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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양자 컴퓨터란 무엇인가

현황

​양자 컴퓨터는 현재의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원리를 기반으로 하면서 ‘양자’라는 새로운 성질을 더해서 기능을 향상한 컴퓨터이다. (1-18쪽) 양자 컴퓨터에는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다. 컴퓨팅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때문이다.

주판, 시계, 계산기, 컴퓨터 등 지금까지 발명된 모든 계산 도구는 숫자를 계산하는 규칙을 물리 현상으로 대체하여 계산한다. (1-33쪽) 양자 컴퓨터는 원리적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스위치를 사용하는 계산기(트랜지스터)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사람들 착각과 달리, 양자 컴퓨터는 현재 우리 곁에 이미 존재한다. 2019년 1월부터 IBM에서는 양자 컴퓨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9년 10월에 구글은 “최첨단 슈퍼컴퓨터로도 푸는 데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우리 회사의 양자 컴퓨터가 200초 만에 풀었다.”라고 발표했다.* 단, 현재의 양자 컴퓨터는 진정한 양자 컴퓨터는 아니다. 양자 컴퓨터처럼 동작은 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컴퓨터는 아니다. (1-18~19쪽)

전 세계에 양자 컴퓨터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구글이 미국 대학의 한 연구팀을 사들여서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미국, 유럽, 중국 등은 국가 차원에서 양자 컴퓨터 개발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구글,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마찬가지다. (1-20~21쪽)

양자 컴퓨터는 대단한 혁신이 아니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기초 연구를 통해 한 걸음씩 착실하게 진전해 오다가 갑자기 세상을 주목을 받은 것이다. (1-23쪽)

※ 구글의 실험은 일반적으로 양자 컴퓨터가 슈퍼 컴퓨터를 능가한다는 뜻이 아니다. 양자 컴퓨터에 유리한 특별한 문제를 일부러 만든 후, 양자 컴퓨터가 그것을 계산하게 한 결과와 이 계산을 그대로 슈퍼 컴퓨터가 흉내 내게 한 결과를 비교한 것이다. 이런 문제로 겨룬다면, 50양자비트 정도의 양자컴퓨터가 슈퍼 컴퓨터를 이길 가능성이 있다. 구글의 실험은 양자의 성질을 사용하면 계산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처음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1-163~163쪽)

 

양자 컴퓨터의 초기 역사

1980년 양자 컴퓨터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공한 사람은 폴 베니오프다. 이는 양자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2-154쪽) 곧바로 1982년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 컴퓨터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자연현상은 양자역학의 원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자연현상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고 싶으면 양자역학의 원리를 따르는 컴퓨터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양자컴퓨터가 있으면 현대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계산을 처리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1984년 찰스 베넷과 질 브라사르는 양자 암호통신의 방법을 제안했고, 1989년 베넷과 존 스몰린은 도청이 불가능한 양자 암호통신을 처음으로 직접 구현했다. 이는 미국 국방부의 관심을 끌었다. (2-154쪽) 1993년 베넷은 양자 원격이동 기술을 발표했다. 이는 SF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원격 이동 장면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 기술은 1997년 광자(빛)으로 처음 구현되었고, 나중에는 원자로도 구현되었다.

1985년 ‘양자 컴퓨터의 아버지’ 데이비드 도이치는 양자 역학의 원리를 따르는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초 이론을 완성했다. 1994년 피터 쇼어는 양자 컴퓨터로 소인수분해를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냈다. 소인수분해는 자릿수가 늘어날수록 계산이 복잡해진다. 수백 자리까지 늘어나면 현재의 컴퓨터로는 수만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양자 컴퓨터 특유의 해법을 이용하면 압도적으로 빨리 소인수분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1-43쪽) 이 발견을 기점으로 양자컴퓨터 개발이 시동이 걸렸다. 국방, 금융 등 통신에서 사용하는 현재의 공개키 암호가 소인수분해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지는데, 이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공개키 암호를 깰 수 있기 때문이다. (2-155쪽)

1996년 로브 그로버가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을 발표했다. 데이터 검색은 빅데이터 처리가 중요한 모든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밀키 암호를 격파하는 데 쓸 수 있다. 이 탓에 국방 안보 전문가들은 양자 물리 공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2-155쪽)

1997년 핵자기 공명으로 양자컴퓨터가 처음 구현됐다. 2비트짜리 장난감 수준의 데모였으나, 양자컴퓨터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2-155쪽) 이때부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전 세계 대학과 연구소에서 양자 컴퓨터 관련 기초 기술이 개발되었고, 2010년대에는 대기업에서도 개발을 시작해 양자 컴퓨터 붐이 일어난 것이다.

