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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시와 에세이 읽기

옥탑 (이은우)

옥탑

 

                                                   이은우

 

제 몫을 끝낸 상자들 

벽에 기대 있다 

안에 든 게 뭐였는지 잊은 지 오래 

밖으로 난 창 하나 없다

 

여기는 빛이 들면 좋겠고 

저긴 새들이 날아와 앉았으면 

아기 고양이를 위해 

민트색 집을 지어주던 아이의 표정으로 

뜬구름을 손바닥 위에 올려 보는 거지 

 

비 새는 지붕 아래 실로폰을 두고 

상자마다 발을 달아주면 어떨까? 

걸음마다 노래가 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말이야

 

기울어진 골목을 오르다 

이리저리 부딪는 어깨들

 

로 사랑하는 상자들은 모서리가 닮아 

음표처럼 둥글어질까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꽁지깃 빠진 새처럼 오슬오슬 떨까 

발끝으로 공중을 휘휘 젓는다

 

딸깍, 

손잡이를 돌리면 

팝업된 세상 속으로 달아날 수 있는 

그런 공중정원이 있는 

그런 미래라면

 

미래라는 글자에는 

네모난 상자와 굽은 벽과 막다른 골목이 있다 

번개와 구름, 투명한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지 

탑탑 디디면, 턱턱 차오르는 

탑 오브 더 월드

 

오래된 상자에 바퀴벌레가 알을 깠다

 

납작 접으면 수평선이 되는 서커스

쓰레기통으로 휙,

 

별 하나가 궤도를 이탈한다

 

눈을 뜨니 

하나의 커다란 상자 속

딸깍, 문을 연다 

꽃밭일까 싱크홀일까

 

=====

슬픈 시이다. 

"비새는 지붕"에, "밖으로 난 창 하나 없"고,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옥탑에서 망연자실 가난한 꿈을 꾼다.  "여기는 빛이 들면 좋겠고/ 저긴 새들이 날아와 앉았으면". 이사할 때 물건을 담아 가져온 상자들을 다 풀지도 못한 채, 비좁은 방에서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꽁지깃 빠지 새처럼 오슬오슬" 떨고 있다. 눈앞은 컴컴하고, 앞날은 절망적이다. "미래라는 글자에는/  네모난 상자와 굽은 벽과 막다른 골목이 있다". 

이 시인 시는 거의 처음 읽는 듯하다. 부디 그에게 "걸음마다 노래가 되는" 날이 오기를 빈다. 

시는 《청색종이》 2025년 봄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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