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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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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 성장 없는 사회… ‘골목 小商’이 답이다 시골로, 숲으로, 골목으로……. 또, 다른 곳으로……. 그러니까 어디든지!‘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든 시대의 문제이지만, ‘어떻게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문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읽든,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든,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든, 다른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 행동거지는 각각 다를지라도 품은 마음과 목표는 단 하나뿐이다. 자본주의를 횡단함으로써 생명의 새로운 규칙을 찾아내기. 고래가 뭍에서 바다로 돌아갔듯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보전을 위한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한 번 더, 조금 더’에서 ‘더 이상은, 이대로는’으로 종의 윤리가 격변하는 중이다.『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에 따르면, 현재 자본주의는 진보의..
[문화일보 서평] 타인에 대한 ‘연민’ 없이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할까 _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 경이(驚異).놀랍고 신기하다. 감각이 깨어나고 몸이 풀리면서 상념이 융기한다. 문장들이 누적되고 페이지들이 모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낯선 지형을 머릿속에 만들어낸다. 이 지형도에는 ‘감정의 철학’ 또는 ‘감정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리라. 이성의 사유가 아직 제대로 개척하지 못한, 때로는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때로는 처치 곤란으로 미루어둔 광대한 황무지. 마음의 지층으로 볼 때 이성보다 아래쪽을 이루면서도 여전히 어둠에 남겨진 영역. ‘감정’이라는 이름의 신대륙이 마침내 지적도를 얻었다.사흘에 걸쳐 1400쪽에 이르는 책을 모두 읽었다. 역시 마사 누스바움이다. 그녀의 책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시적 정의』, 『혐오와 수..
[조선일보 서평] 빅데이터 인문학의 출현 검색창에 여름휴가(summer vacation)이라고 쳐 넣는다. 잠시 후 그래프 하나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래프에 따르면, 19세기 초엔 여름휴가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880년 무렵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산업화 덕분에 생긴 삶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라는 말의 사용은 1915년부터 1941년까지 25년 동안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 현재까지 역력한 하강세를 보인다. 산업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서 여름휴가를 떠나는 일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휴가(vacation)는 어떨까? 이 말 역시 19세기부터 조금씩 사용이 늘어나다가 여름휴가와 똑같이 1941년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한다. 그러나 휴가라는 말은 여름휴가와 달리 1960년대 중반 이래로 다시 힘을 ..
[단상] 문학적 체험과 이타성 문학적 체험이란 근원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는 후설의 ‘이타성’ 개념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내 안에 초대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두 영혼’으로 살아볼 수 있다.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의 『빅데이터 인문학』(김재중 옮김, 사계절, 2015)을 읽다 주말에 서평을 쓰려고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의 『빅데이터 인문학』(김재중 옮김, 사계절, 2015)을 다시 읽었다. 역시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아래에 밑줄 그은 것들을 옮겨 둔다. 빅데이터는 인문학을 바꾸고, 사회과학을 변형시키고, 상업 세계와 상아탑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할 것이다. (17쪽)호모사피엔스가 남기는 데이터 발자국의 양은 2년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 (21쪽)데이터는 “사회적 삶의 일부”다.구글 북스는 단순히 빅데이터가 아니라 롱데이터다. (28쪽)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문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은 초상화를 제공한다. (29쪽)다윈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사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렇게 존재하게 됐을까? 우리가 세상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이해하려면 오늘날의 상태를 ..
[문화일보 서평] 부정부패속 기회의 땅… ‘중국의 이중성’ 까발리다 오랜 탐사로 다져진 엄밀한 사실을 토양 삼고 음악 소리가 들릴 정도로 유려한 문장을 줄기 삼아서 공론(公論)의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다. 저자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면서도 전혀 상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세계의 중심 문제를 드러내려는 올곧은 정신, 취재를 누적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열정만이 허락된다.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주제 하나만을 다루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세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면서도 전체를 동시에 통찰하는 힘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논픽션이다.《뉴요커》의 중국 전문기자 에번 오스노스는 아직 이름이 낯설다. 『야망의 시대』(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2015)가 첫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썼다. 논픽션의 모범이 ..
[문화일보 서평] 생각하고 먹는 모든 것 공유 ‘超연결사회’에서의 내 삶 _타인의 영향력 생각하고 먹는 모든 것 공유 ‘超연결사회’에서의 내 삶타인의 영향력 / 마이클 본드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책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는 다양한 흐름에 휩쓸리지만,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 주는 존재는 바로 함께 헤엄치는 사람들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저자와 함께 헤엄쳤던 사람들은 이 문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안다. 이름은 마이클이지만 본드 가문에 속한 사람답게 저자는 지하 감옥에서 우주 공간으로, 인도양의 무더운 밀림에서 남극의 얼어붙은 고원으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9·11테러가 일어났던 뉴욕의 쌍둥이 빌딩 속으로 종횡무진 옮겨 다니면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각종 임무를 수행한다. 해결해야 할 질문은 때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뭉치고 모여서 결국 최후의 한 가지..
[문화일보 서평] 정보 폭풍시대 뇌(腦)를 청소해야 성공한다 정보 폭풍시대 腦를 청소해야 성공한다정리하는 뇌 /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와이즈베리 오늘은 고백해 버리자.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전문적인 학자가 최신 과학연구 결과를 이용해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책. ‘실용적 과학서’라는 이름을 여기에 붙이자. 같은 주제의 인문학 책을 읽어도 괜찮지만 과학의 첨단 연구가 밝혀주는 정보들이 신선한 시야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왠지 믿음직하게도 보인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진짜 해결책을 마련하고 싶을 정도로 생활에 밀착한 문제를 다루니까 분명히 실용은 맞다. 하지만 차고 넘치는 이른바 ‘과학적 실용서’와는 달리 ‘실용적 과학서’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구조적 통찰이 있다.대니얼 레비틴의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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