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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메튜 베틀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강미경 옮김, 넥서스북스, 2004)를 읽다


매튜 베틀스,『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넥서스북스, 2004).


추석 명절 첫날, 노원정보도서관에서 빌려온 메튜 베틀스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강미경 옮김, 넥서스북스, 2004)을 완독했다. 출간되었을 때 상당히 흥미로워 보여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절판되는 바람에 구입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10월에 대전 유성구 도서관 모임에서 특강이 있는데, 이 기회를 틈타 평소 많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도서관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책들을 찾아서 읽는 중이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 사노 신이치의 『누가 책을 죽이는가』(한기호 옮김, 시아출판사, 2002), 로널드 맥케이브의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오지은 옮김, 이채, 2006), 이노우에 스스무의 『중국 출판 문화사』(장원철·이동철·이정희 옮김, 민음사, 2013), 나카미네 시게토시의 『독서 국민의 탄생』(다지마 데쓰오·송태욱 옮김, 푸른역사, 2010), 셔먼 영의 『책은 죽었다』(이정아 옮김, 눈과마음, 2006) 등을 읽으면서 현대의 책 문화 자체에 대한 생각을 다듬을 예정이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를 쓴 매튜 베틀스는 하버드대학교의 사서로 근무 중인 인문학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서관과 책과 권력을 둘러싼 역사를 객관적으로 추적한다. 이런 책들이 흔히 도서관이 아니라 책에 집중하기 쉬운 데 반해, 이 책은 철저하게 도서관 그 자체만을 다루고 있다. 도서관이란 무엇이고, 왜 생겨났는가. 권력은 왜 도서관을 필요로 했고, 때때로 흉포함을 드러내면서 이를 파괴하려 했는가. 도서관 관리자인 사서란 무엇이고, 그 모습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해 왔는가. 도서관은 문화의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또 실제로 어떤 일을 해 왔는가. 앞으로 도서관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은 놀랍게도 어떤 입장에 기대지 않은 채, 그야말로 가치중립적으로 이러한 물음들에 답해 간다. 온갖 책들에 평등한 부가 기호를 붙여 나가는 사서가 쓴 책답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 자체에 대해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괜찮은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다.

그러나 도서관의 역사는 읽기의 역사나 책의 역사와 상당히 겹쳐 있기에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접한 것은 많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는 정말로 인상 깊어서 여기에 기록해 둔다.

(1) 오늘날 살아 남은 고대의 책들은 거의가 권력의 관리 바깥에 있었던 책들이라는 점. 권력자들이 지식 자본을 독점하기 위해 거대한 도서관을 지어 모아들인 책들은 모조리 그 권력의 소멸과 함께 몇 세기도 견디지 못하고 소멸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책들은, 산간 벽지의 조그마한 사설 도서관에서, 무덤 속에서, 개인의 서재 속에서, 그러니까 권력의 눈길이 절대로 닿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 

(2) 먹을 이용해 탁본을 뜰 수 있도록 불교 경전을 비석에 새겨 둔 중국의 '비림(碑林)'은, 세계 최초로 자료 복제가 가능했던 도서관이었고, 이 도서관으로부터 활자를 이용한 인쇄 기술이 나왔다.

(3) 오늘날 서양 문명의 뿌리가 그리스, 로마에서 왔다고 하지만, 사실 로마는 공식적으로는 지적 생활의 진흥에 그리 열심이지 않았다. 학교도 부족했고, 작가나 시인 등을 위한 경연도 없었으며, 기술자나 교사 같은 전문직에게 월급을 주지도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황제나 원로원 의원의 후원 등 개인 인맥에 의존해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로마 황제들은 공공 도서관을 지어 주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이건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4) 이슬람 세계에서 책의 전성 시대가 열린 것은 창시자 마호메트가 문맹이라는 사실에서 역설적으로 가능했다는 것. 그는 책 자체를 믿을 수 없었고, 참된 신앙은 쿠란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베껴 쓰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옮기는 작업에 있다는 점을 알라의 입을 빌려서 주장했다. 이로써 이슬람 세계에서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페르시아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달했던 모든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해 보관했다. 976년 코르도바의 칼리프 하킴이 세운 도서관에는 도서 목록이 44권, 소장 도서는 40~60만 권에 이르렀는데, 이는 유럽에서 당시 가장 큰 도서관이 불과 수백 권의 책만을 보유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이슬람에서 보존되지 못했다면, 페르시아의 시들도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도 오늘날까지 전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5) 아라비아숫자는 수학자가 아니라 8세기에 바그다드의 한 무슬림 도서관에서 고안되었다는 것. 마찬가지로 이 숫자 체계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옥스퍼드 대학 도서관에서 원고 행수를 계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숫자는 처음에 수학 기호가 아니라 분류 기호였던 것이다. 

