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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독서는 능동적인 사유 행위, 스마트폰 시대에도 오히려 늘어날 것

작년 가을,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새국어생활》에 인터뷰했던 것을 최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했다. 몇 가지 팩트는 그사이에 달라졌지만, 생각의 주된 흐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 옮겨 둔다. 

국립국어원 마크


독서는 능동적인 사유 행위스마트폰 시대에도 오히려 늘어날 것

민음사 장은수 대표를 만나다

 

답변자: 장은수(민음사 대표편집인)

질문자: 차익종(서울대학교 강사)

: 2012. 11. 29.()

: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옥 1층 찻집

 

제법 붐비는 전철 안이다. 그런데 앉은 이는 물론 선 이까지, 너나없이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찾고, 쓰고, 게임을 하고 있다. 대중교통에서는 으레 신문이나 책을 보겠거니 여겼더랬는데 불과 한두 해 사이에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뜻있는 이들은 이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라고 개탄한다. 인터넷 시대라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이 분분했는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스마트폰의 공습이란 말인가? 정말 독서는 희귀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로 떨어질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추세라면 글을 짓고 가르치는 일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는 출판인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본다. 우리나라 대표 출판사로 꼽히곤 하는 민음사의 장은수 대표(편집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스마트폰 시대라 책은 안 읽는다고요? 저는 걱정 안 합니다.”

 

차익종:안녕하세요, 스마트폰 사용자가 3,0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흔히 스마트폰 시대라서 책은 더욱 안 읽고 안 팔리겠다.”라고 짐작하는데, 출판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은수: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차익종: 뜻밖이네요. 출판사 사람만 만나면 위로해 주기 바빴는데……(웃음).

장은수: 저희 출판사가 최근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새로운 번역판으로 내놨는데 한 달 만에 5천 질이 판매되었어요.

차익종: 의외의 소식이군요. 시중 서점가에 민음사 이외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내놓았다고 알고 있는데, 이 책을 읽었거나 읽고 있는 독자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군요. 이를 어떻게 풀이하십니까?

장은수: 고급 교양물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지요.

차익종: 고급 교양물은 점점 적은 수의 독자만 일종의 구별 짓기처럼 읽게 될 것이라 내다보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흥미로운 풀이군요. 그런데 혹시 이 책만 그런 것 아닐까요? 이 작품을 원전으로 한 뮤지컬이나 영화가 인기라서…….

장은수: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원전에 대한 수요가 어마어마합니다.

차익종: ‘원전이라면, 문학이나 사상의 고전 작품들을 말하겠지요?

장은수: 그렇습니다. 또 저희가 최근 내놓은 서울대 인문학 시리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고요. 분명히 독서 환경의 변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독자 쪽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밀란 쿤데라 읽기강좌에 참여한 독자가 400

 

차익종: 독자 쪽의 변화라면 어떤 것인가요?

장은수: 우선 각종 독서 동아리가 활발히 생겨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가령 저희 출판사가 기획하는 저자와의 만남’, ‘저자와 함께 하는 여행같은 행사마다 열심히 참여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출판사가 주관하는 인문학 강좌도 성황입니다. 저희는 독서 강좌를 두 가지 종류로 1년 내내 운영하는데, 4주짜리와 12회 단기 강좌가 그것입니다. 4주 강좌는 도스토옙스키 읽기처럼 깊이 있는 주제나 책을 선정해서 진행합니다. 단기 강좌는 비교적 자유로운 주제를 선정해서 이뤄지지요. 그런데 어떤 강좌든 참가자가 많습니다. 가령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기강좌에는 400명이 왔지요.

차익종: 대단하군요. 참석한 독자는 어떤 분들이었나요?

장은수: 주로 3040대 독자들이었습니다.

차익종: 혹시 그건 강좌를 듣는 것이고, 직접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분도 있을 텐데요.

장은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책은, 그중 적은 수가 읽기만 해도 성공 아니겠습니까?

차익종: 그런데 20대의 참여가 적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습니다.

