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서평/책 읽기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옮김, 세종서적, 2008)을 읽다


『히말라야 도서관』 표지


지난 주말에는 잦은 술자리로 지쳐 있어서 조금 가벼운 책을 읽으면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그럴 때에는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내게는 가장 편안한 일이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골라서 소파 옆에 놔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네팔,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학교와 도서관을 지어 주는 사업을 벌이는 사회 운동가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이명혜 옮김, 세종서적, 2008)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세계 오지에 3000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라는 부제에 깔끔하게 압축되어 있다. “스타벅스가 6년 동안 500개의 매장을 열었다면, 그는 30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라는 표지 뒷글은 이 책의 가치를 한눈에 보여 준다. 

이 책의 주인공 존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면서 소프트웨어를 팔던 사람이었다. 어느 해 네팔 휴가 여행에서 우연히 책을 전혀 갖추지 못한 초등학교를 방문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학생 500명이 재학 중인 그 학교에는 자물쇠로 잠긴 캐비닛 하나를 채우지 못할 정도밖에 책이 없었다. 그마저 모두 관광객이 버리고 간 책으로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합한 것뿐이었다. 그 순간 어릴 적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과 그 책들이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 주었는지를 떠올리면서 그는 책 없는 삶이 네팔 아이들의 미래를 파괴하고 복구 불가능한 나락 속으로 떨어뜨릴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때 그곳 선생님이 책을 가지고 다시 와 달라고 말하자 존 우드는 엉겁결에 책을 가득 싣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해 버린다. 이를 운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돈을 좇던 인생에서 의미를 좇는 인생으로 옮겨 타려면 작은 인연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이에 용기를 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놀라운 실행력을 보여 주며 승승장구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일급 마케터답게 그는 곧장 자신이 내뱉은 약속을 실행하러 나선다. 

며칠 후 그는 네팔의 수도 카투만드의 한 호텔에서 전자 우편 주소들을 뒤져서 친구들에게 네팔의 아이들을 위해 책을 기증해 달라고, 그 책들을 미국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보내 주면 네팔까지 운송료는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주변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우편이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번 재전송을 거치면서 잘 알던 친지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그의 집으로 책 수천 권을 보내온 것이다. 존 우드가 이 책들을 네팔로 보낸 후 아버지와 함께 나귀에 나누어 싣고 초등학교에 전하는 첫 장면을 읽다가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가가 어느새 뜨거워졌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존 우드의 생애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그는 베이징 지사에서 발령을 받아 확장일로에 있는 중국 시장을 개척해 가면서 출세가도에 올라서 있었다. 그러나 일단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묻는 일이 잦아지면서 가슴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싹트기 시작한다. 몇 달 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를 만난 것을 계기로 그는 마케팅 일에서 근본적으로 회의를 느끼고, 좀 더 의미 있는 일, 그러니까 교육받을 기회도 책을 읽을 기회도 없이 살아가는 오지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 주고 책을 전해 주는 일을 하면서 살 것을 결심한다. 그것이 그가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룸투리드(Room to Read)의 설립 배경이다. 일단 의미가 가슴속에 가득 들어차면 돈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극도로 시시해지는 법이다.

한편, 존 우드가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스타트업을 시작한 기업 경영자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만하다. 가치와 현실을 끊임없이 조화해 가면서도 처음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도 이 책에 따르면 존 우드는 그 일을 훌륭하게 해 나가고 있다. 정갈하면서도 우아한 문장과 신념이 있는 사람 특유의 논리를 읽는 것은 이 책의 독자들을 위한 또 다른 보너스이다.

존 우드의 삶은 오래전에 읽은 성경의 한 구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태복음」 6장 31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말 그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가치가 가리키는 삶이 열정을 만날 때 한 사람의 등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광이 그를 둘러싼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말대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이끄는 삶,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한다. 특히 두 번째 인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중년들에게는 안성맞춤의 책이다. 



==== 책 속에서 =====

― 나는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의 한마디는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했다. "우드 씨, 책을 가지고 다시 와 주세요." (19쪽)

― 나는 잠깐 동안 이런 단어들을 명상하다가 명상하다가 일기장을 펼쳤다. "우리가 물질적인 부자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 어떤 경우는 운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내가 물질적으로 부유해졌다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그걸로 무엇을 하는가이다." (23쪽)

― 빌린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내 취침 시간은 언제나 늦어지곤 했다. 가족들이 잠들고 나서도 오직 내 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고, 책을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책, 그런 책이 없는 세상을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25쪽)

― 자신이 보여 주는 능력과 앞으로 보여 줄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아가는 것을 겁낼 이유는 없다. (키르케고르) (27쪽)

