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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구독의 시대, 지역서점의 살 길을 열다

 

책바다봄.

경남 통영의 독립서점 봄날의책방에서 운영하는 책 꾸러미 구독 서비스이름이다. 25만 원을 내고 연 6, 책방 일꾼이 선별해 보내는 책을 택배로 받아 읽는 서비스이다. 1회에 4만 원이 넘으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그러나 지난 128일 모집을 시작한 정기구독자 200명은 열흘이 되기 전에 마감됐다.

책바다봄은 단지 책 받아 봄을 넘어서 좋은 책과 바다의 향기를 함께 만나는” ‘-바다-이었다. 먼저, 전국 각지의 바닷가에 자리 잡은 독립출판사 네 곳의 이 있다. 봄날의책방을 운영하는 통영의 남해의봄날,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인천 강화의 딸기책방,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가 힘을 모았다. 여기에 바다가 더해졌다. 지역 특산물을 함께 보내준다. 덕분에 구독자들은 두 달에 한 차례 책도 읽고, 반건조 생선 등 삼면 바다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첫 배송일은 3월 중이다. “산 너머 남쪽에서 선물처럼 찾아온 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이 온라인을 닮는 사이버-피지컬 현상은 세계적 추세이다. 오프라인 공간의 흥망은 규모나 위치보다 매력과 평판이 좌우한다. ‘어디에, 어떻게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경험하게 해 주느냐가 공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서점도 다를 바 없다. 전국 독립서점들은 매력적 공간, 독특한 큐레이션, 잊지 못할 경험 등을 통해 독자들 간에 인기를 끌어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의 일상화는 독립서점의 매력을 작동 불능으로 만들었다. 독자들이 서점에 오지 못하고 저자 강연 등 책 모임이 온라인 만남으로 대체되면서 많은 독립서점들이 위기에 빠졌다. 경기도 지역서점 실태조사 및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도내 지역서점 중 3분의 2는 작년 상반기 매출액이 2019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평균 감소율은 31.3%였다. 감염자 수가 급증한 하반기엔 더 어려웠다. 다른 지역도 비슷할 것이다.

고난은 인간을 지혜롭게 하고, 위기는 사업을 창조적으로 만든다. 초연결사회는 비대면 구독 서비스의 시대이기도 하다. 안경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독하는 세계가 열렸다. 매력을 전달한다면 종이책 구독도 당연히 가능하다. 작년 5월 봄날의책방은 위기 타개를 위해 책 꾸러미 서비스 100명 분을 기획했고, 순식간에 완판해 독립서점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다. 특히, 통영 지역 셰프가 쓴 통영백미라는 책을 보내면서 특산물을 끼워 보낸 것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용기를 얻은 책방은 이번에 서비스를 전국 규모로 확장했다. 독자들 호응은 더 뜨거웠다. 역량이 허락했다면 구독자도 훨씬 늘었을 것이다. 평소 책 생태계에서 봄날의책방이 쌓은 평판이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이다.

영국의 독립서점 돈트북스는 책을 아름답게 대접하는 서점이라는 평판을 얻을 정도로 공간 경험을 극대화한 진열로 유명하다. 이 서점의 또 다른 매력은 전문가 상담을 받아 매달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정성 어린 편지와 함께 받아 보는 구독 서비스. 한국에서도 최인아책방, 당인리책발전소 등의 구독 서비스가 사랑받고 있다.

일본의 출판사 타베루통신은 도시의 먹는 사람과 농산어촌의 만드는 사람을 잡지를 통해 서로 연결한다. 간편식 열풍이 상징하는 공업적 먹거리 소비가 일반화된 세상에서 이 출판사는 월간지를 구독하면 지역 식자재를 함께 보낸다. 잡지엔 먹거리를 생산하고 요리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가득하다. 생산자-소비자-출판사가 온라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 끝에 매달 8000명 이상 구독자를 모았다.

봄날의책방에서 서비스하는 책바다봄’은 두 사례를 하나로 합친 듯한 모습이다. 책과 함께 지역을 판매하는 서비스는 지역 독립서점의 오랜 꿈이다. 책만으로 안 되지만, 책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역서점 구독 서비스 시대가 열렸다. 많은 시도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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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