장은수: 20대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텐데요. 우선 대학에서 고급 문학이나 교양물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정이 있고, 이 세대가 또 구매력이 낮다는 점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구매력이 낮은 상태에서 스마트폰 등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하는 비용도 커졌지요. 애니팡 같은 게임에도 돈을 써야 하니까요(웃음).

 

특정한 읽기는 줄어들어

 

차익종: 그렇다면 스마트폰 시대라서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엄살일까요?

장은수: 어떤 미디어가 영향을 받느냐가 문제일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읽기가 감퇴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의 증가 때문인데요, 읽기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읽기가 줄어든다고 해야 합니다. 휴대폰 문자나 메일, 트위터까지 포함하면 읽는다는 행위는 더 확산되는 셈이니까요.

차익종: 특정한 읽기가 줄어든다면, 가령…….

장은수: 신문 읽기와 잡지 읽기의 위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문이나 잡지는 읽지 않지만 뉴스는 계속 읽는다는 사실이지요. 말하자면 구입 경로가 바뀐다고나 할까요.

차익종: 뉴스를 인터넷에서 보는 것이지요?

장은수: 그렇습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웹으로 통합된다고 다들 내다봅니다. 종이에서 스크린, 즉 화면으로 미디어의 표준이 옮겨 가는 추세인데요, 최종점은 이라는 것이지요.

차익종: 그렇다면 책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전통적인 책은 곧 종이책이고, 종이책 중에서도 전형적인 것이 바로 단행본이니, 단행본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요?

장은수: 영향을 받지요.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단행본 판매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레 미제라블>을 예로 들었습니다만, 저는 낙관합니다.

차익종: 전자책이 나오면서 종이책이 위축된다는 말도 있는데요.

장은수: 전 세계적으로 전자책과 종이책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책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전자책은 종이책을 스크린 매체, 즉 화면에 구현한 것인데요, 아직 그 물리적 실체가 확실치 않아요. 우선 여전히 읽기에 불편합니다. 요즘 나온 독서 도구나 스마트패드는 백라이트방식이기 때문에 실제로 책 밝기가 종이책의 1/10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문자도 흔들리지요. 그래서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해독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합니다. 똑같은 에너지를 들였을 때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이 50%밖에 해독하지 못하지요.

차익종: 전자 잉크가 개발되어 종이책처럼 읽을 수 있다는 뉴스도 읽은 것 같은데요.

장은수: 일종의 전자 잉크 기술이라고 하는데, 그건 더 심합니다. 가독성이 종이책의 1/100이라고 할까요. 페이지 전환도 매끄럽지 못하고요.

차익종: 미국의 아마존 서점에서 킨들이라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전자책 시장이 확 커졌다는 이야기를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로 무료 상품을 파는 전략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 전자책 시장이 넓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나누는 얘기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장은수: 그렇지요. 일본만 해도 전자책 시장이 이미 과잉이 아니냐 하며 내부적으로 경계한다고 들었고요. 우리나라에서 전자책이 현실화되기가 또 어려운 것이, 작가들이 여전히 전자책 출판을 꺼리고 있지요. 전자책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72년이니까 이제 40년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화두가 된 것은 아마존에서 킨들을 내놓은 2007년부터입니다. 겨우 5년이지요. 사실 전자책의 개념 규정도 아직 불확실한 상태이고요. 앞으로 어디로 변화할지 어떻게 존재할지 분명치 않아요. 일종의 0도 상태에 있다고나 할까요.

 

가벼운 책 읽기와 함께 고전 수요도 폭발해

 

차익종: 그래도 출판계에서는 종이책이 안 팔린다고 호소하고 있지 않나요?

장은수: 여러 면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우선 문학의 경우 국내 소설의 판매는 많이 줄었습니다. 그 대신 외국 소설 시장은 더 커졌습니다. 제일 크게 팽창한 것이 외국 고전 시장이고요. 다음으로는 일본 작가를 중심으로 한 추리 소설 혹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늘어났습니다. 3순위가 바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인데, 이 분야의 판매가 저조해진 것입니다. 일반 소설의 독자층이 주로 20대인데, 20대의 구매력이 줄어드니까 한국 작품도 안 팔리는 것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물론 우리 소설이 안 팔리는 이유는 좀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만.