 

양자 컴퓨터의 필요성과 용도

현대 문명은 컴퓨터의 능력에 의존한다. 따라서 컴퓨팅 능력의 한계는 곧 현대 문명의 한계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류는 자율주행 자동차, 신약 개발, 날씨나 질병 예측 등 인공지능을 이용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려면 현재의 컴퓨터보다 더 좋은 컴퓨터가 필요하다.

수많은 국가와 회사가 양자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은 현재의 컴퓨터 성능이 더 이상 압도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컴퓨터는 모두 전기 회로를 이용한 스위치를 사용한다. 1940년대에 발명한 트랜지스터이다. 현재의 컴퓨터는 모두 댜량의 트랜지스터 집합체다. (1-36쪽)

가로세로 몇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컴퓨터 CPU에는 트랜지스터 10억 개 정도가 들어가 있고, 이를 이용해 1초에 10억 회 정도 계산을 수행한다.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들수록 더 많이 집적해서 많은 정보를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기에, 지금까지 컴퓨터 회사들은 모두 더 작은 트랜지스터를 개발하고, 이를 상용화하는 데 힘을 쏟아 왔다. 현재의 트랜지스터는 10나노미터(10만 분의 1밀리미터)까지 작아졌다. (1-38쪽)

그런데 원자 한 개의 크기는 약 0.1나노미터이다. 크기가 원자에 가까워지면 트랜지스터는 더 이상 스위치로 기능하지 못한다. 물질 크기가 원자 한 개나 전자 한 개 수준에 이르면, 일상 세계와는 전혀 다른 미시 세계 특유의 물리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진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의 성질을 이용해서 이 한계에 도전한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 역학을 이용해 미시 세계를 우리 뜻대로 조작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이다. (1-42쪽)

물론, 양자 컴퓨터는 만능이 아니다. 특별한 계산만 현재 컴퓨터보다 잘할 수 있다. 가령, 이미 원리가 밝혀진 대로 소인수분해를 잘하니까 현재의 암호화 기술(RSA)을 깨는 데 사용하면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가 미래에 가장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화학 계산이다. 양자 컴퓨터를 사용하면 화학 계산을 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할 수 있기에 태양 전지 패널, 특정 질병 치료에 적합한 새로운 약물 등 새로운 화학 물질을 개발하는 데 유리하다. (1-46쪽)

또한 양자 컴퓨터는 택배 트럭의 배달 경로, 공장의 제조 프로세스,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최적화하는 등 여러 가지 패턴 중 가장 좋은 패턴을 골라내는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잘할 수 있다. (1-47쪽)

양자 컴퓨터의 또 다른 장점은 발열량이 제로에 가까워져 소비 전력이 극도로 낮아진다는 점에도 있다. 현대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등은 계속 사용하면 뜨거워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논리 연산을 실행할 때마다 정보를 잃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트로 AND 연산을 하는 경우, 입력에는 비트가 두 개 있는데, 출력에는 비트가 하나밖에 없다.

물리학에서는 “정보를 잃으면 반드시 열이 발생한다.”(란다두어의 원리)라는 법칙이 있다. 이 때문에 현대 컴퓨터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열 발생을 피할 수 없고, 성능이 향상될수록 발열량과 소비 전력이 증가한다. 슈퍼컴퓨터 한 대는 일반 가정 1만 세대가 소비하는 전력을 사용한다. (1-126쪽)

그러나 양자 컴퓨터에서는 정보를 잃지 않는다. 양자 AND에서는 정보를 잃지 않기 위해 입력과 출력 개수를 늘려서 입력과 출력의 개수가 같다. 이런 컴퓨터는 원리적으로 열 발생이 한없이 제로에 가까워지므로 소비 전력이 작아진다. 양자 컴퓨터는 계산 성능이 높을 뿐 아니라 저소비 전력 친환경 컴퓨터가 될 가능성이 있다. (1-127쪽)

양자 컴퓨터의 계산 원리

양자 컴퓨터는 양자의 ‘중첩’과 ‘간섭’을 잘 이용해서 문제를 푼다. 그 계산 원리는 유명한 ‘2중 슬릿 실험’과 비슷하다. (1-78쪽)