(6) 유대교 회당에는 게니자라는 책의 무덤이 있다. 유대교의 모든 책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들은 책에도 영혼이 있다면 책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책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파편, 그 시체에도 하느님의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카이로에 있는 유대교 회당의 게니자에는 9세기 이후 책의 시체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덤 속에서 서서히 썩어 가면서 온통 뒤섞였지만 그것은 쓰레기 하치장이자 가장 보존이 잘된 도서관이기도 했다. 나중에 그곳이 파헤쳐졌을 때 수많은 희귀 문서들이 책의 무덤에서 귀환했다. 중국의 무덤에서 발견되고 있는 죽간들 역시 그러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책은 가장 잘 보존된다. 눈이 멀어 가던 보르헤스가 발견한 이 역설은 책과 인간의 관계를 가장 잘 상징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책에게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 책 속에서 ===

―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책을 가지고 있느냐이다.(세네카) (22쪽)

― 도서관의 책은 단지 소비재가 아니라...... 자본재다. (토머스 제퍼슨) (22쪽)

―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책 속에 존재한다. (말라르메) (23쪽)

― 도서관에는 세상의 기록된 기지가 모두 모여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두고두고 보관할 만한 진정한 보물은 없는 것 같다....... 셰익스피어와 밀턴은 자신들이 어떤 이웃을 두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30~31쪽)

― 규범의 역사로서의 문학의 역사는 우리의 예상보다 덜 혁신적이고 훨씬 진부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인생이다. 따라서 문학에서 단조로운 특성을 배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프랑코 모레티) (32쪽)

― 보르헤스의 화자는 도서관에 이르는 만능열쇠, 곧 삼라만상의 최종 이론을 발견했다고 믿는다. 그는 "도서관은 끝없이 순환한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영원한 여행자가 어느 방향에서든 도서관을 가로질러 갈 경우 수세기가 흐른 후에도 그는 똑같은 책들이 똑같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따라서 여기에서는 반복이 곧 질서다.) (34쪽)

―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 그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일지니.(키케로) (39쪽)

―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이와 같은 목표를 심화해 나가면서 지식은 자원이자 상품이며 체제 유지에 필요한 자본의 한 형태라는 생각을 확산시켰다. 도서관의 집중화와 강화는 통치자뿐만 아니라 학자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했다. 하지만 대형 도서관은 전쟁이나 재앙, 쇠퇴의 시기에 골치 아픈 문제를 제기한다. 도서관도 그 안에 있는 책들과 운명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서들은 고대 세계의 벽지, 즉 통치자나 광신자의 눈길이 닿지 않는 조그만 사설 도서관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살아 남을 수 있었다. (51~52쪽)

― 한나라 말인 1세기에 처음 설법을 시작한 불교 승려들은 경전을 새긴 석비를 세울 경우 신자들이 쉽게 탁본을 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돌 도서관과 '석비 숲'은 오늘날 중국 전역에서 발견된다. 돌에 새겨진 내용들은 수세기 동안 탁본을 통해 수백만 권, 수십억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먹만 있으면 탁본을 뜰 수 있었기 때문에 제작 비용도 싸게 먹혔다. (중략) 탁본을 통한 불교 서적의 보급은 나중에 활자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64~65쪽)

― 로마의 지적 생활이 분산적이고 비공식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로마 세계에서의 도서관의 발전과 확산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부나 권력의 추구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영역에서 지식의 추구도 순전히 개인이 가진 인맥의 문제였다. (중략) 그 이유를 추적해 보면 공식적인 문화 기관을 세워야 했던 로마로서는 아마도 도서관 건립이 가장 쉬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는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다. (74~75쪽)

― [로마의] 필사 문화에서 노예를 소유한 교양인은 작가이자 비평가, 독자였을 분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은 물론 다른 사람의 작품까지 펴내는 발행인이기도 했다. (76쪽)

― 왕들은 책을 한 곳에 모아 둠으로써 시간의 제물로 만들었다. 소아시아에서 스페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페르가몬에 이르는 고대 도서관들 대다수가 같은 운명을 맞았다. (중략)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즉, 고대의 도서관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기억 속에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불에 탔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83쪽)

― 카시오도루스의 견해에 따르면 성경에서부터 교부들의 저작, 나아가 주해서에 이르는 기독교 문학과 호메로스에서 시작해 고대의 웅변가, 극작가, 역사가에 이르는 세속 문학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문학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중세의 도서관에 이어 바티칸 도서관과 같은 르네상스기의 도서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90~91쪽)

― 이슬람 세력의 발흥과 함께 바야흐로 도서관의 전성 시대가 열렸다. (중략) 알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믿도록 하기 위해 마호메트를 시켜 그의 추종자들에게 코란을 기록하게 했다. 알라에게서 말씀을 받아 적으라는 명령을 받은 마호메트의 추종자들은 열심히 글을 익혔다. 제국이 성장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정복한 사람들한테서 지식을 배우는 데 열중했다. (92쪽) 