또 다른 측면은, 제가 독서의 경량화라고 부르는데요, 전반적으로 가벼운 책을 먼저 선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전과 자기 계발을 결합한 책이 인기인 추세지요.

차익종: 그래도 고전은 들어가는군요.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1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니, 사람들의 독서량이 줄긴 해도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읽고 싶다.”라는 의식은 오히려 더해 가더군요. 우리나라만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서도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부분 답하더군요.

장은수: 그렇죠. 가령 여성 독자들의 중심 층은 20대 후반 미혼 세대입니다. 학교를 나와 사회에 진출한 후 12년이 되면, “이제는 스스로 읽어서 자기를 보충해야 한다.”라고 깨닫는 것이지요. 또 구매력도 있고요!

차익종: 30대 여성은 어떻습니까?

장은수: 30대 여성은 육아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독서 시간도 충분하지 못하고 또 경제력도 조금 떨어지지요.

차익종: 결국 20대 대학생은 독서 인구의 중심 계층이 못 되는군요.

장은수: 점점 하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독서 시장의 중심은 40대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 설계해야 하는 나이이기 때문이겠지요. 바로 그때부터 고급 책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반응 읽기깊이 읽기매체의 차이

 

차익종: 학교 바깥에서 오히려 독서 욕구가 늘어난다는 풀이군요. 학교의 독서 교육에 대해 반성해 볼 필요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지극히 당연한 명제부터 다시 짚어 보고 싶습니다. “독서가 언어 능력을 신장시킨다.” 과연 맞을까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장은수: 국어 능력을 주로 문해력이라는 말로 많이 설명해 왔는데,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핵심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분명히 지금은 종이책에서 스크린’, 즉 화면으로 미디어의 표준이 바뀌는 시대입니다. 지금 세대는 수많은 스크린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는 물론, 스마트폰 화면까지 말이지요. 그래서 이런 미디어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능력, 미디어 융합적인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곧 국어 교육의 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디어 문해력이라는 관점에서 젊은 세대를 교육하는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하고요.

차익종: 책도 그 수많은 미디어 중의 하나일 텐데, 어떤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장은수: 사실 책이 어떤 위치를 갖게 될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책이 일종의 특권적 지위를 누렸지만, 앞으로도 그럴지 아니면 수많은 이야기 구조, 내러티브의 하나로만 남을 것인지 말이지요. 다만 책 읽기가 다른 미디어 읽기에 비해 훨씬 깊이 있고 능동적인 읽기를 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차익종: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지요.

장은수: 만화나 영화는 보는 그대로 반응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만화나 영화 읽기는 반응 읽기혹은 촉발 읽기라고 할 수 있지요.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신문 기사에 글을 다는 대신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비슷한 행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런 읽기에 어울리고 또 이런 읽기를 자극하는 매체를 반응 미디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반면에 깊이 읽기는 어떤 구조를 가진 것, 가령 기승전결의 의미 구조를 가진 이야기를 읽어 내는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익종: ‘깊이 읽기란 표면에 나온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밑에 깔린, 보이지 않는 구조를 자신의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읽기를 말하는군요. 그러면 능동적 읽기는 또 무엇을 가리키나요?

장은수: 가령 강가에 집이 있다.”라고 문자로만 되어 있는 경우와, 그것을 표현한 영화나 그림을 보는 경우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겠네요. 같은 이야기도 영화나 그림으로 보면 누구나 똑같은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고정시키겠지만, 문자로만 되어 있을 경우는 읽는 이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 다 다릅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에 따라 스스로 재구성하는 것이니까요. 그만큼 문자와 이미지가 아주 다르기 때문에, 책은 상상력을 더 크게 발휘하게 하고 오감을 더 자극합니다.

차익종: 문자로 된 것이 훨씬 깊이 있는 구조와 감각 정보를 품고 있다는 얘기군요. 그리고 독자가 바로 그 구조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되는 것이고.