― 그들[네팔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돈보다 우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품 있는 사람들이었다. (30쪽)

― 이민자들과 도서관 사이의 특별한 연계는 뉴욕에서는 이미 백 년 전의 이야기이다.....(중략)..... 이용자가 가장 붐비는 도서관들은 언제나 최근 이민 인구가 가장 늘어난 지역에 있다. (인터네셔널 해럴드 트리뷴 기사 인용) (35쪽)

―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게 되면 대체로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폴 서로) (71쪽)

― 얘야, 네 인생을 만족시킬 단 한 사람은 너 자신뿐이란다. 네 엄마와 나 또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우리를 기쁘게 만들려 하지 마라. 네가 생각할 것은 오직 너 자신에게만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이다. (79쪽)

― 현실을 무시한 일처리는 일의 진행을 가로막는다. 사업이 손해를 본다면 결과적으로 도산하게 마련이다. 많은 자선 단체들은 현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면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는 사냥꾼을 피해 계속 모래에 머리를 묻고 있는 타조와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재앙을 부르는 또 다른 방법이다. (105쪽)

― 타인에게 부탁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웃에게 자동차 배터리 충전용 케이블을 빌려 달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물질적 대가가 없는 기부를 후원자에게 요청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다. (110쪽)

― 존 우드의 다섯 가지 원칙. 1. 베푸는 즐거움을 알려 준다. 2. 결과를 후원자들에게 보여 준다. 3. 최소한의 경비를 쓴다. 4. 열정을 판다. 5. 사람들은 가치 있는 일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

― 명성을 쌓기는 힘들지만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111쪽)

― 후원자들은 희망을 보고 싶어 한다. 나는 가난에 찌든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신 졸업장을 받은 화사한 어린이들의 모습, 언청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활짝 웃는 소녀, 새로운 우물을 이용하게 된 농부들의 모습을 보여 주려 한다. 나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 주고 싶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새로 연 도서관을 본, 장학금을 받은 소녀들을 소개하는 기쁨의 눈물이고 싶다. (112쪽)

― 중요한 도전을 겁내거나 하찮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당신을 도울 잠재적인 후원자들의 관심 또한 불러일으킬 수 있다. 후원자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의구심은 "나는 돈을 내고 있는데 변화가 별로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후원자들은 대담한 목표를 선언하는 누군가를 만날 깨 그들을 주목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의견을 말할 시간을 벌 것이다. (150쪽)

― 오직 한 명의 후원자에게만 의지하지 않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목표였다. 자선 단체 세계에서는 한 조직이 하나의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고 있는 때가 자주 있다. 이는 후원자 1인의 결정이 조직 전체를 해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156쪽)

― 9.11은 우리가 매우 어지러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알려 주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빛은 어둠을 이깁니다. 교육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분명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은 지금 당장 새로운 변화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후원하시길 희망합니다. (167쪽)

― 결과에 집중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배운 첫 번째 문화였다. 나는 결과를 말하고, 그것을 자주 업데이트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우리가 했던 것을 말하는 게 더 효과가 좋았다. (173쪽)

― 개인은 공격할 수 없지만 생각은 공격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의 말) (175쪽)

― 그녀는 열정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 숫자, 그렇다, 숫자를 알았다. 어떤 새로운 조직이든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으면 그 조직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열정이 있고 숫자를 아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은 내가 스티브 볼머를 계속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다. (178쪽)

― 나를 훌륭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위대한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183쪽)

― 충성은 상호 교환이다. (184쪽)

― 나는 꿈꾸는 대신 움직인다. 카네기가 미국에서 그랬듯 나는 개발도상국가에서 도서관을 설립하며 매일 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186쪽)

―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비난해선 안 된다.(중국 속담) (195쪽)

― 당신이 한 소년을 교육하면 이는 어린이 한 명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소녀에게 공부할 기회를 준다면 그녀는 가족 전체와 다음 세대까지 교육을 전달할 것이다. (210쪽)

― 할머니는 언제나 "책을 갖고 있으면 절대로 외롭지 않다."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212쪽)

― 학교는 희망의 상징이었고 마을에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인간은 재난과 고통에서도 실패를 극복하고 전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전쟁, 구호 지역, 지해 지역에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의사들과 기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들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앉아서 도우려 하지 않고, 움직이고 행동한다. (245쪽)

―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생각만 하지 말라. 뛰어들라.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고려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가족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계획도 짜야 할 것 같다. 이런 걸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매우 적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246쪽)

― 사실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누군가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장애물을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 뛰어들라. 반대 의견이 당신을 집어삼키도록 절대로 놔두지 말라. (2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