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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비트겐슈타인의 오두막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 비트겐슈타인 집안은 19세기에 양모 교역과 철강 산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음으로써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 성에는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등이 드나들면서 연주하고, 구스타프 클림트가 누나 마르가레테의 결혼 기념 초상화를 그릴 정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른바 ‘엄친아’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버트런드 러셀에게 철학을 배웠다. 머리가 좋았다. 스승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스물아홉 살에 철학사상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인 『논리철학논고』를 썼다. 이 책은 철학 탐구의 대상을 인간과 세계의 문제에서 언어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문제를 올바로 보는 법을 우리에게 안내한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의미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힘을 준다. 이것만 제대로 안다면, 누군가 그럴듯한 말로 우리를 농간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은 매우 유명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로써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모든 중대한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라고 선언했다.
『논고』를 쓴 지 몇 달 후인 1919년 8월, 비트겐슈타인은 스스로 ‘재정적 자살’을 선택했다.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형제자매에게 넘긴 후, ‘명예로운 일’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시골 초등학교 교사를 자원했다. 억압적 아버지, 형제들의 잇따른 죽음, 전쟁 직후의 어지러운 세상이 불러온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비트겐슈타인을 괴롭힌 것은 무의미였다. “모든 가능한 과학적 물음들이 대답되더라도, 우리는 삶의 문제들이 여전히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느낀다.”
철학적 탐구도, 합리적 과학도, 치열한 전쟁 경험도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물질이나 지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추구하는 것뿐이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필요한 건 자신한테 집중할 수 있는 오두막 한 채였다. 1913년 스물 중반에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인 스키올덴에 오두막을 얻어 은둔한 이래, 그는 끝없이 오두막 생활로 돌아갔다. 1947년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몇 해 만에 그만둔 후에도 아일랜드 시골 마을의 작은 오두막에 틀어박혀 사색에 전념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정작 부나 명예가 아니다.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가짜 언어로 된 공허한 약속이 넘치는 세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길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 자신의 오두막이 어디 있는지 물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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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칼럼입니다.
타고난 금수저에,
스물아홉 살에
인생 절정에 올라서,
철학의 신이라 불리면
기분이 어떨까요?
......
비트겐슈타인이 이른
또 다른 탐구의 출발점은
명확성이 아니라 감탄문이죠.
"무언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가!"
"세계의 실존은 특별하기도 하구나!"
인생은 시 없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근에 다른 책을 읽다가
소개하고 싶어서 쓴 글인데,
보내고 나니 이 글은 오래전 읽은
<철학, 마법사의 시대>(파우제, 2019)의
감동과 기억이 남아서 썼구나 싶네요....ㅜ
새벽에 다시 읽었습니다.
여러분,
아직 안 사 두셨다면 이 책은 꼭.....
절판 위기에 놓여....ㅜㅜㅜ

 

볼프강 아일렌베르거, <철학, 마법사의 시대>(파우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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