장은수: 그렇게 문자를 읽어 내는 행위가 바로 사유라고 할 수 있지요. 사유는 인류 진화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유 행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문자, 책입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쓴 니콜라스 카 같은 사람들은 문자가 곧 사유이며 책은 깊이 있는 사유를 제공하는 유일한 미디어라고 주장합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 ‘차이에 대한 감각도 길러 준다

 

장은수: 그러니 독서가 언어 능력을 길러 준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요. 언어 능력과 관련해서 더 지적할 점이 있는데, 독서를 통해서 타자에 대한 배려’, ‘차이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차익종: 흥미롭습니다.

장은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읽어서 남이 되어 보는 경험을 통해 타자에 대한 배려가 쉽게 길러질 수 있지요.

차익종: ‘공감 능력이겠군요. 문학의 힘이 거기서 나오는 것일 테고요. 그런데 차이에 대한 감각이라면 또 무엇입니까?

장은수: 수많은 부사, 관형사, 관형어, 형용사들의 뉘앙스를 구분하는 능력이지요. 말의 세계보다 글의 세계가 훨씬 미묘하잖아요? 사실 정보 전달만 목표로 하면 관형사, 관형어는 물론 다양한 형용사는 다 빼 버려도 되는데요, 깊이 있는 글이 될수록 뉘앙스가 다른 어휘들을 많이 구사하게 되지요. 이런 텍스트가 곧 고급 텍스트에 포함될 것이고요.

차익종: 문학 교육의 중요성도 그래서 나오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고 꼭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겠군요.

장은수: 그럼요. 성인들도 끊임없이 독서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신문 한 부를 다 읽는 사람은 사고의 깊이에서부터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휘력은 물론이고요. 영국에서는 13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책 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신문도 같이 늘면서 읽는 체험이 증가했어요. 외래어도 크게 늘었지요. 그 결과 오늘날의 방대한 영어 어휘가 만들어졌다고 하지요. 새로운 단어를 끊임없이 접하는 경험은 성인에게도 아주 중요합니다.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일 테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성인 교육이 거의 차단된 상태입니다. 이것이 문제지요.

차익종: 그러니 성인들의 자발적인 독서 수요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확실히 성인들의 경우 지적 욕구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장은수: 그런 면에서 요즘 신문들이 독자에 맞춘다.”라면서 중졸 이상의 독해력을 가상해서 기사를 쓴다고 하는데 저는 아주 비판적으로 봅니다. 본래 신문이란 30만 정도의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그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 주는 매체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차익종: 뉴욕타임스나 타임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1/3도 안 된다는 말도 그런 역설적 의미겠지요.

장은수: 그렇지요. 뉴욕타임스를 형용사의 연속이라고 비유하잖아요? 거기 나온 수많은 어휘들의 미묘한 차이를 읽어 내는 능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고급 정론지를 지향하면서 독자 수준에 맞춰 기사 수준을 낮춘다는 신문이나 잡지는 없습니다. 그리될수록 오히려 더 빨리 망할 뿐이겠지요.

 

독서 교육, 기능 교육이 아니라 의미 교육이 되었으면

 

차익종: 출판인들은 학교 교육에 예민할 수밖에 없을 텐데, 지금의 독서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책이 안 팔린다는 아우성도 사실 학교 교육의 변화 탓 아닌가요?

장은수: 초등 3, 4학년까지만 해도 책을 많이 읽히는 편이지요. 그렇데 초등 고학년이 되면 독서량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차익종: 대입 준비를 초등 고학년부터 시작하고, 영어나 일제 고사 같은 것이 있다 보니 아이들한테 책 읽힐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이지요. 책 읽는 것 자체가 배움의 중심인데 말이지요.

장은수: 그러니까 아이들이 시간이 나면 읽는 것이, 가령 만화로 읽는 ○○○같은 것이지요. 그런 책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사용 어휘가 너무 적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가 적어서 문제지요. 한창 어휘력을 키울 시기인데…….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접해 보기도 전에 시드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습니다.

