다. 예를 들어 이치의 밥 먹는 모습을 보고는 “너는 농사짓는 것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농사의 때를 놓치지 않게 해야만 먹을 양식이 확보된다.”라고 훈계하고, 이치의 말 타는 모습을 보고는 “말의 힘을 모두 소진시키는 일이 없게 해야, 지속적으로 탈 수 있는 말을 얻게 된다.”라고 가르쳤다. 배를 타는 일이 있으면, “물은 배를 떠 있게 할 수도 있지만 배를 전복할 수도 있다. 물은 백성과 같고 배는 군주에 비유할 수 있다.”라고 가르쳤다. 이치가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에는 “목재는 먹줄의 도움이 있어야 곧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처럼 군주도 주위의 권유와 간언을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올바른 군주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74~75쪽)


[자신을 비난하는 낙빈왕의 격문을 읽고 나서] 무측천은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을 중용하지 않고 조야에 떠돌게 한 것은 재상의 과실이다.”라고 말했다. 무측천은 시종 웃음을 잃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찬 격문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104쪽)


현종의 방종과 사치를 모방해 당시 상층 사회에서도 향락적이고 호사스러운 분위기가 만연했다. 양귀비의 세 언니가 살았던 저택은 화려하기 그지없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어 궁궐에 비견될 정도였으며, 마차를 끄는 말에 치장된 장식의 현란함만으로도 장안의 유명한 볼거리가 되었다. 건물을 신축할 때마다 천만금의 돈을 썼고, 누군가가 자기보다 더 큰 집을 지으면 바로 허물고 다시 더 크게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개원과 천보의 성세에 등장한 사회적 과소비는 당시 사회에 숨어 있던 거대한 위기를 엿보게 된다. (175쪽)


갑야(甲夜, 저녁 7~9시)까지 정사를 처리하고 을야(乙夜, 저녁 9~11시)에는 독서하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찌 군주 노릇을 한다고 하겠는가? (당나라 문종)


황제가 천하를 다스림에 현명하고 능력 있는 신하를 잘 뽑아 임명해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지 옷을 몇 번씩 세탁해 입는 것 따위의 것은 그저 생활상의 작은 일에 불과하다. (유공권, 당나라 문종이 옷을 세 번이나 세탁해서 입었다고 말하자)


천하의 대치(大治)를 이루기 위해서는 불초한 자를 기용해서는 아니 되니, 대란(大亂)은 곧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쓰지 못해 생기는 것이다. 현명한 것을 임명하면 천하의 복을 누리게 되고 불초한 자를 임명하면 천하의 재앙을 겪게 된다. (당태종 이세민)


부잣집이라 하더라도 능력이 모자란 자식이 있으면 세 번 변신 과정을 겪는다. 첫 번째 변신은 ‘황충(蝗蟲)’이 되는 것으로 장원을 팔아서 생활하게 된다는 뜻이다. 두 번째 변신은 ‘두어(蠹魚)’가 되어 집에 있던 장서들을 팔아서 생활하게 되고, 세 번째 변신은 ‘대충(大虫)’으로 변해 노비를 팔아 생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토지를 소유한 부자라 하더라도 이를 오래 보유하지 못할 정도로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변동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368쪽)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 여덟 가지 고통이 있다. 관리가 가렴주구 하는 것이 첫 번째 고통이요, 빚이 많고 수탈을 당하는 것이 두 번째 고통이요, 부세가 지나치게 번잡하고 많은 것이 세 번째 고통이요, 지방 관리들이 축재를 하는 것이 네 번째 고통이요, 세금 부담을 피하려 도망간 사람들의 세금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대신 내야 하는 것이 다섯 번째 고통이요,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곳이 없는 것이 여섯 번째 고통이요, 겨울이 되어도 입을 옷이 없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일곱 번째 고통이요, 병이 들어도 진료를 받을 수 없고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이 여덟 번째 고통이다. (유윤장)


꼭두각시를 읊다 


                            당나라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


나무를 깎고 실을 매달아 늙은이 인형을 만들었는데,

닭같이 거친 피부, 학처럼 흰 머리가 사람과 똑같구나.

잠시 가지고 놀면서 적절함을 달래도 아무 일 없으니,

마치 인생이 한바탕 꿈만 같구나.


傀儡吟


刻木牽絲作老翁, 鷄皮鶴發與眞同. 

須臾弄罷寂無事, 還似人生一夢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