― 그리스 인과 로마 인에게 책은 지식을 보관하는 용기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책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들이 만든 두루마리는 검소하고 소박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슬람의 필경사와 삽화가들은 책을 아름답게 치장했고, 그런 풍토 속에서 장서가들도 책의 내용만큼이나 책의 모양과 촉감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96쪽)

― 라틴어는 아랍의 지적 문화가 터키, 몽골, 십자군에 의해 차례로 파괴된 뒤에도 살아남았다. (97쪽)

― 중세의 특징, 즉 "삶의 모든 영역을 규정하는 당당한, 혹은 무자비한 공공성"(호이징가) (100쪽)

― 메디치 가가 수집한 책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중략) 먼저 '철학의 후원자라는 명성을 안겨 준 책'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메디치 가 사람들은 학자이자 교양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두 번째로는 '정직하고 예의 바른 가문이라는 평판을 안겨 준 책', 다시 말해 도덕과 사회 관습에 관한 책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책은 가문의 품위를 드높이는 효과를 가져 왔다. 세 번째로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고전'으로, 이를 통해 메디치 가는 오늘날까지도 인문학의 후원자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마지막으로 '족보가 있는 책'을 들 수 있는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전 주인의 서명이 적혀 있거나 장서표가 붙은 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메디치 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그들의 이름과 결부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겼다. (101쪽)

― 중세 시대에는 책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은 물론, 읽고 쓰는 능력까지도 엄격한 기준에 따라 구분되었다. 하지만 인문주의는 새로운 종류의 책(즉, 다시 발견된 옛날 책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독서 형태를 제시함으로써 독서의 정치경제학을 전복시켰다. 군주들은 더 이상 성직자에게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 대신 고대 문학이 군주와 군대 지도자들에게 풍부한 교훈을 제공했다. (102쪽)

― 대형 도서관의 탄생은 르네상스기에 태동한 신학문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군주와 상인, 교황에 의해 주도되었다. 출판의 자유라는 도전 속에서도 지식에 대한 지배는 그들에게 새로운 권력 기반을 제공했다. (중략) 도서관 건립을 지시한 후원자와 교황, 군주들에게 저술 작업은 일종의 필경 업무에 불과했다. 고전의 필사에 이어 새로운 작품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 작품이 빛을 보려면 후원자의 구미에 맞아야 했다. 후원자는 자기가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했다. (105쪽, 107쪽)

― 알파벳을 이용한 도서 분류 방법의 개발은 또 다른 도구, 곧 아라비아 숫자 체계의 등장을 가져왔다. 13세기 중반 옥스퍼드의 학자들은 원고 행수를 계산하는 데 처음으로 숫자를 사용했다. (중략) 8세기 중반 바그다드의 한 무슬림 도서관에서 고안된 아라비아 숫자는 이렇게 해서 옥스퍼드와 같은 대학 도서관을 통해 유럽에 첫선을 보였다. (111~112쪽)

― 책은 인류의 저주다. 현존하는 서적의 9할이 시시하고 똑똑한 책은 그 시시함을 논파한다. 인간에게 내리는 최대의 불행은 인쇄의 발명이다.(벤저민 디즈레일리) (119쪽)

― 도서관은 통치라는 짐을 짊어진 사람들의 교화를 위해 시대를 초월하는 규범을 보관하는 지혜의 보고인지, 아니면 형식이나 내용의 구애를 받지 않고 마음껏 지식을 꽃피울 수 있는 책의 낙원인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120쪽)

― 인쇄술의 도입으로 책 제작이 쉬워지면서 비평이 시작되었다. 즉 고대의 책들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비평이 생겨났다.(윌리엄 워턴) (130쪽)

― 도서관 자체는 어두운 곳이다. 그림자들이 어른거리는 '컴컴한 구석'에서 책과 독자들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도서관은 일종의 연옥이다. 거기서 책들은 종류나 특성에 관계없이 뒤죽박죽 섞인 채 자신의 정체성에 혼동을 일으킨다. 정지와 혼란의 장소인 도서관은 그와 동시에 소동과 지적 전투, 담소의 장소이기도 하다. (146쪽)

― 인류가 이룩한 단 하나의 가장 위대한 기술적 진보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책을 꼽겠다.(대니얼 부어스틴) (165쪽)

― 인쇄술의 발달과 독자층의 저변 확대로 사서와 독자의 관계가 사서와 책의 관계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사서의 주된 이미지는 (책의) 관리자에서 (독자의) 보모로 바뀌었다. (169쪽)

― 프로메테우스의 충동이 가져온 비극적인 결함, 즉 연민과 자만은 19세기의 사서들이 느꼈던 두 가지 극단적인 감정이었다. 연민이 수준 낮은 독자들을 향한 것이었다면, 자만은 도서관이 제공하는 문화와 사회의 가능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70쪽)

