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비서가 피아노 소나타 32번의 3악장을 쓰지 않은 연유를 물었다. 작곡가는 시간 여유가 없어 아예 2악장을 좀 길게 늘여 작곡했다고 태연하게 답했다.
시간 여유가 없다니! 게다가 ‘태연하게’라는 말까지! 그런 식의 답변은 거의 경멸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강사는 1820년경 작곡가 처지를 일러주었다. 당시 베토벤의 청력은 손쓸 수 없는 소모성 질환 탓에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고, 자기 곡을 지휘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는 게 정설이라 말했다. 32번 소나타는 갖가지 리듬이 대비되며 펼쳐지는 온갖 운명과 고된 세계를 헤치고 나아가, 2악장 주제가 점차 확대되어 마침내 경지를 벗어나 서 종국엔 피안 혹은 추상 세계라 할 만한 아득한 높이로 소멸되어 간다고 간주했다.
소나타를 직접 들어 보면 어떤 연유로 3악장이 없는지 그 의문이 저절로 해소된다는 것이다. 2악장에서 그렇게 이별을 고한 다음 어떻게 다시 3악장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겠느냐고……. 소나타라는 양식 자체가 이 곡에서 끝을 보았고 자신의 소명을 다했고 어떠한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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