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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카프카, 『위대한 꿈의 기록』(북인, 2005)을 읽다



내가 가진 카프카 책들 완독 중. 그러니까 네 권의 소설과 서한집, 일기 등 이런저런 책들. 지나는 길에 오래전에 사 두었던 카프카의 『위대한 꿈의 기록』(북인, 2005)을 읽었다. 이 책은 예전에 나왔던 『카프카의 아포리즘』(청하, 1990)을 다시 펴낸 책이다. 『위대한 꿈의 기록』의 서문인 「책을 펴내며 ― 카프카의 부활을 위한 헌사」에 보면, 『카프카의 아포리즘』은 연출가이자 시인인 이윤택 선생이 부산 가마골소극장 단원들과 함께 호구를 면하려고 엮어 옮긴 책으로 되어 있다. 

『위대한 꿈의 기록』은 청하 판본에 이윤택 선생의 희곡 「꿈의 기록」 대본을 부록으로 붙여서 한 권의 책으로 꾸민 것이다. 「꿈의 기록」은 카프카의 작품 「변신」을 1990년대 한국 상황과 연결해 재창조한 작품으로, 이윤택 선생의 말에 따르면, "카프카에 대한 헌사"로 볼 수 있기에 여기에 실린 것이다.

이 책은 카프카의 일기, 편지 등에서 예술, 사랑, 우정 등에 대한 카프카의 사유를 추려 내어 엮은 것으로 그리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시인다운 통찰이 순간순간 깃든 한국어 문장의 맛이 살아 있어 나름대로 매력적이다. 잠깐 잠깐 카프카를 즐기기에는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 

서문에 실린 이윤택 선생의 일갈에 마음이 끌려 구입해 둔 후 지금껏 서재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이번에 끌어내 읽은 것이다.


카프카의 문학은 내게 있어서 그렇게 신비스럽지도 난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꾸는 꿈의 기록일 뿐이죠. 사실 누구나 카프카와 같은 꿈을 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카프카와 우리가 다른 점은, 우리는 잠 깨면 꿈을 털어 버리는데, 카프카는 집요하게 자신이 꾸었던 꿈을 기록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꿈의 기록자입니다.


아래에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겨 적어 둔다.


― 도대체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나에게 있어서 프라하는? 직업은? 채워지면 두려움으로 변하고 마는 내면에의 욕구는 휴가 중에야 비로소 올바른 길을 찾는다.

― 나의 신체는 그 허약성에 견주어 볼 때 너무 긴 편이다. 은총의 풍성한 온기를 생성해 내거나 내면의 불을 보존하기 위한 지방질은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 정신이 전체를 손상시키지 않고 자신을 양육시킬 수 있는 하루의 필요량 이상의 지방분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 아버지의 그런 고난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나는 그러한 괴로움을 직접 당해 보지 못했기에 그의 괴로움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으며, 내가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았기에 그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해야 한다는 그분의 주장을 용납할 수가 없다.

― 사람은 자기 실존을 망각한다. 왜냐하면 그때그때 아주 아름다운 느낌으로 세상이 채워진다는 것을 생각해도 되기 때문이다.

― 형이상학적 욕구는 죽음에의 욕구이다.

― 사람은 자유와 속박, 둘 다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각각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 자리가 혼동되었다고 느낄 때에는 역겨워진다.

― 부모는 실수를 통해 교화된다.(물론 실수로 인해 더 완고해지기도 한다.)

―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마음을 끄는 소망으로 남은 것이 삶에 대한 하나의 조망을 얻고 싶다는 것이다. 삶을 그 자연스럽고도 쓰라린 영고성쇠를 지니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면서도 동시에 그에 못지않게 뚜렷이 하나의 허무로, 하나의 꿈으로, 하나의 붙잡을 데 없는 부동으로 인식하는 그런 조망 말이다. 거북스러울 만큼 수공 규범에 맞추어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망치질을 하며 책상 하나를 짜맞추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소망, 그것도 '그에게는 그 망치질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그 망치질이 정말 굉장한 망치질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 그럼으로써 망치질이 더욱 대담해지고, 더욱 현실적이고, 그리고 원한다면 더욱 미친 듯이 지속될 수도 있는 그런 소망으로서 말이다. 그것은 나의 필수적인 생활 요소라고 느끼고 있었던 허무의 옹호이며, 평민화이자 내가 허무에게 주고자 했던 쾌활한 입김이다.

