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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왜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는가? ― 굿리즈(Goodreads)의 조사 발표를 보고

왜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는가? 

― 굿리즈(Goodreads)의 조사 발표를 보고


지난 7월 9일 세계 최대의 소셜 독서 사이트 굿리즈(Goodreads)는 회원들이 올린 글을 분석해서 책 읽기를 중간에 포기하는 현상에 대한 인포그래픽 하나를 발표했다. 나는 언젠가 이 인포그래픽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려고 에버노트에 저장해 두었는데, 오늘 마침 미국의 다른 사이트에서 이 인포그래픽을 소개한 것을 보고 시간을 내서 블로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인포그래픽은 비록 미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 성향은 아마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료가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 출판계를 부러워하면서 아래에 내용을 정리해 둔다.(여기서 다루어진 책들은 국내 출간 도서로 교체했다.)


=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책 베스트 5


  조앤 롤링, 『캐주얼 베이컨시』(김선형 옮김, 문학수첨, 2012).

  E. L. 제임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박은서 옮김, 시공사, 2012).

 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노진선 옮김, 솟을북, 2007).

 스티그 라르손,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임호경 옮김, 뿔, 2011).

 그레고리 머과이어, 『위키드』(송은주 옮김, 민음사, 2012).


이 책들의 공통점은 슈퍼 베스트셀러라는 점이다. 『해리 포터』를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독서를 포기한 조앤 롤링의 소설을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많이 읽혔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한 사람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를 보면서 독서는 역시 취향을 철저하게 지킬 때에만 비로소 성공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따라 읽었다가 실망해서 그만둔 경우가 많은 듯했기 때문이다.


==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고전 베스트 5


 조지프 헬러, 캐치-22』(안정효 옮김, 민음사, 2008).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한기찬 옮김, 황금가지, 2001).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김종건 옮김, 범우사, 1997).

 허먼 멜빌, 『모비 딕』(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1).

 에인 랜드, 『아틀라스』(조은묵, 신예리, 정명진 옮김, 민음사, 2003).


구체적인 이유가 달려 있지 않아서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이 작품들은 거의 길이가 아주 길 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을 제외한다면 작품 자체가 복잡하고 난해한 책들이다. 고전은 역시 독서용이 아니라 보관용일까. 


== 읽기를 중단한 이유


이야기 전개가 느리고 지루해서(46.4%)

글 솜씨가 형편없어서(18.8%)

정말 황당한 내용 탓에(8.8%)

말도 안 되는(비현실적인) 플롯 탓에(8.5%)

주인공이 마음에 안 들어서(4.9%)

부적절한 내용이 신경 쓰이게 만들어서(3.8%)

저자(작가)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해서(3.2%)

편집 상태가 나빠서(2.7%)

위에 든 여러 이유가 합쳐져서(2.5%)

비도덕적이어서(0.5%)


이 결과를 보면, 역시 독자가 사랑하는 책이란 흥미로운 이야기, 뛰어난 문장력, 완벽하게 짜인 플롯의 조화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독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그에 부합하는 어떤 행동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플러스 쪽 방향보다는 마이너스 쪽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듯하다.(작가가 어떤 행동을 해서 좋아한다기보다는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에 싫어하는 쪽으로 말이다.)


== 끝까지 읽은 이유는 무엇인가?


시작하면 끝내는 것이 인생의 규칙이다. (36.6%)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 (25.2%)

강박적인 습관 탓이다. (13.4%)

때가 되면 책으로 되돌아온다. (9.3%)

영화랑 마찬가지로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끝까지 본다. (7.4%)

나는 책을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야 판단한다. (3.2%)

시리즈물이라서 어쩔 수 없다. (2.6%)

저자가 결국 책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에 놀라면서 유쾌해하는 편이다. (2.3%)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자들의 마음이 좋아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은 독자들은 일단 책을 손에 들면 재미있든 없든 간에 그냥 끝까지 읽고 싶어서 읽는 것이다. 이런 독자들이 없다면 많은 작가들이 실망 끝에 그대로 좌절해 버릴 것이다. 내용이나 재미에 상관없이 일단 책을 손에 들면 끝까지 읽는 독자가 무려 38.1%나 되는 것을 보면, 이는 어느 정도 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