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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교육에 대하여(김정희)

모든 사람들이 아이였을 때에는 총명한데, 이름을 기록할 줄 알만 하면 아비와 스승이 ‘경전의 주석’과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들의 위해 모아놓은 어려운 어구 풀이’들만을 읽힘으로써 그 아이를 미혹시키는 바람에, 종횡무진하고 끝없이 광대한 고인들의 글을 읽지 못하고 혼탁한 흙먼지를 퍼먹음으로써 다시는 그 머리가 맑아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재설(人才說)」(추사 김정희)



읽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 따라 가지 못한다. 시간을 쪼개서 간신히 읽을 뿐, 블로그에 정리할 짬을 내기가 정말 어렵다. 올해 열다섯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길 위의 인문학』(경향미디어, 2011)이다. 구효서, 한명기, 신창호 등이 독자들과 함께 인문학의 현장을 답사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한 강연 기록을 모은 것이다. 강연자의 기존 서적을 요약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어서 많이 아쉽지만, 현장 사진과 함께 가볍게 읽는 맛 또한 괜찮다. 

올해 책 읽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지속적으로 찾아갈 생각으로 선행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참고하려고 읽었는데, 퇴계, 남명, 추사, 다산의 유적에 대한 답사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생각의 유적과 생애의 유적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요즈음 가장 관심 있는 ‘공부’라는 주제를 알게 모르게 다루고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책에 삽입된 추사의 「인재설」을 읽자니 입시 교육의 폐해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새삼 알게 된다. 자기 주변의 문제에 대한 탐구를 통해 머릿속으로 받아들인 지식을 자기 고유의 지식으로 창조하지 못하고 ‘주석’과 ‘풀이’를 통해서 앵무새처럼 낡은 해석을 제 것인 양 답습하는 것은 우리 교육의 오랜 병이다. 게다가 읽고 외고 공부하는 것이 글 자체가 아니라 주석과 해석이어서 읽는 사람이 머리가 맑아지지 못한다는 추사의 지적은 오늘의 교육이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밝혀 준다.

책 전체가 하나의 지향은 없기에 통독하기보다는 곁에 부려 두고 짬짬이 읽을 만하다. 특히 인용된 옛 글들은 문장이 아름답고 뜻이 굳세어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