― 어떻게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 것, 극히 생소한 착상까지도 포함한 모든 것을 위해 그것들을 불살랐다가 다시 소생시키는 하나의 거대한 불을 마련할 것인가...... 확실한 것은 내가 소설을 씀으로써, 쓴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비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직 그렇게 해서만 글이 써진다. 그렇게 혼과 몸이 완전히 개방됨으로써만 글이 쓰인다.

― 우리는 장식이 우리들의 본성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자신을 꾸민다. 그리고 누군가 어떻게 살아가려느냐? 하는 물음이라도 한다면 손을 휘휘 내젓는 데 익숙해 있다. 마치 확실한 사물을 불러내는 것이 아주 우스꽝스러울 만큼 불필요하다는 듯이.

― 문학은 문제 자체였으며, 그대의 생활이며, 내재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길이었으며, 그것이 바로 그대 자신과 인간들에게 그대가 요구하는 것이었다. 지니고 있는 능력을 남용하지 않고, 사멸시키지 않으며, '위임받은 것'을 완수하려고 노력하고, 출입을 막으려는 나쁜 문지기를 밀어제치면서 '법정' 안으로 들어가는 일,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며 유혹도 따르게 마련이다.

― 일이 끝나고, 더 이상 쓸 수 없고, 어떤 편지도 받지 않을지라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현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이다. 나는 이것만 가지고 살아갈 수 없고,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것을 통해 나의 존재가 완전히 그 가면을 벗게 된다. 난 채찍과 함께 황무지로 쫓겨나야만 한다.

― 사람이 이 세상을 적대하여 문과 창문 들을 닫는다면 하나의 아름다운 허구가 떠오를 수 있다.

―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 세상에는 닮은 것이 많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닮은 것을 찾기 때문이다.

― 문학이 아닌 것은 모두 날 지루하게 한다.

― 살아갈 능력이 없지는 않으나 인생을 견딜 능력은 없다.

― 고독은 형벌을 수반할 뿐이다.

― 나는 의식불명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을 모든 사람으로부터 차단시킬 것이다. 모든 사람과 불화하리라. 그 누구와도 말하지 않으리라.

― 나의 꿈같은 내면 생활의 서술에 대한 감각이 다른 모든 것을 부수적인 것으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끔찍한 방식으로 위축되고, 또 위축되기를 그치지 않는다. 다른 그 무엇도 나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 인간적인 관계가 없이는 나 자신 속에 그 어떤 가시적인 언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 의식불명, 고독에의 소망. 오로지 나 자신과 마주 세워져 있음.

― 내 머릿속에는 방대한 세계가 도사리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망가뜨리지 않고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 내면적으로는 국외자의 위치를 지켰는데도, 생업은 그 직접적인 가까움으로 하여 나에게서 생각하는 시간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 마치 자꾸자꾸 고개를 숙이고 살펴야 하는, 험하게 팬 길을 가는 것처럼.

― 쓰는 일에서의 완전한 무력, 그냥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는 일의 사명과 거기에 도달하는 길이 보이는데, 어쩌면 얇은 장애물 한 장을 뚫고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 상처가 고통스러운 것은 그 깊이와 혹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상처의 오랜 경과 탓이다.

― 세계를 순수, 진실, 불변의 것 속으로 드높일 수 있는 경우에만 나는 행복할 수 있으리라.

― 내가 말하려 하고 쓰려고 하는 것 역시 완전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언어의 약점에 대한 언급과 말의 한계와 감정의 무한을 비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감정은 마치 마음속에서처럼 말 속에서도 끊임없이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말 속에서도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언어에 대해 결코 근심할 필요가 없지만, 말을 주시해 볼 때 종종 그 자체가 근심이 된다. 이렇게 격렬하게 뒹굴고 있는 늪 같은 내부는 물론 우리들 자신이다.

― 괴테는 그 작품의 위력으로 인해 독일어의 발전을 방해한다. 젊음의 무의미함, 젊음에 대한 두려움, 무의미함에 대한 두려움, 비인간적 삶의 무의미한 출세에 대한 두려움.

―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가 없다.