예를 들어보자. 비밀번호를 모르는 다이얼 자물쇠가 있는데, 어떻게든 번호를 알아내려 한다. 다이얼 비밀번호는 네 가지 패턴뿐이라고 하자. 현대 컴퓨터로 이 문제를 푼다면 네 가지 번호를 하나씩 차례대로 시도해서 몇 번이고 반복한 다음 딱 맞는 답을 찾는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는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답을 찾는다. 전자는 중첩되어 여러 슬릿을 동시에 통과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는 이 성질을 이용해 전자를 단 한 번만 발사해서 네 개의 슬릿을 동시에 조사한다. 전자가 파동처럼 네 개 슬릿을 빠져나가면 정답 슬릿을 지나간 파동만 위상이 달라진다. 이때 오답 슬릿을 통과한 세 개 파동과 정답 슬릿을 통과한 파동을 ‘잘’ 간섭시키면, 정답 슬릿을 통과한 파동만 보강되어 커지고, 오답 슬릿을 통과한 파동은 상쇄되어 작아진다. 최종적으로 벽에 전자가 부딪히는 위치를 조사하면 정답 슬릿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1-80쪽)

요컨대, 양자 컴퓨터는 하나씩 계산하는 대신에 몇 가지 계산을 중첩해서 동시에 한 다음, 간섭을 통해 답에 해당하는 계산 패턴만 찾아낸다. 간섭에는 고안이 필요하지만, 잘만 하면 답을 찾아내는 수고를 확 줄일 수 있다. 양자 컴퓨터를 잘 만들려면 계산 도중에 중첩을 만들어 내는 파동의 성질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도록 주위 영향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양자 컴퓨터의 원리를 논리 연산을 통해 정확히 이해해 보자. 현대 컴퓨터에서 비트는 0이나 1 중 하나이다. 비트 정보는 트랜지스터의 ON과 OFF로 표시하므로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정보 값을 취할 수 없다. (1-100쪽) 현대 컴퓨터는 논리 연산을 통해 비트를 변환해서 계산을 수행한다.

그런데 양자의 성질을 이용해서 정보를 표시하면 0과 1뿐만 아니라 그 중첩도 표시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는 ‘0과 1의 중첩’을 정보 단위로, 즉 양자 비트를 정보 단위로 사용한다. (1-100쪽) 양자 컴퓨터는 양자 비트의 중첩 방식으로 정보를 나타내고 양자 논리연산으로 그 중첩 방식을 변화시키면서 계산을 수행한다.

양자 비트의 개수가 증가하면 많은 정보를 중첩할 수 있다. 가령, 양자 비트가 두 개라면 일반적인 비트 두 개로 표시할 수 있는 00, 01, 10, 11이라는 네 가지 패턴 모두를 동시에 중첩해서 가질 수 있다. 양자 비트가 하나 증가할 때마다 중첩할 수 있는 패턴은 두 배가 된다. 양자 비트가 n개라면 2n가지 패턴의 모든 정보를 중첩해서 가질 수 있다. 양자 비트가 10개라면 약 1,000가지, 양자 비트가 100개라면 1030가지 패턴을 중첩할 수 있다. 적은 개수로도 방대한 패턴 정보를 중첩해서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양자 비트의 놀라운 능력이다. (1-101쪽) 이 때문에 양자 비트는 비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양자 논리연산은 중첩된 각 정보에 대해 중첩을 유지한 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0과 1의 중첩인 양자 비트에 양자 NOT 연산을 실행하면 0에 대한 NOT 연산과 1에 대한 NOT 연산이 동시에 실행되고, 두 가지 연산 결과가 중첩된 채 출력된다. 따라서 양자 컴퓨터에서는 몇 가지 패턴 계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기에 이론적으로는 현대 컴퓨터보다 계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다. (1-103쪽)

문제는 양자 비트의 중첩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똑같이 0과 1을 중첩해서 정보를 표현하더라도, 0과 1에 대응하는 진폭의 비율이 다르거나 위상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정보를 가지는 양자 비트가 된다. 현대 컴퓨터에선 n개의 비트가 한 가지 패턴 정보만 표현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에서 n개의 양자 비트는 2n개의 파동이 어떻게 중첩되었느냐 하는 중첩 방식의 정보를 나타낸다. 요컨대, 양자 컴퓨터는 중첩 방식을 나타내는 많은 파동을 잘 조종하면서 계산을 처리하는 기계이다. (1-105~107쪽)

