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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오십(望五十), 매우(梅雨)에는 닥치고 독서 1두 주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는 시내에 전시회를 보러 외출하려다가 왠지 ‘읽는 일’을 하고 싶어져서 하루 종일 소파와 침대와 책상을 오가면서 책을 읽었다.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파워 클래식』(어수웅)에 실린 짤막한 서평 몇 꼭지를 챙겨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일본사 및 세계사 이해에 새로운 시각을 던진 화제작 『중국화하는 일본』(요나하 준)을 읽고, 그다음에는 『도련님』(나쓰메 소세키), 『그리운 친구여 - 카프카의 편지 100선』(카프카), 『검찰관』(고골), 『휘페리온』(횔덜린) 등의 고전, 『육체쇼와 전집』(황병승),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 등의 시집, 『배를 엮다』(미우라 시온),『엄마도 아시다시피』(천운영) 등의 소설, 그리고 2010년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열 권짜리 김..
아주 매력적인 책 그림, 그랜트 스나이더의 「스토리 코스터(The Stroy Coaster)」 주말이면 에버노트에 모아 두었던 글들이나 RSS로 받은 출판 & 문화 관련 소식들을 읽는다. 예전에는 구글리더를 주로 이용했지만, 이달 초 서비스가 종료된 뒤 어쩔 수 없이 피들리(Feedly)로 갈아탔는데, 아직도 불편하고 익숙지가 않다. 이번 주말에 받은 소식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 하나를 소개한다. 책과 문학에 관련된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로 그리는 그랜트 스나이더의 작품 「스토리 코스터(The Stroy Coaster)」다.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작품 탄생의 전 과정을 요약해 내는 재능은 탁월하고 놀랍다. 이런 그림은 수많은 작품을 읽어 가면서 터득한 스토리 구조에 대한 통찰과 작가의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정치와 윤리에 대하여 “마주하게 되는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라. 당당히 맞서야 마음이 강해지고 끈기가 생겨나 이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다.” (효종) 1 김준태의 『군주의 조건』(민음사, 2013)을 읽다. 김준태는 조선 시대 정치 사상을 연구하는 젊은 정치학자인데, 사상 자체가 아니라 경세(經世)에 관심을 둔 특이한 사람이다. 요컨대 하륜, 조준, 황희, 이준경, 김육 등 사상의 길에는 작은 빛을 남겼으나 현실의 도로에는 굵은 자취를 남긴 재상들을 연구한다. 그리고 조선의 왕들을 정치가로서, 행정가로서 들여다본다. 이번 책은 후자의 결과인 셈이다. 2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다시 깨달았다. 인간을 뜨겁게 만들고 심지어 목숨조차 걸도록 만드는 것은 윤리가 아니라 사실 정치였다는 것을, 윤리는 정치의 출발점이 ..
박강 시집 『박카스 만세』를 읽고 1어제는 박강의 첫 시집 『박카스 만세』(민음사, 2013) 출판 기념회가 대학로에서 있었다. 광화문 모임에 나갔다가 문정희 선생님을 비롯해 권혁웅, 조강석, 이재훈, 주영중, 손미 등을 만났다. 역시 시를, 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있을 때 나는 가장 뜨거워진다. 즐겁고 기뻤다. 새벽에 술에 취한 채 작은 글을 하나 썼다. 미완이지만, 여기에 일단 옮겨 둔다. 2박강의 시는 대개 "새로 손금을 파고 싶"(「폭설」)어 하는 청년들의 불우를 재료로 삼는다. "실패" "좌절" "비명" "해직" 등 죽음을 향해 느리게 이동하는 하강의 단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죽지 못해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을 그저 직관할 때 그의 시들은 역설적으로 놀라운 활력과 충격을 만들어 낸다. 크면 꼭 빤스 입은 슈퍼맨이 되야 하나..
라 셀레스티나(을유세계문학전집 31)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안영옥 옮김, 을유문화사, 2010)는 1499년에 나온 스페인 최초의 소설이다. 구성은 인물들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 희곡처럼 되어 있으나 공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읽어 주는 소설로 알려져 있다. 칼리스토와 멜라베아의 비극적 사랑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욕망을 숨김 없이 그려낸 이 작품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와서 중세 가톨릭 전통과 신흥 르네상스 정신이 뒤섞인 채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이후에 전개될 스페인 정신의 한 원형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등장 인물들의 개성을 남김 없이 드러내는 강렬한 표현들과 생동감 넘치는 대화는 이 작품이 왜 걸작인지를 저절로 알게 해 준다. 게다가 페이지마다 ..
치누아 아체베, 세상을 떠나다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가 세상을 떠났다. 82세였다. 젊을 때부터 읽고 마음에 간직해 왔던 문학과 사상의 대가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나이들어 감의 한 증거일까. 비워지는 것은 늘어만 가는데, 채워지는 것은 간혹이다. 쓸쓸한 감정에 주말이 즐겁지 않다. 치누아 아체베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세기 말 아프리카의 한 부족 마을이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탈식민주의 소설의 명작이다. "자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평생 동안이나 추방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얌도 자식까지도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난 한때 아내가 여섯이었지. 지금은 왼쪽과 오른쪽도 구별 ..
출판인들이여, 용기를 품어라 최근에 열린 뉴욕 TOC의 기조 연설에서 잉그램의 사장 존 잉그램은 최근의 변화된 환경이 출판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임을 암시하면서 출판인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주문했다. 새길 만하다. “환경은 앞으로도 계속 변해 갈 것이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들의 모든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어리석음이 아니라 용기를 이야기하자. 용기를 품고 계산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때가 도래한 것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런 길도 없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환경에서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미래에 계산된 패를 걸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용감한 지점에 머무르는 동시에 어리석은 짓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나를 돕..
젊은이에게 보내는 충고(타르코프스키) 요즘 청년들은 너무 바쁘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문자 등 소셜에 사로잡힌 과도한 소통이 청년들을 오히려 병들게 한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세우는 것,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함으로써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모험은 이제 젊은이들의 문화 속에서 거의 완연하게 사라져 가는 중이다. 러시아의 영화 감독이자 작가인 타르코프스키는 현대인들의 이런 번잡한 삶에 일침을 가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호소한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 생각에 사람들이 배워야만 하는 유일한 것은 홀로 있는 것,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시끄럽고, 때때로 공격적이기까지 한 사건들 주변에 모여들려고 애쓰는 것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함께 있으려는 이러한 욕망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