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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박진영의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소명출판, 2013)을 읽다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
박진영 지음/소명출판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은 대개 번민의 산물이지만 또 여가의 결과이기도 해서, 시절이 작은 겨를조차 앗아 갈 때에는 이곳은 좀처럼 채워지지 못하고 텅 비게 된다. 그사이 이런저런 글도 몇 편 쓰고, 책도 십여 권 읽었지만 마음이 전혀 따르지 못해서 여기에 옮겨 두지 못했다. 입시를 앞둔 아이들 탓에 여행을 떠나기 힘든 긴 연휴를 틈타 서재를 정리한 후에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꾸준한 마음이 계속될지 모르나, 일단 내키는 대로 계속 적어 볼 요량이다. 

근대 자본주의와 책의 불멸성과 편집자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이라면, 박진영의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소명출판, 2013)을 한 번쯤은 읽어야 할 것이다. 대한제국의 소멸과 일제강점기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격변의 시기에 한 출판사와 그 편집자가 어떻게 시대의 격랑을 해쳐 나갔는가를 끈질기게 문헌을 더듬어 가면서 실증적으로 복원한 역저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 출판사 신문관과 그 중심에 있던 편집자 최남선을 이처럼 정밀하고 생생하게 보여 준 것은 이 책이 거의 처음이지 싶다. 본래 논문으로 발표되었고 책으로 나오는 과정에서도 문장을 크게 손보지 않은 탓에 읽는 데 다소 지루한 맛은 있지만, 한 출판사의 운영이 근대 지식과 문학의 탄생과 구축에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이처럼 치열하고 장엄하게 묘파한 책을 만나는 것은 마치 해돋이의 장관을 보는 듯한 기쁨을 준다. 밤하늘의 별들을 이어 신화를 만들어 낸 이야기꾼들처럼 오랫동안 퀘퀘한 문헌들을 뒤적이며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희미한 길들을 찾아낸 저자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익히 알다시피, 1908년 육당 최남선의 주도로 설립된 신문관은 한국 최초의 근대 출판사로 《소년》과 《청춘》의 발행처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십전총서’ 등 수많은 기획물로 한국 출판의 여명을 장식한 출판사이다. 더 나아가 신문관은 근대 초기 조선의 문화 역량이 한곳으로 집약된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신문관이라는 출판 브랜드는 사회 운동의 확산과 근대 한국학의 성립을 위한 물리적 기반이요 문화적 상징이었다. (124쪽) 


편집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이 출판사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는데, 올해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가 박진영 교수의 논문들을 읽고 그 전체를 살펴보고 싶어서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지만, 특별히 흥미로웠던 것은 다음과 같다. 


(1) 신문관의 출판 운영 시스템 : 신문관은 초기부터 자본, 기술(인쇄), 편집, 영업이 분업화된 채로 운영되었으며, 단지 출판의 이상을 위해 애썼을 뿐만 아니라 잡지를 운영하여 독자를 확보하는 등 생존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선진적 출판 역량을 도입한 것이겠지만, 이 정도 역량을 갖춘 출판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드물다는 점에서 이 출판사의 경영에 대한 연구는 좀 더 정밀하게 수행될 필요가 있다.

 

독자적인 자본과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신문관이 사업 영역을 공세적으로 확장하면서 단기간에 한국 출판문화의 전당으로 고도성장한 배면에서는 정기간행물을 통해 축적된 탁월한 기획 및 편집 재량과 고정 독자 확대가 막중한 역할을 떠맡았다. (60쪽) 


(2) 번역 출판의 역할 : 자국의 출판 역량이 고갈되거나 한계에 부닥쳤을 때, 번역 출판은 새로운 콘텐츠의 영역을 발굴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독자들을 포착함으로써, 단지 출판의 저변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체의 탄생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신문관은 창립 이래 이러한 역할을 맡아 해냈으며, 편집자 최남선, 김여제, 이광수 등 기예의 젊은이들은 뚫리면 글을 쓰고 막히면 번역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역량을 충전해 갔다.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를 발견하면서 어린이를 포착하고 근대 동화를 상상해 낸 것은 신문관의 번역 출판이 보여 준 시대정신과 상상력의 승리라 이를 만하다. 신문관의 생명력이란 비단 물리적 인프라 덕분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121쪽) 


한편, 1부의 갈피짬(부록)으로 제시된 청년 편집자 최남선의 초상은 아름답고 활기 넘친다. 그로부터 30년 후 이런 이가 시대의 변전을 이기지 못한 채 친일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이야말로 역사의 가혹함이 아닐까 싶다. 


열여덟 살 청년 편집자의 책상 위에는 일본과 실시간으로 이어진 동시성, 세계 곳곳에서 횡행하는 새로움, 최첨단의 생생한 지식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최남선의 눈은 신문이며 잡지며 책을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최남선의 손은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 가며 베끼고 흉내 내고 짜깁기했다. 최남선은 무엇인가를 고르고 나머지를 버리는가 하면 이것과 그것을 한데 이어 붙이고 그것과 저것을 멀찌감치 떼어놓았다. 마르고 꿰매는 손, 번역하고 편집하는 손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남선이야말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문성과 기획력을 갖추고 등장한 번역가요 편집자임이 틀림없다. (중략) 가위와 풀이 맡은 역사적 임무는 그때, 거기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 일, 역사성을 띤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174~175쪽) 


일찍이 유종호 선생은 당신 평론집의 제목을 `사회역사적 상상력`으로 달았거니와, 그러고 보면 근대 한국의 일급 지식인들은 원했든 아니든 늘 편집자로서 살아갔던 셈이다. 번역과 그를 통한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편집자의 한 운명으로 주어졌다. 최남선은 온몸으로 그 운명을 살아갔고, 박진영 교수는 날카롭게 이를 주시해 보여 주었다. 


편집은 곧 번역이며, 번역가가 곧 편집자다. 편집자 겸 번역가는 원본의 수용자이자 사본의 전달자인 동시에 새로운 원본의 생산 주체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내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역사성을 부여하는 주체가 바로 번역가 겸 편집자다. 그러한 뜻에서 최초의 전문 편집자는 1908년 11월에 처음 탄생되었다. (176쪽) 


이 감격한 문장에 공감하지 않을 출판인이 누구란 말인가. 아,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운명을 살아가지 않는가.

http://bookedit.tistory.com2014-05-04T03:26:01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