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다른 철학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주장은 낯설지 않지만 실제로 그에 정직하게 답하는 철학을 만나기란 어렵다. 최근 일본의 한 철학자가 쓴 글을 보았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가령, 결혼은 좋은 일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결혼은 친척이라는 <불쾌한 이웃>뿐만 아니라 아이라는 궁극의 <불쾌함>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일>이다. <결혼은 쾌락을 보증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이 약속하는 것은 끝없는 '불쾌함'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하는 인간에게 '쾌락'이 아니라 어떤 '성취감'을 약속하고 있다. 그것은 재생산이 아니다. '불쾌한 이웃', 즉 '타인'과 공생하는 능력이다.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근원적인 의미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조건인 것이다.> 결혼이란, <이해도 공감도 가능하지 않아도 인간은 타인과 공생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타자와 함께 사는 능력을 키우지 않는 한 인간에게 진보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 교과서의 단일 민족 신화는 가능한 한 빨리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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