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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테니스의 미학이 탄생하다


스포츠가 예술의 일종임은 누구나 안다. 

아름다우니까. 

위대한 선수들은 모두 인체의 물리학을 위반한다. 

“인간 안에서 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초월”을 실행한다. 

‘아!’ 하는 외마디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동작의 기적적 응축. 

언어의 길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순간적인 창조가 거기에 있다. 

오랜 연습을 통해 인간의 모든 움직임을 극한에 이를 때까지 단련한 후에도, 

아주 잠깐 동안만 구현할 수 있는 힘의 엄청난 약동.


그런데 순간은 예술이 아니다. 

찰나의 덧없음을 영원의 형태로 붙잡아 둘 수 있는 미학적 힘이 있어야 비로소 예술이 된다. 

위대한 선수들의 자서전은 흔히 자신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예술로 만드는 데 실패한다. 

잘못은 없다. 

“한 번에 공 하나씩” 같은 언어적 클리셰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게임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행하는 실천이야말로 

그들이 지닌 위대함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테니스라는 경기를 미(美)의 물질로 만든다. 

전적으로 테니스에 바쳐진 이 책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단 한 줄조차 클리셰에 양보하지 않는다. 

이 책은 우아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축조된 테니스 자체다. 

아마추어 주니어 선수로 테니스 경기의 세부를 피부로 경험했고, 

또 언어 예술가로 한 시대를 감동시킨 탁월한 소설가답다.


일대일로 적을 맞이했을 때에만 분출되는 격렬한 에너지,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받아쳐 

90센티미터 높이의 네트 너머로 

23.77미터 떨어진 0.1제곱미터의 네모 안에 넣을 수 있는” 기적적 정교함, 

샷 하나마다 “각도, 깊이, 속도, 스핀”을 조절할 수 있는 뛰어난 지능 등 

테니스의 움직임 전체가 온전한 언어를 얻었다. 

불가능이 가능해지면서 테니스의 미학이 드디어 탄생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끈이론』, 노승영 옮김(알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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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 노승영 옮김(알마, 2019)의 추천사를 썼다. 

여기에 옮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