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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혁명에 대하여(조세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성과힘, 2000)을 다시 읽다. 거의 스물다섯 해 만에 이 책을 읽는 것 같다. 예전에 문학과지성사 판으로 읽었을 때에는 없던 서문이 붙어 있다. 지사(志士)로서의 결기가 아름다운 글이다. 단숨에 매혹되고 단숨에 빠져들었다. 어릴 적 읽지 못했던 소설의 세부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어쩌면 소설이란 청년의 예술이 아니라 중년의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선배 세대들의 경우를 보아도 젊은 시절에 인간의 진짜 척추라고 믿고 애써 간직하려고 했던 귀한 가치들, 그리고 개개인의 마음속 소유인 아름다운 정신을 부양가족 거느린 가장이 되며 밖으로 던져 버리는 일이 흔했다.


이백 자 원고 용지로 계산해 마흔 몇 장 짧은 것들로부터 이백오십 장을 넘지 않는 조금 긴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두 편으로 이루어진 ‘난장이 연작’은 하나하나를 따로 놓고 보면, 분열된 힘들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 책은 분열된 힘들을 모아 통합하는 마당이었다. 나는 작은 노트 몇 권에 나뉘어 씌어 그동안 작은 싸움에 참가한 적이 있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아직 분명한 정체를 잡혀보지 않은 소부대들을 불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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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의 노력이 어떠했나 자신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온 것 같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뫼비우스의 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