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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공부하는 삶에 대하여(김우창)

공부하는 삶을 살다 보면, 시간이 가장 귀중하다는 것을 저절로 몸에 익히게 됩니다. 지도학생들을 처음 만나면, “삼십 분 다방에서 잡담하고 지나면 오늘 내가 손해 봤다고 좀 느껴야 공부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요. 삼십 분 낭비했다면, 공부하는 사람 자세로는 좀 틀린 거라고. 그에 대한 후회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지요. ―김우창


올해 열네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김우창, 문광훈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이다. 정신의 까마득한 높이를 갖춘 스승과 자기 세계를 이미 넉넉히 갖춘 제자가 나누는 질문과 대답이 아름답다. 8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아마 벌써 두 번째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덮은 지 며칠이 되었지만, 끝없이 여운이 남는다. 

올해 말에 민음사에서 『김우창 전집』이 나올 때, 다시 간행되기는 하겠지만 이 책 역시 절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생산된 인문학 서적들 중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값하는 책들을 서점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 책은 다행히 전자책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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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성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인식론적 반성으로 얻어지기도 하지만 좋은 사회에서는 그 투명한 마음이 그냥 거기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내면적 진정성 속에서 저절로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 김우창


김우창의 글은 늘 충격으로 다가온다. 간결한 문장 속에 사람이 어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담아낸다. 이 문장도 그렇다. 내면성이란 관념적 사투의 결과물이 아니라 본래 “그냥 거기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기의 내면적 진정성 속에서 저절로 행동할 수 있는” 좋은 사회에서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영혼을 탐구한다. 자기를 스스로 치유하려 한다. 고독주의자로서 자신을 은둔함으로써, 거기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때때로 우리는 기적적으로 영혼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우창은 그런 접근법에 슬며시, 그러나 단호하게 반대한다. 영혼의 건강이란 사회의 선함을 드러내는 표지일 뿐이다. “그냥 거기 있음”으로 살아도, 어떤 인위의 노력이나 행위가 없어도 인간이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노자 이래 우리가 꿈꾸어 온 무위(無爲)의 삶의 특징이다. 아, 그러나 좋은 사회란 도대체 어떤 사회란 말인가. 좋은 스승은 물음을 남기고, 제자는 그 물음을 받아 답을 찾으려 애쓴다. 아래에 1장만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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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존중하지 않고는 학문적 업적이나 문학적 업적이 잘 안 되지요.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인 것을 너무 강하게 하다 보니까 일상생활 없이 문학이 생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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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관심을 가지고 사물을 보는 습관과 거기에서 얻어지는 레퍼토리의 집적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되어야지요. (중략) 삶은 레퍼토리의 집적입니다. 피아니스트가 손가락 가지고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머리에 집적된 레퍼토리입니다. 사람 사는 데도 어릴 때부터 삶의 중요한 것들에 대하여,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레퍼토리를 만들어 가야지요. 학교 공부가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자신이 지나가는 삶의 길을 의식하면서 지나가는 것이 그 레퍼토리를 만드는 방법이지요. 나이가 들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경이에 가득한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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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의 안정성의 기초는 어떤 큰 사회가 아니라 지역 사회, 즉 토대와 이 토대에서 나오는 안정성, 또 이 안정성을 구성하는 믿음, 신뢰, 정직성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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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야겠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푸코는 '자기를 돌보는 것(souci de soi)'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돌봄에서 필요해지는 것이 이성이고 양심입니다. (중략) 집단 이전에, 자기의 삶을 잘 살려고 하는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행동의 원리가 도덕이고 윤리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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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명예는 존중하되, 공공기구의 명예는 오히려 잘못을 분명히 밝히는 데서 수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