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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양윤옥 옮김, 좋은생각, 2007)을 읽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은 꽤 오래전에, 그러니까 아마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무렵에 읽고 지금까지 큰 관심을 두고 찾아 읽지는 않았다. 신구문화사나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등에 섞여 있던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우미인초」 같은 작품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 때. 이광수의 소설을 공부하면서 소세키가 자주 언급되곤 했는데, 그때는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일본 작품에 대한 폄훼가 살짝 학교 분위기여서 다시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 회사에 들어와서 시마다 마사히코의  『피안 선생의 사랑』(현송희 옮김, 민음사, 1995)을 만들 때, 그 후에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박유하 옮김, 민음사, 2005)을 편집할 때, 꼭 한 번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으나, 분주함을 핑게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읽지 않은 채 그만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이번에 소세키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 보리라 결심한 것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갈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후기 대표작인 『마음』의 번역 원고가 서울대 윤상인 선생의 오랜 노고 끝에 드디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윤상인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일본문학자 중 한 분으로 나쓰메 소세키 연구로 동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그 학위 논문을 개고해 일본 이와나미쇼텐에서 『세기말과 나쓰메 소세키』라는 단행본으로 냈을 때부터 주목해 왔던 분이다. 이 기회에 선생을 오랜만에 만나뵙기 전에 몇 작품이라도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싶어서 찾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련님』(좋은생각, 2007)은 양윤옥 선생이 옮긴 것을 골랐다. 아동물처럼 삽화를 그려 넣은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나마 번역자를 신뢰할 수 있기에 골랐는데, 고집 세고 세상 물정 모르는 데다 정의감 넘치는 청년(화자)의 말 맛을 살려 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한 줄 한 줄 매끄럽게 읽어 가는 기쁨이 있었다.

사회에 나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재미가 넘쳐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근대도 전근대도 아닌 시골 마을의 한 학교를 무대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선생들과 맞서나가는 고집불통 청년의 모습은 성격이 운명을 만들고, 운명이 사건을 일으키는 근대 소설의 한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쓰인 지 100년이 훨씬 넘었고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가 아주 일천한 데도 아주 생생하게 읽혀 나간다. 놀라운 일이다. 타락한 사회 속에서 전혀 때 묻지 않은 영혼이 벌여 가는 좌충우돌 고군분투가 안쓰럽고 흥미진진했다. 서양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친근한 무엇이 느껴진 것은, 우리 소설의 한 부분에 소세키의 이식된 피가 흐르기 때문일까? 소품이지만 소세키의 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싶은 기분이 들어 챙겨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