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배신자들, 즉 법치를 조롱하고 무시하며, 포퓰리즘적 선동을 일삼고, 막강한 권한을 사용해 정부 기관을 공격하고, 민주적 규범을 위반하는 독재자들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잘못과 오류를 낱낱이 지적해 시민들 각성을 촉구하고, 탄핵이나 선거 등 합법적 절차를 통해 ‘스트롱맨들’을 몰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트럼프는 되돌아왔고, 현재 합법과 불법을 공공연히 넘나들면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무엇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미국은 왜 오래되고 익숙한 민주주의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이 물음은 시민 힘으로 계엄령을 저지하고, 대통령을 탄핵한 후, 새 대통령을 선거한 우리에게도 시급하다.
『정부의 실패와 민주주의 위기』(사회평론 펴냄)에서 윌리엄 하웰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테리 모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미국 민주주의의 파산을 절망적으로 선고한다. 원칙을 손보고 체제를 고치지 않는 한, 트럼프로 상징되는 극우 포퓰리즘의 발흥과 민주주의의 전면 후퇴를 막을 수 없단 뜻이다.
두 원로 정치학자의 현실 진단은 명확하다. ‘트럼프’의 등장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다. 그 뿌리는 1970년대 이후 전개된 가속적 현대화, 즉 세계화, 자동화, 도시화의 물결이고, 그 결과로 나타난 장기적 성장 둔화와 낮은 생산성, 오랜 긴축정책이 가져온 삶의 파탄이다. 그 탓에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불평등이 심해졌다. 또 지역사회가 파괴돼 공동체가 해체되고, 이민자가 급증해 사회문화적 혼란이 생겨났다.
미국의 경우, 이 흐름에 가장 크게 타격 입은 이들이 저학력 백인 남성 노동자였다. 농촌과 러스트 벨트에 주로 사는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하락하고, 정신적 자부는 깨어졌다. 그러나 양당 정치는 무능했다. 그들은 일자리를 공급하고 사회 안전망을 제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대신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분노와 절망이 온 사회로 번지면서 하나의 세력을 이루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절박한 그들에게 트럼프는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는 당장 굶어 죽겠는데 사태 해결을 질질 미루는 워싱턴 정치가들, 참을 수 없이 아픈데 입바른 소리나 해대는 뉴욕의 언론인들과 달랐다. 포퓰리즘의 오래된 전략에 따라 그는 세계화와 기술변화에 따른 고통을 단칼에 해결하고, 위대한 아메리카를 되돌리겠다고 나섰다. 대중들은 허풍과 거짓, 편견과 악의가 뒤섞인 이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고통을 해결할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들 진단은 단호하고 냉정하다. 현재의 무능한 대통령제, 제대로 일하기 힘든 대통령제론 가속적 변화가 일상화한 세계에서 생겨나는 온갖 문제들을 신속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 민주주의 체제는 230년 전 400만도 안 되는 인구가 농사지으며 사는 시절에 마련됐다. 게다가 미국 특유의 강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정부 역할 축소에 집중했다. 권력은 분산됐고, 권한은 나누어졌으며, 규칙과 절차는 복잡했고, 입법은 이익단체 이해에 민감히 반응하게 설계됐다.
덕택에 누구도 다른 사람 의견을 함부로 무시하고, 그 자유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국가 역량을 집중해 시급환 과제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에는 무능했다. 법안의 장기 교착과 사리사욕적 협잡이 정치의 작동 원리가 됐다. 세계화가 가져온 기후변화, 팬데믹, 양극화, 제조업 붕괴, 불법 이민 같은 국가적 과제는 이런 느린 시스템으론 처리 불가능했다. 민주의 고통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는 위험한 포퓰리스트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를 건너뛰고 폭력을 써서라도 문제를 빨리 처리하겠다고 나대는 까닭이다.
선거에서 민주주의에 헌신하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으론 독재적 스트롱맨의 등장을 막을 수 없다. 새 지도자를 뽑아 봐야, 정치적 협잡과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탓에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물러나기 십상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민주주의 자체의 혁신이 필요하다. 저자들은 그 방향을 세 가지로 압축해 제안한다.
우선, 법안 구성과 공직자 임명에 대통령의 신속처리권한을 준다.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고 의회는 지정 시간 안에 이를 찬반 결정만 해서 문제 대응력을 높이자는 말이다. 둘째, 이렇게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대신, 독재할 수 없게 정보기관과 법무부를 대통령 손에서 독립시킨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 사면권을 폐지하고, 비상사태 발동이 어렵게 개정하며, 강력한 이해 충돌 금지법을 제정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임명직을 정부 부서당 한둘로 줄이고, 공무원 임기를 보장해 관료제를 탈정치화한다.
대공황 직후 루스벨트가 긴급히 뉴딜을 제안했듯, ‘일하는 대통령’을 만들어 민중들 고통을 빠르게 해결하는 한편, 권위주의 지배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그 핵심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전횡, 관료제의 폐해 등 이 개혁안엔 비판받을 점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헌법을 개정해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할 때, 참고할 만한 주장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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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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