차익종: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면 더할 테고요.

장은수: 제 딸이 지금 고1인데요, 요즘 두시언해 때문에 걱정이라고 하여 교과서를 보니 두시언해에 대한 국어학적 설명만 나와 있더군요. 아이들에게 중세어를 가르치는 이유는 중세인들의 삶과 세계관을 접하도록 해 주기 위해서일 텐데, 그런 내용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어휘나 음운 변화의 법칙만 외우게 해서는 곤란하겠지요. 기능 교육이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학교 교육은 의미를 가르치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텍스트를 스스로 해독해 내고 의미를 생성하는 능력을 키워 주기를 바라지요. 전 세계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까지 이런 나라는 없다는 것을 제가 직접 확인한 바도 있고요.

차익종: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주로 구술로 치르는 덕분에 당시 300수 정도는 청년이 될 때까지 암송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경우 입만 열면 명언이고 글만 쓰면 명문이더라고, 중국에 교환 교수로 다녀오신 어느 중국학 전공 교수께서 전해 주시더군요.

장은수: 그렇군요. 안타까운 것이,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는 지금 고급 문학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도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요? 가령 저희 출판사만 해도 신입 사원 모집을 하면 이른바 명문대 출신 지원자들이 많은데, 독서 능력에 대한 시험을 보게 하면 놀라울 정도로 결과가 나쁩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쓰시오.”라는 간단한 지식을 묻는 물음에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하곤 합니다. 이보다 조금만 어려우면 거의 대답을 못하고요. 자기 소개서도 너무 못 쓴다고 할까요. 어휘력이 낮고, 글이 깊이를 갖춘 경우가 드뭅니다. 출판사에 지원하는 소개서니까 자기와 책의 관계를 절실하고 생생하게 써야 하는데, 참 미흡하지요.

차익종: 결국은 독서군요.

장은수: . 자기와 책의 관계를 풍부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외국 대학생과 교류하는 일이 많아진다는데, 외국 학생들과 만나서 푸코나 카뮈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최근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는 고전 텍스트 선집을 보고 높이 평가했지요. 그런 고급 텍스트를 학생들이 읽을 수 있어야 하지요.

차익종: 결국 대학의 교육도 미흡한데 사회에 나가면 정말 책을 손에 잡기란 더 힘들겠군요.

장은수: 정말 그렇습니다. 특히 25세 직후 청년들이 문제인데, 취업을 못하거나 퇴사를 했을 경우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는 능동적 행위를 하기 어렵거든요. 저는 독서 교육이야말로 그런 바탕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전자 교과서는 보조적 수단일 뿐

 

차익종: 그런 면에서 정부에서 추진해 온 전자 교과서보급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겠군요.

장은수: 전 세계에서 교과서를 모두 전자 교과서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나라는 우리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도 겨우 종이 교과서와 병행해 보겠다.”라는 정도입니다. 모든 교과서를 전자 교과서로 바꾸면 반응 읽기만 자극하는 반응 미디어만 남기는 셈입니다. 학생들에게 깊이 읽기는 가르치지 못하게 되지요. 매체를 바꾼다는 것은 결국 문화와 철학의 문제인데 순전히 경제 논리만 앞세우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차익종: 경제 논리라면?

장은수: 가령 전자 교과서로 바꾸면 학생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이 어디 책가방을 갖고 다니나요? 이미 대부분 노트만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어요.

차익종: 어차피 집에서 공부를 못하니까 말이지요(웃음). 0교시, ‘야자때문에 어차피 집은 잠만 자는 곳이 된 것 같습니다.

 

표현력을 끌어올리는 언어 정책

 

차익종: 출판인으로서 우리말 정책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을 텐데요.

장은수: 이제는 표준을 설정하고 가르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표준 중심의 교육보다는 표현력, 혹은 적응력이랄까 하는 것을 어떻게 끌어올릴지를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성인을 위한 언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50대부터 표현력을 키워 주는 교육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차익종: 현장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들었고, 문자 매체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으니, 재미있고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독자들을 대신해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