―  나는 묻는다. 따라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죄의식은 단지 나의 본질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형식이다.

― 나는 내가 말하는 것과 달리 쓰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말하며,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 것과는 달리 생각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심오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 안으로, 바깥에 있는 모든 것아!

― 죽음이란 하나의 무(無)가 무(無)를 포기하기 위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느낌을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떻게 의식을 가진 무(無)로서 무(無)에 귀의할 수 있겠으며, 공허한 무(無)분만 아니라, 그 무가치가 거칠게 날뛰는 무(無)에 귀의할 수 있겠는가.

― 어제 내가 확실히 느꼈고, 오늘 내가 절망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 질문하는 것은 왜 무의미한가? 대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하고 기다린다. 하지만 물음은 한 번도 답해지지 않는다. 질문자와 응답자 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없다. 어떤 간격도 극복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질문하고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 나의 첫째 요구는 사무실로부터의 해방이다. 밤낮으로 나의 머리를 뜨겁게 하는 이 모든 열병은 부자유에서 온다.

― 힘이 증가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떠안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진리가 있다.

― 인간은 불멸하는 어떤 것을 믿지 않으면 살 수 없다.

― 내가 이룩해 놓은 것은 고독뿐이다.

― 나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를 짐작하지 못함이여...... 이것을 짓눌러 버린다든지, 그 속에 묻어 둔다든지 하기보다는 그것을 몇천 번이라고 폭발시켜 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것을 위해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싸운다. 대개의 사람들은 잠 속에서처럼 싸운다. 그것은 마치 도깨비를 쫓아내려고 꿈을 꾸면서 손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전진하여 내 온 힘을 충분히 발휘하여 싸운다.

― 허위는 자신의 대립물에 의해 세계로부터 제거되지는 않는다. 허위를 제거하는 일은 진실의 세계에 의하는 수밖에 없다.

― 인식이 시작되었다는 첫 표시는 '죽고 싶다'고 바라는 일이다. 이 삶은 견딜 수가 없고 또 하나의 삶은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 나 혼자 있을 동안은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슬프다.

― 우리를 각자의 마음속에는 밤을 파괴하는 악마가 있다. 그것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이다.

― 이미 모든 것이 파국으로 보일 때라도 새로운 힘을 자아 내라. 이것이야말로 네가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 자기의 판단을 믿는 사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의 판단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항상 옳다.

― 전체의 본질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다른 사람이 나를 관찰한다면 나는 물론 나를 관찰해야만 하며, 아무도 나를 관찰하지 않는다면 더욱더 자세히 나를 관찰해야만 한다.

―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 내부에 대한 혼란밖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불안이다.

― 나의 삶은 다른 사람들 삶보다 더 달콤했고, 나의 죽음은 더욱더 처참할 것이다. 내 내부에 있는 작가는 곧 죽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형상은 가장 어리석은 이승의 향락욕의 구조일 뿐이다. 이것이 작가이다.

― 작가의 존재는 영혼에 대한 존중이다.

― 만족하라. 당장 쉬는 것을 배워라.

― 나의 삶은 탄생을 앞둔 머뭇거림이다. 지금의 혼란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나는 도약을 단념한다.

― 내부 시계는 악마나 마신 또는 좌우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데, 외부 시계는 정체하면서 일상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 사랑이 깊어지면 실망도 점점 깊어진다.

― 저의 몽상적인 내면 생활을 묘사하기 위해 저는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것으로 넘겼습니다. 글쓰기 외에 어떤 다른 것도 저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 저는 문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이 될 수도 없고 또 되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 문학 아닌 모든 것이 저는 지루하고 또 싫습니다. 그런 것들은 저를 방해하고 또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가정 생활에 대해 제가 가진 감각이라고는 관찰자의 그것뿐, 그 밖의 모든 감각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혈족에 대한 혈연감 따위는 전혀 없고, 누가 왔을 때 그 사람들에게서 제가 보는 것은 실로 저를 향한 악의뿐입니다.

― 나는 영원히 당신으로부터 제외된 채로 있으리라.

― 지금 나는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듯이 즐거운 고독 속으로 달려간다오.

― 결혼은 마땅히 사랑의 결혼이어야 하기는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높은 의미에서 이성의 결혼이어야 합니다.

