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부터 매주 학생들한테 신간 하나를 소개하고,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있다.
별도 숙제는 아니고, 출판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니 신간 목록이라도 자주 살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실제로 편집자들은 매주 신간을 살펴서 흥미로운 책을 사거나 장바구니에 넣어둔다.)
이번 주에 소개한 책은 일본 미학자 이토 아사의 『몸은, 내 멋대로 한다』(다다서재, 2025)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자유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사실 이는 자기 증강 기술인 미학의 궁극적 목표이긴 하다.
이 책은 우리 몸 안에 잠재한 어떤 가능성,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의식하고 있지도 않으나 실제로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바깥으로 끌어내서 펼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룬다. 이는 우리 의식은 잘못 알고 있으나, 우리 몸이 실제로 해내는 것들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책에는 흥미로운 예들이 많이 나온다.
가령,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 투수가 항상 일정한 자세로 투구해야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구와타 마스미를 대상으로 실제로 그런지 측정해 보았다. 정교한 제구력을 자랑하는 구와타는 항상 일정한 자세로 던진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공도 같은 위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몸은 매번 다르게 던졌다. 내가 어떻게 의식하느냐와 상관없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 매번 같은 결과를 내도록 순간순간 몸이 알아서 해법을 찾아내서 행위를 조정한 것이다.
이처럼 의식에 앞서 몸이 제멋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무것도 새로운 걸 배울 수 없을지 모른다. 생각하고 걷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걷고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다. 이 일화를 읽다 보니, 독일 작가 클라이스트(?)의 한 소설이 생각났다. 이 소설엔 동작을 의식하는 순간, 춤선의 우아함을 잃어버리고 마는 무용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기계 등의 도움을 받아 먼저 몸이 하게 하면, 우리가 이전엔 전혀 할 수 없던 동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 과학자 후루야 신이치는 피아니스트를 위한 외골격 장갑을 만들어 이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초보 피아니스트 60명의 손에 이 장갑을 끼게 한 후, 프로그래밍된 일류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치게 했다. 평소 어려워하던 기법이 담긴 곡들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먼저 외골격 장갑을 체험해 본 사람들은 이를 벗은 뒤에도 이전보다 향상된 연주 솜씨를 보였다.
이로부터 기계를 이용해 몸을 도우면, 우리 몸에 잠재한 여러 동작을 끌어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세부 실험 조건을 따져야 하겠으나, 우리는 모두 피아니스트나 서예가나 야구 선수처럼 몸을 쓸 수 있다. 자기의 자유를 늘리고 자아를 증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할 수 있음이란 우리가 생각하거나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의 할 수 있음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편협하고, 기존 사회질서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의식이 아니라 몸의 관점에서 보면 장애인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다. 몸의 자유를 써서 할 수 있는 걸 비장애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낸 사람이다. 장애인이란, “혼자 일어설 수 없을 때 타인의 힘을 잘 받아들여 일어서는 사람”이고, “눈이 보이지 않을 때 타인의 반응을 단서 삼아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토 아사는 말한다. “할 수 있음이란 나 자신의 그릇을 새롭게 빚는 일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아직 어린 나이니까, 할 수 있음을, 자기 안에 잠재한 자유를 기성 사회의 요구에 맞춰 너무 좁게 생각지 말고, 가능한 한 넓게, 멀리까지 확장했으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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