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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열정/감각 공부

악수의 역사

악수(握手, handshake)는 두 사람이 상대방 손 중 하나를 맞잡는 인사법이다. 흔히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짧게 흔드는 동작을 포함한다. 문화권마다 그 빈도는 다르지만, 악수를 통한 인사법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고, 만남, 이별, 축하, 합의 등을 표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악수는 흔히 선한 의도를 드러내는 데 쓰인다.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려고 선사 시대 때 이미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그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빈 손을 뻗어 내밀면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음을 보일 수 있기에, 즉 상대를 해칠 마음이 없음을 보여줄 수 있기에 이러한 설명이 그럴듯하게 여겨졌을 테다. 또 마주 잡은 손을 천천히 위아래로 흔드는 행위 역시 소매에 감추어졌을 수 있는 칼 등을 제거하려는 뜻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시 근거는 박약한다.

수시마 수브라마니언 미국 워싱턴대 교수의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동아시아, 2022)에 따르면, 악수는 일과 관련된 거래에서 상징적 의미를 담당하는 행위였다. 맹세나 약속을 할 때, 악수는 신성한 유대를 표시하고, 상호 헌신을 보여주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악수는 그 자체로 구속력 있는 계약상의 의무를 나타냈다.”(42쪽)

악수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약 2900년 전 고대 아시리아 제국 때 그려진 부조에 담겨 있다. 이 부조는 아시리아 황제 샬마네세르 3세가 바빌로니아 제국의 황제 마르둑자키르슈미 1세와 동맹을 맺으면서 손을 맞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악수를 보여주는 최초의 부조 작품(이라크박물관 소장)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 호메로스는 악수 장면을 여러 차례 묘사한다. 가령, 『일리아스』에서 현자 네스트로는 그리스군이 용기를 잃지 않고, 트로이 군대와 전면전에 나설 것을 주장하면서 말한다. “우리의 약속이나 맹세들을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소? 결심한 바, 사람들의 계획, 물 섞지 않은 제주(祭酒), 그리고 예전에 우리가 믿고 나눴던 악수, 이런 것들은 다 불 속에나 들어가 버리라고 하시오.”(2권 339~341행, 『일리아스』, 이준석 옮김(아카넷, 2023)) 이처럼 악수는 고대 그리스에선 대개 서약의 의미로 쓰였다.

악수는 고대 그리스의 무덤 예술에 두 사람이 오른손을 내미는 모습을 표현한 장식 형태(이를 덱시오시스(dexiosis)라고 한다) 흔히 쓰였다.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는 기원전 5세기 장례식 비석에는 죽은 자가 가족들과 악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작별 또는 영원한 유대를 상징한다. 기원전 4세기 비석에는 트라세아스가 아내 에우안드리아가 손을 잡고 악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죽은 자가 가족들과 악수하는 모습(기원전 5세기,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소장)

고대 로마에서도 악수는 우정과 충성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97년에 만들어진 로마 동전에는 조화의 여신 콘코르디아의 이름과 함께 한 쌍의 악수하는 손이 새겨져 있다.

악수하는 손이 새겨진 고대 로마의 동전(97년)

인사법으로 쓰이진 않았으나, 동양에서도 서로 손을 맞잡는 악수는 널리 쓰였다. 헤어지거나 만나거나 무언가를 맡길 때, 사람들은 손을 맞잡아 친근감과 믿음을 표시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조상전(曹爽傳)」에 따르면, 악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표현이었다. “조상은 황실의 일가로서 대대로 특별한 총애를 받았고, 돌아가신 황제께서 친히 손을 잡고 조서를 남겨 천하를 맡기셨다.(爽以支屬, 世蒙殊寵, 親受先帝握手遺詔, 託以天下)”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나오는 「판관(判官) 민광효(閔光孝)에서 주는 시」에서 악수는 손을 맞잡고 친근감을 표시하는 행위를 뜻한다. “놀 밝으니 햇빛은 붉게 끓는 듯하고 / 비 개니 산빛은 푸른빛이 듣는 듯하다./ 손 잡고 마음 논하니 눈물이 옷을 적시네. / 인생 한세상이 어찌 그리 괴로운가.(霞明日色正鎔紅, 雨霽山光如滴翠, 握手論心淚洒袍, 人生一世何太勞)”

한편, 『관자(管子)』 「학생들이 지켜야 할 규칙(弟子職)」에서는 악수가 반쯤 주먹 쥐듯 손가락을 구부려 물건을 살짝 움켜쥐는 행위를 가리킨다. “무릇 청소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대야에 물을 가득 담고,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은 후, 당(堂) 위는 [직접] 물을 뿌려서 씻어내고, 방 안은 두 손으로 물을 움켜쥐어 [가볍게] 뿌린다.(凡拼之道. 實水於盤, 攘臂袂及肘, 堂上則播灑, 屋中握手)”

서양에서 악수가 신뢰나 계약의 의미를 잃은 것은 대체로 17세기 이후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어 낯선 이들이 가득한 사회가 되자, “사람들은 더는 악수로 이루어지는 거래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강제성을 띠는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수시마 수브라이언, 43쪽)

그러나 이 시기부터 악수는 오히려 일상적 인사로 널리 퍼져 나갔다. 일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퀘이커교도들이 악수를 대중화하는 게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고개 숙여 절을 하거나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하는 것보다 손을 내밀어 서로 맞잡는 행위가 더 평등하다고 여겼다.

어쨌든 악수 행위는 일상의 흔한 의례로서 대중에게 점차 널리 퍼져 나갔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 탓에 어떻게 악수하는 것이 좋은지 혼란이 찾아들자, 1800년대엔 에티켓 매뉴얼에 올바른 악수법이 포함되기도 했다. 가령, 빅토리아 시대의 악수는 망설임 없이 손을 잡되, 지나치게 강하지 않아야 했다. 1877년에 발간된 한 안내서에 따르면, “인사를 건네는 손을 무례하게 누르거나, 너무 세게 쥐는 신사는 자기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악수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인사법이 되었으나, 나라마다 조금씩 형태나 예절이 다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감염 우려 탓에 손을 쥐는 악수 대신 주먹을 서로 가볍게 부딪는 인사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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