언제나 ‘잘’ 조정하는 게 어렵다. 중첩되어 표현된 마지막 계산 결과 중에서 원하는 계산 결과를 읽는 일이 쉽지 않다. 양자 비트의 정보값을 확인하려고 측정을 시도하는 순간 중첩이 깨져서 0이나 1 한쪽으로 정보 값이 정해져 중첩된 전체 정보값은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양자 논리 연산을 조합하는 방식을 ‘잘’ 고려해서 일련의 연산을 실행한 후 원하는 답만 읽어내는 파형을 완성하지 않는 한 양자 컴퓨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요컨대, 양자 컴퓨터는 많은 파동을 조종해서 답을 끌어내는 ‘파동을 사용한 계산 장치’라고 보아야 한다. (1-118쪽) 이를 위해서는 중첩된 파동 집합을 조종해서 계산할 때 파동과 파동의 간섭을 ‘잘’ 이용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양자 컴퓨터가 진짜 능력을 발휘해서 계산이 빨라진다. (1-121쪽)

양자 컴퓨터의 계산이 빠른 이유

 

양자 컴퓨터는 만능이 아니다. 양자 컴퓨터로 빨리 풀 수 있는 문제는 몇 종류밖에 없다. 그 밖의 문제는 현재의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의 계산 속도가 비슷하다.

어떤 수학 문제를 풀 때, 컴퓨터는 순서에 따라 사칙연산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답을 계산한다. 가령, ‘숫자 X와 Y를 더해서 그 결과에 숫자 Z를 곱한다’처럼 계산 순서를 알고 있는 알고리즘을 빠르게 반복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계산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1-24~25쪽)

원리적으로 양자컴퓨터가 풀 수 있는 문제는 돈과 시간만 있다면 현대 컴퓨터로도 모두 풀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지구상에 있는 컴퓨터를 모두 동원해도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데이터를 기억해야 한다든지, 수많은 경로를 고려해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조합 최적화 문제’나 큰 자릿수의 ‘소인수 분해 문제’처럼 계산을 마치기 위해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면, 현실적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는 것과 같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를 이용하는 더 스마트한 해법을 통해 계산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이런 문제의 해결에 도전한다. (1-133~135쪽)

컴퓨터의 계산 시간은 ‘계산 1회에 걸리는 시간’과 ‘계산 횟수’의 곱으로 표현된다. 아직 실용적인 양자 컴퓨터가 없어서 계산 1회에 걸리는 시간은 알 수 없으므로, 계산 속도는 계산 횟수만으로 비교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양자 컴퓨터는 양자 중첩 비트를 이용해서 계산 횟수를 극적으로 줄인다. 현대 컴퓨터는 문제의 규모가 커지면 계산 횟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계산 횟수가 증가하는 속도가 완만한 편이다. (1-136쪽)

그러나 양자 컴퓨터로 계산하면 현대 컴퓨터보다 몇 배나 빨라질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마디로, 양자 컴퓨터가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문제가 따로 있고, 빠름의 정도도 문제마다 각각 다르다. 현재 양자 컴퓨터로 빨리 해낼 수 있는 계산을 모아놓은 ‘양자 알고리즘 동물원’의 식구들은 60가지 정도이다. (1-139쪽)

예를 들면, 비밀 번호 찾기처럼 많은 데이터베이스 중에서 원하는 데이터만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그로버 해법’(1-140쪽), 원자를 조합해서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것같이 유용한 새 물질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양자 화학 계산’(1-147쪽), 암호화 기술 등에 쓰이는 소인수분해를 고속으로 처리하는 ‘쇼어 해법’, 데이터 분석이나 화상 처리 등에 쓰이는 연립 1차 방정식을 고속으로 풀 수 있는 ‘연립 1차 방정식 해법’ 등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문제가 양자 컴퓨터로 계산 횟수를 줄일 수 있는지 하는 일반론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1-138쪽)

양자 컴퓨터는 이 모든 문제를 양자의 파동 성질을 이용해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중첩과 간섭을 적절히 제어해 활용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런 계산으로 실용적 문제를 풀려면 양자 비트를 100만에서 1억 개 이상 높은 정밀도로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기술 수준은 조작 가능한 양자 비트 개수가 100개도 미치지 못하고 계산 오류도 많다. 실제로 ‘쓸 만한’ 양자 컴퓨터가 나올 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돈이 떨어지기 전에(?) 성과를 내려고 소규모 양자 컴퓨터와 현대 컴퓨터를 연계해서 문제를 푸는 계산 방법을 제안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1-159쪽)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기본 방식 - 게이트 방식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에는 게이트 방식, 애닐링 방식, 측정 방식, 단열 방식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대다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은 게이트 방식이다.

