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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의 파산과 문학 제도의 혁신

계간 《자음과모음》 봄호

계간 《자음과모음》 봄호 특집 ‘작가-노동’이 화제다. “원고료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 평론가’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문학평론가 장은정이 구체적 숫자로 답했기 때문이다.

2009~2019년까지 11년 동안 그가 발표한 글은 176편, 원고 매수로 5728매다. 대가는 총 3390만 원, 한 달 평균 46만 원이다. 이른바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 속해 상당히 많은 발표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 정도다. 나머지 평론가들 수입은 말할 것도 없다. ‘전업 평론가’는 불가능하다.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창비 등 주요 문학 출판사의 내부 독회에 바탕을 둔 차세대 평론가 운영 체제를 말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들 출판사는 내부 편집위원, 편집자, 외부 평론가 등의 정기 독회를 통해 문예지 발표 작품, 단행본 시집 및 소설집, 장편소설을 토론한 후, 작품성・대중성・가능성 등을 고려해 잡지에 청탁하고 단행본을 계약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이때 외부 평론가로 초청한 이들이 등단 5년 이내 ‘젊은 평론가’들이다. 

이유는 두 가지. 우선, 한 사람이 모두 좇아서 읽지 못할 정도로 작품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이들이 분담해 읽은 후, 일정한 논의 구조를 거쳐 좋은 작가를 가리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다음, 차세대 육성이다. 평론가는 20대 후반 등단한 후 학계에 자리 잡을 때까지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논문 중심 체제가 강화된 2000년대 이후, 교수가 현장 평론을 하는 건 힘들어졌다. 자사 발행 작품을 잘 읽어 줄 평론가가 충분하지 않자, 출판사 입장에선 ‘좋은 평론가’ 자체를 길러내는 게 나았다.(참고로 시인-서평가, 소설가-서평가가 늘어난 것도 같은 사정에서다.)

장은정에 따르면,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는 근본적 결여가 있었다. 젊은 평론가한테 주어진 기회는 대부분 ‘리뷰’였다. “잡지를 운영하는 편집위원들이 정해 준 텍스트”에 대한 글이었다. 젊은 평론가에게는 선배 평론가들의 ‘좋음’에 복속해 그 과업을 잘 수행할 의무만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평론가가 “어떤 텍스트가 다시 읽힐 만한 비평적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출판산업이 평론을 내부의 한 영역으로 포획해 버린 것이다. 이로써 이들은 문단의 ‘이너서클’이 될 신인 드래프트에는 통과했을지 모르나, 출판의 이익에 반하는 독립적 언어의 구사에는 상당한 제약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출판산업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비평가가 드물어지자 문학권력이 작품의 생산에서 평가까지 모두 장악하면서 무분별한 작동을 시작한다. 장삿속이 노골화되어 작품에 대한 긍정 비평, 즉 ‘세밀한 읽기’만을 조장하고, 작품의 질에 대한 근본 질문, 즉 ‘비판적 읽기’를 둔화시킨다. 우정의 리뷰만 가능하고 도발적 비판이 좀처럼 존재하지 못한다. 비판 없는 권력은 균형을 잃는다. 

장은정이 보기에, 타락한 권력이 봉합된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버린 것이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다. 신경숙 옹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언어가 동원되었는가. 이후, 올해 초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세밀한 읽기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문단 내부에 늘어났다.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의 언어가 파산하고, 문학제도 자체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비평 언어가 절실해졌다.

‘작가-노동’도 그중 한 이슈다. 출판이 작품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느냐는 오래된 질문이다. 예술성과 시장성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래 좋은 답이 없다.

작가의 바람은 사실 소박하다. 장은정의 글과 함께 실린 강화길과 정영수의 대담에 따르면,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집에 살며, 3800원짜리 마카롱을 사 먹고, 집 앞 근사한 카페에서 드립 커피 정도는 살 수 있는 삶”이다. 소박함이 이루어지도록 십여 년 넘게 동결된 원고료 인상 등 실제 대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작가가 진짜 바라는 것은 문학제도가 자존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작동하는 것 같다. 작가와 출판사가 같은 길에 있다는 느낌이 무너졌다는 심각한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2020년대 문학은 혁신의 과제를 무겁게 짊어진 채 출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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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문화마당 칼럼입니다. 몇 마디 얹어서 여기에 옮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