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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중앙북스)를 완독하다


아침과 점심, 딸아이를 미술학원에 데려갔다 데려온 시간을 제외하면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이덕무의 말처럼, 새벽에 논어를 읽는 일은 하루를 온화하게 한다. 번역서의 교정지를 받아 편집자가 읽고 표시한 부분을 중심으로 읽어 가면서, 머리가 한껏 복잡해질 때마다 잠시 눈을 붙이거나 이중톈의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심규호 옮김, 중앙북스, 2013), 프랑수아 줄리앵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2010), 김탁환의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2, 민음사, 2014),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 2006)을 조금씩 들추었다.

오늘 한 챕터 남았던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를 완독했다. 이 책의 원제는 중국의 지혜(中國的智慧)’인데, 몇 년 전 베이징 도서전에 갔을 때 전시장에서 본 책이었다. 감쪽같이 몰랐으니 중년의 기억이란 얼마나 참담한가. 책 뒤에 붙은 저자의 말을 읽다가 흥미로웠던 것은 이 책이 차이나모바일주관으로 열린 여섯 차례 강연회를 책으로 엮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중국기업이 한국기업을 그토록 빠른 속도록 따라 붙은 것은 방대한 내수 시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정신적 투자를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 없이 물질은 결코 혁신될 수 없다. 혁신은 구호가 아니라 정신의 방향전환이다. 자신의 지혜를 돌아보고 남의 사정을 알려 하지 않고 세상을 바꿀 길은 전혀 없다.

에즈라 보걸의 덩샤오핑 평전(심규호, 유소영 옮김, 민음사, 2014) 역시 정말 꾸준히, 한없이 읽는다. 오늘날 중국의, 그중에서도 공산당 최상층부의 사유를 이해하는 것은 미국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변방의 지식인으로서 최우선 과제이다. 피 비린내 나는 세계의 현실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은 어쩌면 어쭙잖게 유럽과 같은 구세계적 질서를 향수하는 데에서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고 어쩌면 우리가 가장 외면하려하는 두 제국을 곧장 인식하는 데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덩샤오핑이 집권하자마자, 소련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자본주의 주적인 미국 및 일본과 손잡고, 사회주의 혈맹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고, 학살의 주범 폴 포트와 동맹하고, 동남아시아 각국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끊는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는 것을 보면 외교란 결코 정명(正名)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북한의 김일성 역시 덩샤오핑과 회담에서 이 사실을 담담히 수용하는 것을 보면 아마추어들이 외교를 함부로 농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된다.

 

 

(1)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 예찬(공진호 옮김, 현암사, 2014) 중에서


 

문자를 좇으면 거기에 담긴 정신을 놓치는데, 정신은 시의 모든 것이다. 정신을 좇으면 문자를 놓치는데, 문자는 시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 딜레마다. 최상의 시 번역은 제2의 언어로 완전히 새로운 맛을 생산해 낸다. 똑같은 가치를 지닌, 새로우면서도 대등한 말을. (존 펠스티너) (104)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 박자를 듣고 이에 상응하는 음률을 새로운 언어의 시행으로 옮기는 일은 번역가의 의무입니다. (111)

 

 

(2) 에즈라 보걸, 덩샤오핑 평전(심규호, 유소영 옮김, 민음사, 2014) 중에서

 

문화 대혁명은 사실 반문화 혁명이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보다 낡은 문화를 타도하는 데 더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343)

인민의 발언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연약함과 신경 쇠약의 표현일 뿐이다. …… 안정과 단결은 민주주의의 발양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런민일보 사설) (350)

전략 분석에서 덩샤오핑의 출발점은 주적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동맹을 구축하여 대항하며, 적의 동맹군을 분열시켜 적으로부터 떼어 내는 것이다. (368)

북한은 비록 국토는 좁지만 스스로 위엄을 보이기를 좋아했다. (381)

만약 상하이만이라면 보다 신속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 그러나 나는 중국 전체를 맡아야 하는걸. (396)

 

 

(3) 프랑수아 줄리앵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2010)에서

 


말은 스스로 지워짐으로써 비로소 그 말할 수 없음을 환기할 수 있다. (81)

가볍게 내리는 눈도 종을 떨게 한다. (모리스 블랑쇼) (83)

중국 전통에서 시 비평은 종종 그 자체가 시가 되며, 암시적이고 은밀한 표현을 즐긴다. 그것은 의미를 재구축하기보다 음미하는 능력을 자극한다. (92)

()은 양극 사이에, 즉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나타나 오히려 불모의 것이 되기 쉬운 상태와 지나치게 희미하여 지워지고 잊힐 상태 사이에 있다. 너무 두드러질 위험과 도대체 기호로서 존재하지 않을 위험 사이에 놓인 담이라는 기호는 아주 간신히 기호로 남는다. 그것은 기호의 완전한 부재는 아니지만 스스로 비워지는 중인 기호, 부재하기 시작하는 기호이다. 불가시의 조화를 나타내는, 분산된 흔적이라고나 할 것이다. (98)

모든 문학이 처음에는 화려하다가, 나중에는 평담해진다.” 그것이 문학의 가을이요, ‘겨울이다. (102)

올바름()은 정서적 차원 또한 지니고 있으며, 외부에서 강제된 엄격성처럼 우리의 감수성을 억압하기는커녕 우리에게 세상의 깊이를 열어 주며 우리로 하여금 근본적인 것에 감동하게 해 준다. (중략) 정서는 우리와 세상의 풍부한 연관성을, 우리가 얼마나 세상의 일부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주관성을 존재들의 연대성에로, 현실의 상호 의존성에로 열어주며, 배타적이고 제한된 개별적 시각에서 탈피하게 해 준다. (104~105)

사물의 이치가 평범함과 담백함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 저녁부터 아침까지 그대는 드넓은 빛 가운데 있다. (매요신) (108)

 

 

(4) 김탁환의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2, 민음사, 2014) 중에서


 

남자 나이 마흔 살을 넘기면, 쉽게 마음을 열고 벗을 사귀기 어렵다. 지금까지 맺은 인연을 챙기고 살피기에도 빠듯한 나날이다. (95)

농사는 지어 무엇하는가,/ 내가 지은 곡식 먹지 못한다면./ 눈물은 흘려 무엇하는가,/ 내가 흘린 눈물 누군가 또 흘린다면./ 글은 지어 무엇하는가,/ 내가 지은 글 종이만 더럽힌다면./ 피는 흘려 무엇하는가,/ 내가 흘린 피 땅으로 사라진다면. (100~101)

천하의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다루는 것이 역사이니, 권함과 경계함이 세세손손 분명해야 하네. (123)

토지를 열심히 일구는 농사꾼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살 수 없다면 그 나라는 없애야 한다. (125)

혁명의 길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아니 모든 일이 다 일어난 뒤 혁명은 완성된다. (127)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으뜸 학자가 최고 선생이 아닐 때가 훨씬 많다. (128)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의심하고 질문하며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천하를 정립하는 일이지. (143)

전쟁은 어두운 것을 더욱 어둡게 하고 밝은 것을 더욱 밝게 만든다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사람들은 본마음을 드러내지. (145)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