게이트 방식은 현재의 범용 컴퓨터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되, 양자의 성질을 이용해서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산기를 만들려는 것이다. 게이트 방식은 인간이 계산 순서를 가르쳐 주면 다양한 문제를 (문을 차례로 드나들듯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범용성이 있다. 위에서 밝혔듯이, 몇 가지 문제는 양자 컴퓨터가 현재의 컴퓨터보다 그 문제를 빨리 처리할 수 있다. (1-50쪽)

애닐링 방식은 양자 컴퓨터 특유의 최적화 문제 해법 중 하나를 이용한다. 이 해법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장치를 (양자 컴퓨터가 아니라) 양자 애닐링 머신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른다. 범용 기계인 양자 컴퓨터가 개발되면, 양자 애닐링 기능은 당연히 수행할 수 있다. 기능상으로 양자 애닐링 머신은 양자 컴퓨터에 포함된다. 현재 양자 애닐링이 양자를 사용하지 않는 해법에 비해 계산이 빨라질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단, 양자 애닐링 머신은 2011년부터 디웨이브(D-wave)라는 벤처 기업이 판매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 중에 이를 양자 컴퓨터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1-51쪽)

 

양자 컴퓨터 개발의 난점

양자 컴퓨터를 실제로 만들려면, 0과 1의 중첩인 양자비트 정보를 어떤 물리적 수단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변환해서 계산을 처리해야 한다. 원자, 전자, 광자 등 양자 전체가 그 후보가 될 수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양자 한 개로 정보를 나타내고, 많은 양자를 조종하여 계산을 실현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양자가 무척 예민해서 우주에서 날아온 빛이나 주변의 전자기력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1-169쪽)

양자 컴퓨터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양자를 주위로부터 격리할 수 있는 곳에 가둬 두되, 그것과 접촉할 수 있는 우리만의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1-170쪽) 더욱이 양자비트는 정보의 성질이 달라서 노이즈나 오차가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 구조인 데다 원리상 중첩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연산을 할수록 오류가 누적된다. 양자비트 연산을 99% 정확도로 수행할 수 있다고 할 때, 연산을 100번 연속하면 정답률은 37%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1-173쪽)

또 현대 컴퓨터는 중간에 계산이 잘못 되어 오류가 발생해도 스스로 정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다. 양자 컴퓨터에서도 오류 정정 방법은 발견했으나, 아직 양자비트를 조작할 때의 오류 비율은 약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매회 연산에서 1퍼센트보다 큰 확률로 오류가 발생한다면, 오류 정정을 할수록 더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1-178쪽)

그런데 이 정도 오류 비율보다 훨씬 더 낮아져야 비로소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쓸 만한 양자 컴퓨터가 된다. 조작 가능한 양자 비트 개수가 100개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이 정도니까, 실제로 100만에서 1억 개 이상 제어할 수준까지 가려면 갈 길이 머나멀다.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소규모이고 오류를 정정할 수 없는 양자 컴퓨터라도 잘만 활용되면 도움이 되는 계산을 할 수 있는 단기 목표를 설정해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이다.

 

양자 컴퓨터 개발의 네 가지 주요 방식

양자 컴퓨터의 최소 개발 조건은 (1) 양자를 사용해서 양자비트의 정보를 나타낸 다음, (2) 그 양자의 성질을 방해물로부터 보호해서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3) 낮은 오류 비율로 정확하게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1-182쪽) 여기에 트랜지스터처럼 작게 만들 수 있어서 집적이 쉽고(집적의 용이성), 1초에 10억 회 이상 초고속으로 ON과 OFF를 전환(동작의 고속성)할 수 있어야 하고, 동작을 위해 냉각이나 진공을 위한 특수 장치가 없을수록(사용의 편의성) 좋다. (1-182쪽)

현재 양자 컴퓨터 개발 방식은 초전도 회로 방식, 이온 방식, 반도체 방식, 광 방식 등 네 가지가 대표적이다.

