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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0일(금)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을 안단 말인가? (7쪽)

―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하지 않는 일이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그리고 우리가 사랑할 때, 사랑하지 않을 때처럼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나요? (14쪽)

― 우리가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우리가 무얼 원하는지 또 무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만 이성이라 불리는 충동적인 생각, 또는 어떤 때는 좋게 어떤 때는 나쁘게 끝나는, 다만 위험스러운 충동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이성을 따를 뿐입니다. (20쪽)

― 신중함이란 하나의 가정이며, 경험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할 미래 결과들의 원인으로 여기게 한다. (22쪽)

― 고통이란 말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다만 우리가 경험한 적 있는 감각을 기억 속에서 떠올릴 때에만 뭔가 의미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30쪽)

― 난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동시에 누구에게나 속한다. 당신은 여기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있었으며, 나간 후에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37쪽)


(2) 리쩌허우,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3) 중에서  



― '사랑과 긴밀한 유대감', 서로 공감하며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깊이 있는 기본 구조다. (진시핑) (21쪽)

― 사람들이 모두 아는 하이데거라는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내가 비틀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때로는 걱정과 기쁨의 표정을 통해, 때로는 탄식을 통해, 나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일깨워 주었다. (한차오) (21쪽)

― 제가 말하려는 건 (중략) 철학의 주제를 세상의 인간과 인간의 정감 속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겁니다. 철학의 형식을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겁니다. 그리움, 아낌, 감상(感傷), 깨달음으로 공허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과 '번민'을 대체하고, 두려움과 번민에서 야기된 포스트모던의 '파편'과 '순간'을 대체하자는 거죠. (21~22쪽)

― 서양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는 딱딱하게 굳은 이성적인 추상으로 변했고, 철학에 있어야만 하는 시의(詩意)를 잊어버렸어요. 사실 존재의 비밀은 바로 시적인 생존에 있답니다. 이게 중국의 전통이기도 하고요. (23쪽)

― '하루의 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앉아서' 이성과 정감이 어우러진 인생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중략) '공안낙처(孔顔樂處)'지요. (24쪽)

― 중국에는 광의의 형이상학이 있답니다. 바로 인간의 생활의 가치와 의의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중략) 생활이 언어보다 크고 기하학보다도 크지요. 언어의 보편적 의미와 번역의 가능성은 인류의 의, 식, 주, 행(行)의 보편성에서 생겨나는 겁니다. (24~25쪽)

― 저는 대략의 뜻만을 파악하는 속독을 늘 주장합니다. 이건 옳은 거죠. 속독을 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요. 속독은 마음대로 읽는 게 아니라 고전처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을 빨리 읽는 것이지요. 독서에는 두 종류가 있답니다. 하나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독서, 다른 하나는 무목적의 합목적성을 지닌 독서지요. 둘 다 중요해요. (32쪽)

― 시간은 바로 생명 자체이지요. 정말로 천천히 숙독하고 정독해야 하는 책은 결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중략) 속독을 통해 많이 읽으면서 판단해야 하지요.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얼마나 맞고 틀렸는지 등을 판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서하면서 판단하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식별 및 평가 수준과 능력을 길러내고 단련하는 것이니까요. 독서하면서 제대로 판단해야만, 각종 문제를 대하는 자신을 더 예리하고 뚜렷하며 좀 더 이성적으로 변화시켜서 권위의 노예나 유행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답니다. (32쪽)

― 독서하지 않으면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독서하면 할수록 읽어야 할 책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요. (33쪽)

― 학문에는 질문을 잘하는 게 필요하지요. 그렇게 하면 우회로를 줄일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이공계 과정을 제외하고는 대학의 문과에선 주로 자기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오로지 독학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5쪽)

― "천지가 지니고 있는 생(生)의 덕"인 "생생불이(生生不已, 끊임없이 생기고 변화하다)"는 바로 질서에 의지해서 유지되는 것으로 "해와 달이 거기에서 운행하고" "만물이 거기에서 생겨난다" "천지는 커다란 미(大美)를 지니고 있되 말하지 않고 사시(四時)는 분명한 법칙(明法)을 지니고 있되 따지지 않는다"고 할 때, 이 '생(生)'과 '법(法)'과 '미(美)'가 바로 질서예요. 그러나 또 변화무쌍한 우연으로 가득하지요. 그래서 "미로써 선을 쌓고(以美儲善)" "미로써 진을 여는(以美啓眞)" 것입니다. '정 본체' 철학이 지향하는 것은 신비한 우주의 존재와 그것의 질서와 우연성입니다. (51쪽)

― 감성의 개체의 실천에서 유래하는 감각 경험이고, 지성은 인류의 실천에서 유래하는 심리 형식이지요. (54쪽)

― 주체는 상호 주관성을 포괄하는 거예요. 인간 자체가 바로 집단 속에 있잖아요. 상호 주관성이란 바로 집단과 개체, 이성과 본능의 관계랍니다.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