― 저는 가난한 학생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학문을 연마하고, 권위자에게 의견을 구하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연구를 수행하는 데 이 나라의 부자들과 똑같은 수단을 갖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저는 이 점과 관련해 정부가 그에게 진보적이고 무제한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파니치) (182쪽)

― 이성의 힘에 동화되고 교육의 세례를 받은 대중은 자본주의 원칙을 진리로 받아들에게 되었다. 교육은...... 가장 값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가장 값비싼 시장에서 (물건을) 팔도록...... 다시 말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는 법을 가르쳤다.(엘리스테어 블랙) (189쪽)

― [듀이는] 사서라는 직업의 내적 기준(다시 말해 사서에게 필요한 교육, 윤리, 업무 기준 등)와 외적 기준(사회에서의 사서의 역할)을 확립했다. (193쪽)

― 보모가 아이들을 양육하듯이, 사서는 도서관의 독자들을 양육한다. 독자는 책을 읽고, 사서는 독자를 읽는다. (203쪽)

― 세상에서 책만큼 기묘한 상품도 드물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쇄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팔리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장정(裝幀)되고, 검열되고, 읽힌다. 또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집필된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 책을 불사르는 행위는 결국 인간을 불사르는 것과 같다.(하이네) (214쪽)

― 게토의 독자는 심리적인 불구 상태다. 그가 바라는 최대의 희망은 탈출이다....... 어떻게는 생존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지닌 최소한의 관심이다....... 이럴 경우 두 가지가 가능하다. 즉 생각을 중단하기 위해 독서라는 최면제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그와는 정반대로 생각하기 위해, 즉 운명에 관심을 갖고 책이 주는 생각의 단초를 근거로 삶의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 책을 읽든지 둘 중에 하나다...... 독자는 종종 책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 환경을 비추어 보기를 좋아한다. (헤르만 크루크, 빌뉴스 게토 도서관장) (243쪽)

― 리처드 라이트는 대출 카드를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비자처럼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책이 지닌 순수한 표현의 힘에 놀랐다. 즉 책의 내용보다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그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감수성을 자극해 자라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소설이었다. 라이트에게 소설은 단지 여흥을 위한 즐거움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소설에서 자신의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했다. (248쪽)

― 서고를 벗어난 책들이/ 행인과 죽은 군인들의 영혼과 한데 뒤섞여/ 거리 이곳저곳에 나뒹굴었다. (고란 시미치Goran Simic, 보스니아의 시인) (254쪽)

― 그런 상황[겨울에 연료가 바닥이 나자 가지고 있던 책들을 난방과 요리를 위한 연료로 사용할 때]에서 책을 태울 때에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네. 먼저 무엇부터 태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지. 아무래도 30년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은 낡은 대학 교재를 먼저 태워야겠지. 그다음에는 복사본을 태워야지. 하지만 점점 곤혹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마련이라네. "오늘은 누굴을 태워야지? 도스토옙스키냐, 프루스트냐?"를 결정해야 한다네. (261쪽)

― 게니자는 책이 죽으면 가는 곳이다. (중략) 게니자는 히브리어로 '보관함'이라는 듯이다. 유대교 전통에서 게니자는 책의 무덤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수명이 다한 문서나 책은 유대교 회당의 게니자에 묻힌다. 전례집이든, 옛날 하가다든, 어린이용 습자책이든, 책장이 너무 닳아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모두 수거에서 적당한 매장 장소가 나올 때까지 게니자에 안치한다. 만약 책에 영혼이 있다면 거기서 떨어져 나온 잔해들도 성스러운 기운을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랍비 출신의 위대한 학자 솔로몬 셰크터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영혼이 떠난 시체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잘 갈무리한다. 시체가 아무렇게나 취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이 수명을 다하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 보관한다. 영혼처럼 책의 내용들도 하늘로 올라간다." (264~265쪽)

― 책 수집가가 볼 때 책의 진정한 자유는 책꽂이에 있다. (발터 벤야민) (280쪽)

― 책도 하나의 도구다. 모든 도구들이 그렇듯이, 책도 제작 과정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문이자 열쇠요, 여권이자 운송 수단이다. (280쪽)

― 신문은 시대 정신의 요람 역할을 해 왔다. 나아가 신문은 인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활자 미학의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의 신문의 추방은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기능을 담당해 온 신문에 대한 배신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지금 단지 책의 손실이 아니라 한 세계의 손실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289쪽)

― 눈이 보이는 사서는 맹인 보르헤스가 서고를 더듬거리다 발견한 성스러운 역설, 즉 책은 우리에게서 벗어날수록 보존이 더 잘 된다는 역설 앞에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인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계속 책을 수집해 들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역설이다. (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