초전도 회로 방식은 ‘초전도 상태인 전기 회로 칩의 두 가지 상태’를 이용해 양자비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글과 IBM이 채택했다. 이 방식은 1999년 당시 NEC 연구소에서 일하던 나카무라 야스노부와 차이 자오쉔이 발명했다. 이 방식으로 만든 양자 컴퓨터를 실제로 판매하므로, 현재로서는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전기 신호로 양자비트를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다는 점, 다수의 양자 비트를 자유롭게 배치해 집적할 수 있다는 점, 오류 비율이 1% 이하라는 점이다. 그러나 양자비트가 불안정하고, 절대온도에 가깝게 온도를 낮추어 줄 냉동기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1-186~188쪽)

이온 방식은 ‘이온 한 개 안의 전자가 궤도에 들어가는 두 가지 방식’을 이용해 양자비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몇몇 벤처기업에서 시도 중으로 초전도 방식과 규모는 비슷하지만 연산 정확도가 높다. 이 방식의 장점은 진공 용기에서 구현해 낸, 이온을 이용한 양자비트가 무척 안정적이어서 연산 정확도가 99.9% 이상이라는 점이다. 단점은 진공 용기 하나에 가두어 조종할 수 있는 이온 숫자가 수십 개뿐인 데다 일부 연산(양자 XOR 등)에 엄청난 시간이 걸고, 진공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1-190~193쪽)

반도체 방식은 ‘반도체 기판 안에 가둔 전자 한 개가 가지는 자성의 두 방향’을 이용해 양자 비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인텔이 채택한 방식이다. 아직 규모는 작다. 이 방식의 장점은 고밀도 집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단점은 오류 비율이 아직 높고, 커다란 냉동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1-194~196쪽)

광 방식은 ‘광자 한 개의 두 가지 파동 진동 방향’을 이용해서 양자비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일부 벤처 기업에서 채택했다. 광 방식은 냉동기, 진공 용기가 필요없어 다루기 쉽고, 광섬유를 이용한 통신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실온이나 공기 중에서 작동한다는 점, 고속 연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단점은 광자가 중간에 무언가에 흡수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튕기는 등 오류 비율이 아직 높고, 일부 연산(양자 XOR 연산)은 확률적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1-193~199쪽)

네 가지 방식 중 어떤 방식이 더 발전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몇 가지 방식을 조합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 나타날 가망성도 있다.

 

양자 컴퓨터에 대한 일반적 오해

 

<오해 1> 양자 컴퓨터는 병렬 계산을 하기 때문에 빠르다?

양자 컴퓨터에서 계산이 빨라지는 원리를 설명할 때 여러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 계산’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다. 이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병렬 계산은 현재의 컴퓨터에서도 고속 계산을 위해서 사용한다. 가령, 100가지 계산 문제를 10대의 컴퓨터가 나누어서 10개씩 처리해서 속도를 높이는 식이다. (1-27쪽)

양자 컴퓨터도 병렬 계산을 한다. 그러나 양자가 미시 세계에서 일으키는 ‘중첩’이라는 성질을 이용하므로 처리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여러 가지 풀이를 차례로 더 빠르게 수행하려는 현재의 컴퓨터와 달리, 이 성질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 풀이(계산)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약점이 있다. 여러 풀이 중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취사선택’하여 원하는 계산 결과만 골라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에 빠질 뿐이다. 따라서 양자 컴퓨터는 여러 계산 결과에서 취사선택해 원하는 결과를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만 계산을 빨리 할 수 있다. (1-29쪽)

<오해 2> 양자 컴퓨터는 머지않아 실용화된다?

양자 컴퓨터가 몇 년 내에 실용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오해에 불과하다. 현재 만들어진 양자 컴퓨터는 진정한 의미의 양자 컴퓨터를 흉내 내는 장난감에 가깝다. 한 자리 사칙연산조차 정확히 수행하지 못한다. 더 많은 자릿수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계산의 정확도를 높여서 실용화할 일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20년? 100년? 학자마다 예측이 다를 정도다. (1-31쪽)

 

※ 양자 컴퓨터 공부를 시작한다. 현재 나와 있는 책들을 차례로 읽어 가면서 이 문서에 통합할 예정이다.

(1) 다케타 슌타로, 『처음 읽는 양자 컴퓨터 이야기』, 전중훈 옮김, 김재완 감수(플루토, 2021).

 

다케타 슌타로, 『처음 읽는 양자 컴퓨터 이야기』, 전중훈 옮김, 김재완 감수(플루토,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