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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부모와 싸우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말다툼 잦은 연애가 만족도를 높인다

 

분노와 적대의 시대, 대화가 사라지다

 

갈등의 시대다.

공적 대화가 완연히 엉망이 된 듯한 정치가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화해보다 분노를, 화합보다 적대를 부추기는 말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을 거듭하는 세태가 우리를 불안에 빠뜨린다.

소셜 미디어는 ‘공공의 소리 지르기’ 경연장이다. 극단적이고 부도덕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올린 사용자가 좋아요나 공유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된다. 적대감, 두려움, 분노를 생산할수록 돈이 되기에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을 음모를 퍼뜨리고 분노를 자극하는 포스팅을 올리도록 독려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배려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그사이에 흔적도 없이 묻혀버린다.

의견 다른 이들끼리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일은 갈수록 보기 힘들다. 세상 곳곳에서 분열과 배척, 갈등과 긴장이 풍선처럼 부푸는 중이다. 다른 생각을 주의 깊게 듣고 받아들이기보다 공격하고 밀어붙이는 일이 일상화했다.

이래도 정녕 괜찮을까. 사회가 쪼개지고 흩어져 사람들이 쟁투하는 야만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모두의 마음에 걱정과 불편이 가득하다.

 

의견 대립은 피할 수 없다

 

영국의 조직문화 전문가인 이언 레슬리의 『다른 의견』(어크로스, 2022)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의견 대립을 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의견 대립의 확산이 도시화와 세계화라는 인류 역사의 자연스러운 귀결인 까닭이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고 낯선 사람과 거래하며 스마트폰으로 대화한다. 이에 따라 눈치를 보면서 관례에 따라 말하는 전통은 약화하고, 위계는 사라지고, 관습은 무너지는 중이다.

두 평등하게 말하고, 상대 말에 더 자주 끼어들며, 입씨름을 벌이고, 자기 의견을 서슴없이 쏟아내는 현상은 세계 어디서나 흔하다. “시끌벅적하고 불손하고 눈부시게 다양한 세상”에서 “모두가 자기 의견을 경청해 주기를 기대”하며 입을 여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의견 대립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

 

다른 의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착각과 달리, 풍성한 의견 대립은 무척 생산적이다. 부모와 의견 충돌이 잦은 아이들은 더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며, 더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한다. 물론, 서로 소리치는 분노에 찬 대립이 아니라 차분한 의견 교환일 경우만 그렇다.

실질적 해결책에 집중할 수 있다면 잦은 말다툼은 연애나 결혼의 만족도를 높인다. 사소한 것들을 항상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이들은 더 큰 문제도 잘 다루고, 열린 의견 대립을 자주 겪는 관계는 심각한 어려움도 잘 버텨낸다.

회사도 똑같다. 갈등하는 조직만 성공한다.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조직에선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면서 절로 변화를 추동한다. 논쟁이 끝없는 불화로 이어질 때만 조직을 좀먹을 뿐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공통의 목표 아래에서 적대적이지 않은 분위기로 논쟁”하는 것은 조직을 크게 발전시킨다.

 

싸우는 건 괜찮다. 잘 싸우는 게 어려울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 싸우는 건 괜찮다. 잘 싸우는 게 어려울 뿐이다. 인류는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좁은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잘 토론하는 태도나 기술을 충분히 진화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의견 대립을 받아들이고 생산적인 논쟁에 이르기보다 다른 의견 자체를 불손히 여기고 눈치 주는 일을 더 잘한다. 어떻게 떠들지를 고민하는 대신 아예 떠들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셈이다.

게다가 인류는 본래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우리는 옳은 것을 믿기보다 믿는 바를 옳다고 우기는 걸 더 선호한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확신하기에 우리는 의견 대립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아요’를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 마음을 열기보다 자기 보호에 더 집중한다.

우리는 의견 대립이 생기면,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적대적이고 무의미한 논쟁을 반복하거나, 별문제 아니라는 듯 속으로 의견을 삼키며 갈등을 피한다. 그러나 물리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쓰이는 투쟁-도피 반응은 갈등 해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의견 대립의 진창 속으로 이끌거나 불화의 불씨를 남길 뿐이다.

 

토론은 배워야 잘할 수 있다

 

레슬리는 “생산적 의견 대립은 잘 훈련된 습관이나 기술의 문제”라고 말한다. 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타고나지 않았기에 열심히 배워서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의견이 일상화한 현대 사회에서는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무마하기보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 처지에 호기심을 품고 관심을 기울이며, 상대가 의견을 바꾸고도 체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대화법을 습득해야 마땅하다.

좋은 성과를 내는 조직엔 내부 갈등을 생산적으로 처리하는 문화가 있다. 46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좋은 예다.

이 회사에는 업무 갈등을 덮어 두기보다 함께 공유한 후 힘을 합쳐 해결책을 모색하는 전통이 있다. 업무 갈등이 관계 갈등으로 번져, 좋지 않은 의견을 고집하면서 동료를 멸시하고 배척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누구나 의사결정에 의문을 던지고 의심스러운 부분에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도록 부추기는 것이 좋은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리더는 논쟁의 당사자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존중한다는 관용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의견 대립은 우리가 가진 가장 훌륭한 사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 마음은 표백된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으면 우리 정신은 정체된다. 변화는 멈추고, 혁신은 정지하며, 적응은 실패한다. 결과는 파멸이다.

갈등을 수용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시간의 강물에 적응 못 하고 익사함을 진화의 역사는 보여 주었다. 변화에 맞춰 자신을 바꾸어 가는 유연한 생명체만이 지구와의 충돌을 이기고 살아남는다.

인류가 세계화의 실패, 팬데믹의 일상화, 기후 재앙의 전면화 등 전례 없는 도전에 맞서는 지금, 우리 종의 생존을 위해 이 길이 아니라 저 길로 가자는 사람들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여 좋은 대화를 거듭하는 일은 가족, 기업, 국가 등 공동으로 굴려 가는 것들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다른 의견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세상에서 생산적인 논쟁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고, 그 기술을 익혀 가는 일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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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아시아경제 칼럼입니다.

 

이언 레슬리의 『다른 의견』, 엄윤미 옮김(어크로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