― 당신은 나에게 내 손으로 내 몸을 에어 내는 비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 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나의 세계가 이루어져요. 봐요, 당신이(이 당신은 나요) 그 곁에서 어떻게 견디는가를, 무너짐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전에도 늘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세계가 세워짐을 한탄하고 태양빛을 한탄하는 거지.

― 다정한 집단은 혁명이 일어날 때에만 도움이 될 것이고 모두가 함께 활동할 때에는 책상 위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반역일 뿐일세.

― 기술이 예술을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예술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 아무래도 나한테는 죽는다른 게 쓰는 것을 중단하기보다는 쉬울 것 같네.

― 나는 한 번도 독일 국민 속에서 산 적이 없어.

― 성년의 숲속을 어린아이처럼 방황하고 있다.

― '영웅주의'란 무엇이든지 허위이며 비겁이다. 자신의 금욕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도구화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충격적인 형안, 순수를 지녔고 타협은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금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사람이지요.

― 인간은 서로서로 밧줄로 한데 묶여 있어서 어떤 한 사람을 동이고 있는 밧줄이 느슨해져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한 치만 더 깊게 허공으로 가라앉을라치면 고약한 상태가 되고, 어떤 한 사람을 동인 밧줄이 끊어져 그가 떨어지는 날에는 끔찍한 상태가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히 꼭 매달려 있어야만 한다.

― 양심이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으로써 양심은 온갖 상터에 대해 보다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 나는 오로지 꼭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자네 말대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도록? / 맙소사, 책을 읽어 행복할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책이라면 아쉬운 대로 우리 자신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무척 고통스럽게 해 주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 /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 쓴다는 것, 이 엄청난 작업, 지금은 그걸 하지 않고 지내야만 한다는 것이 내 불행의 전부이다.

― 쓰는 일이 나를 지탱해 주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쓰는 일이 이런 종류의 삶을 지탱해 준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지 않겠는가? 물로 이 말이 글을 쓰지 않으면 나의 삶이 더 나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훨씬 고약해지고 완전히 견딜 수 없게 되어 결국 정신착란으로 끝나고 말 것이 틀림없다.

― 쓴다는 것은 달콤하고 경이로운 보수이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보수인가? 밤이면 내게는 아이들의 관찰 수업 시간에서처럼 분명하게 보인다. 그것이 악마를 섬긴 보수임이.

― 소박한 사람들은 가끔씩 "내가 죽어서 사람들이 내 시체 앞에서 우는 걸 봤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말하는데, 바로 그것을 작가들은 실현한다. 끊임없이 죽고(혹은 살지 않고), 또 자신의 주검 앞에서 운다. 그래서 끔찍한 죽음의 불안이 온다.

― 작가의 실존이란 정말 책상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를 꽉 물고 단단히 매달려야 한다.

― 쓰고 싶어 하는 그리움은 어디에서나 과도한 중량을 가지고 있다.

― 사람들은 자신이 숙달해 있는 것에만 스스로를 한정시켜야 한다.

― 비정상적인 것이 가장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상적인 것은 때로는 세계 대전이기도 하니까요.

― 신도 통곡하고 악마도 신경질적으로, 그리고 지옥적으로 포복절도하는 것이 바로 기지(Wit)라고 하는 것이다.

― 신은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 나는 죽을 것이다. 내 방금 마지막 노래를 읊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노래는 좀 길고, 어떤 사람의 노래는 좀 짧다. 그러나 그 차이가 결정하는 것은 몇 마디 말뿐이니라.

―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무대에 누워 아리아를 한 곡 부르는 영웅을 비웃는 건 옳지 못하다. 우리들은 여러 해를 드러누운 채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작가의 정의를 내리자면, 그리고 작가의 작용과 사명을 설명하자면, 작가야말로 인류의 속죄양이고 인류에게 그들이 저지를 죄업을 죄 없이 향수하도록 허용해 주고, 또 거의 깨끗이 속죄할 수 있도록 가능케 해 주는 것입니다.

― 시간은 짧고 힘은 부족하고, 사무실은 끔찍스럽고 집은 시끄러우니, 만약 아름답고 굴절이 없는 삶이 가능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예술 작품을 통해서 그것을 헤쳐 나가도록 애써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 인생은 숫자놀이 이상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