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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대학 공부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군자불출가이성교어국(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군자는 집안을 나서지 않고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룩할 수 있다)

이른바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집안을 가르칠 수 없으면서 능히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안을 나서지 않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효도는 그로써 임금을 섬기는 바요, 공손함은 그로써 어른을 섬기는 바요, 자애로움은 그로써 백성들을 부리는 바이다. 

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敎, 而能敎人者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


오늘부터는 전(傳) 9장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을 관련지어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여기에서 ‘가(家)’는 요즘의 식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좁게는 씨족 가문을 칭하는 것이고, 넓게는 한 가문에 부속된 가신(家臣) 등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중국에서는 한 가문이 한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모여 살면서 일종의 자치지역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문의 힘이 커져서 유력해지면 이에 귀부한 작은 가문들도 생겨나 무려 수만 명이 넘는 규모까지 커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한 집안을 가지런히 바룬다는 것은 식구들이나 일가붙이들 몇 사람을 상대하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정치이면서 행정이면서 외교이면서 국방이면서 경제이기도 했으므로 집안을 잘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을 일정 정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자는 굳이 집을 나서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베풀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대학』의 저자는 군자가 집안을 바로잡는 원리와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를 같은 구조로 바라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孝)는 그대로 임금을 섬기는 것과 똑같고, 형에게 공손히 대하는 것(弟)은 그대로 윗사람을 섬기는 것과 똑같고, 아랫사람을 자애롭게 대하는 것(慈)은 그대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데에서 출발해 천하를 다스리는 데 이르는 모든 삶의 원리를 하나로 꿴 것, 이것이 바로 『대학』의 위대함입니다.


소위치국필선제기가자(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기가불가교(其家不可敎), 이능교인자무지(而能敎人者無之), 고군자불출가이성교어국(故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필(必)’이라는 부사가 들어간 것은 앞 문장에서는 없던 일입니다. 집안에서 나라로 나아가는 일에는 그만큼의 신중함이 필요한 일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뜻일까요. 여기에서 교(敎)는 ‘가르치다’로 풀이하지만, 그 뜻은 ‘교화(敎化)’, 즉 가르치고 이끌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인(人)은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者)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올바름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아주 힘듭니다. 성인이나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집안조차 교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교화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의 저자는 단호하게 ‘무(無)’, 즉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집안을 다스리는 원리와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김용옥에 따르면, ‘불출가(不出家)’는 『노자』에 나오는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다.[不出戶, 知天下]”라는 표현이나 『순자』에 나오는 “방 안에 앉아 사해를 보고 지금을 살면서 먼 옛 일을 논한다.[座於室而見四海, 處於今而論久遠]”라는 표현과 통합니다. 이를 자기 식으로 수용해서 다시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성(成)’은 ‘이루어지다’라는 뜻입니다.


효자(孝者), 소이사군야(所以事君也), 제자(弟者), 소이사장야(所以事長也), 자자(慈者), 소이사중야(所以使衆也).

집안을 다스리는 원리를 나를 중심으로 ‘효(孝)’와 ‘제(弟)’와 ‘자(慈)’ 셋으로 압축했습니다. 제(弟)는 ‘아우’라는 뜻이 아니라, ‘제(悌)’, 즉 ‘공경하다’라는 뜻입니다.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윗사람에게는 공손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자애로운 것이 바로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집안을 이끌 수만 있다면, 그 집안이 저절로 교화되어 안팎으로 효도와 우애와 자상함이 넘쳐날 터이니, 당연히 올바로 서게 됩니다. 이를 집안이 가지런해진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