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문(雜文)/걷는 생각

근대 과학 - 틀리는 게 정상

우리는 지식을 주장할 수 있다.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포퍼에 따르면, 근대 과학의 혁명은 증명이 아니라 반증을 핵심 무기로 삼은 데에서 왔다. 

개별자들은 자기 가설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과학 자체는 잠정적으로 입증된 모든 가설의 비판을 기초로 작동한다. 실험, 논리, 시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과학자들은 선배들의 언어를 시체로 만들어 무덤 속으로 보낸 후 기념비를 세운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진짜 위대한 점은 반증 자체가 아니다. 틀려도 살해당하거나 매장당하지 않는 지적 경쟁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포퍼는 말한다. "우리의 가설을 우리 대신 죽게 한다."

조선시대 당쟁사에서 가설의 패배는 실각, 유배, 사약이었다. 틀림은 곧 죽음이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틀림=죽음, 오류=사약이라고 생각하는 봉건적 사고가 만연하다. 또 슬프지만 그것이 아직 충분히 근대화되지 못한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근대 과학 시스템에서는, 자기 신념을 신앙으로 만드는 사람은 무조건 지게 되어 있고, 공동체에서 발언권이 갈수록 약해지다 결국 지식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 체제에는 신도 없고, 군주도 없고, 성인도 없다. 그냥 무한 검증-반증 시스템 행위자만 존재한다. 
이렇듯 인간 주체가 아니라 시스템이 승리하게 함으로써 과학은 패배자를 과학적 발전의 기여자로 만들었다. 만날만날 가설을 세우고, 시험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현실에선 시험 자원의 배분 문제가 존재하지만.....) 

한마디로, 근대 과학은 모든 참여자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참여자를 자유롭게 해방했다. 과학적 발전의 속도는 이로부터 가속화했다.

=====

포퍼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