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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망오십(望五十), 매우(梅雨)에는 닥치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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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는 시내에 전시회를 보러 외출하려다가 왠지 읽는 일’을 하고 싶어져서 하루 종일 소파와 침대와 책상을 오가면서 책을 읽었다.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파워 클래식』(어수웅)에 실린 짤막한 서평 몇 꼭지를 챙겨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일본사 및 세계사 이해에 새로운 시각을 던진 화제작 『중국화하는 일본』(요나하 준)을 읽고, 그다음에는 『도련님』(나쓰메 소세키), 『그리운 친구여 - 카프카의 편지 100선』(카프카), 『검찰관』(고골), 『휘페리온』(횔덜린) 등의 고전, 『육체쇼와 전집』(황병승),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 등의 시집, 『배를 엮다』(미우라 시온),『엄마도 아시다시피』(천운영) 등의 소설, 그리고 2010년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열 권짜리 김영하 소설 전집(?)을 돌려 막으면서 내키는 대로 읽는 중이다. 어쩔 수 없는 난독증!!!

    

   

  


2

예전에 챙겨 두었던 고전들을 다시 꺼내 읽는 버릇은 스페인 여행 직후에 생겼다. 스페인에서 나는 여러 가지 스페인 관련 책들을 전자책을 내려 받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안영옥 옮김, 을유문화사, 2010)를 처음으로 읽어 가면서 진리의 가차 없는 진전에 몰두하는 대가들의 문장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페인에 휴가 여행을 갔다 와서 한 달 동안에 카뮈의 『이방인』(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04), 카프카의 『소송』(이재황 옮김, 을유문화사, 2008) 등 여러 권을 다시 읽었다. 20대의 독서와 40대의 독서는 특히 고전을 읽고 났을 때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예전에는 줄거리를 따라 가고 사상이 배어 나오는 문장의 행간을 살피는 데 열중했다면, 요즘은 인물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디테일에 더욱 마음이 간다. 요컨대 디테일이 좋으면 작품도 무조건 좋은 것이다.

     


3

논픽션 화제작들이나 시집과 소설책 들은 업무상 언제나 읽는 것이지만, 김영하를 통째로 모두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2013)를 편집하면서 갑자기 생겼다. 일상의 사소한 틈들을 길게 절개해 요모조모로 접붙이는 귀신같은 솜씨를 오랜만에 맛보고 난 후, 어떤 갈증 비슷한 게 생겨 버렸다. 이런 작품, 또 읽고 싶다. 만들고 싶다. 쓰고 싶다. 누구나 하루키를 읽은 다음에는 가벼운 경멸과 함께 비슷한 정도의 느낌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옛날에 읽었던, 마음속 서랍에 계속해서 간직해 두었던 작품들이 생각났다. 한국의 편집자니까, 하루키가 아니라, 거기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전집(?) 비슷하게 책도 묶여 나와서 벌써 가지고 있었으니까, 일단 김영하로부터, 우리 소설의 어떤 문법들, 구조들, 문체들을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 이어서 연말까지 작품 전체를 챙겨 읽을 소설가들도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 두었다. 상자를 열어 책을 찾고, 책꽂이 한쪽으로 몰아두는 등 법석을 떨면서 아내의 눈총을 사고 있다.

   

   


4

강성은의 두 번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2013)을 읽었다. 분리해서 리뷰 하나를 남길 생각이다. 최근 읽은 시집 중 한세정의 『입술의 문자』(민음사, 2013)과 함께 한껏 정제된 언어로 쓰인 뛰어난 시집이다. 주체의 잠과 그 잠 속에서, 잠을 둘러싸고, 잠 너머로 구축되는 기이한 이미지들이 축조한 낯선 풍경들의 세계. 시적 세계의 풍성함은 언어의 길고 짧음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요즘 시인치고는 아주 드물게, 강성은은 보여 준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말들이 계속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