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슬로우뉴스가 내 토요일자 매경 칼럼을 요약해 실었다.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우리편 과몰입에서 벗어나 성찰적, 관조적 사고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쓴 글인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소개한 듯하다.
아래에 전문을 옮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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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허풍쟁이들이 각종 음모론을 퍼뜨려서 온라인 숭배자를 불러모은 후, 그 시간과 돈을 착취하는 ‘대규모 환각 체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성의 불빛이 꺼져 가고 공론장이 해체되는 이 시대를 정치학자들은 음모론의 시대로, 철학자들은 개소리의 시대로, 심리학자들은 확증편향의 시대로, 사회학자들은 주의력 착취의 시대로 부른다. 무어라 하든 인류의 마음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다는 건 분명하다.
『합리적 기만의 시대』(아르테 펴냄)에서 미국 문화평론가 어맨다 몬텔은 “비주류 음모론이 주류가 되고, 유명인 숭배가 환각에 이른” 21세기 정신착란을 ‘주술적 과잉 사고’라고 진단한다.
주술적 사고란 “마음속 생각이 외부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간절히 바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그 주요 특징이다. 가령, ‘영끌’해서 잡코인에 넣으면 분명 대박 기회가 와서 돈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는 ‘대박 서사’에서처럼, 말 안 되는 걸 말 되는 이야기로 신화화할 때, 우리는 주술적 사고에 빠져 있다.
주술적 사고는 우리 안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쫓아내는 대신 불확실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를 힘 나게 한다. 이판사판 선거철 같은 아수라장에선 제대로 사고하기 힘들다. 지지 후보의 당선을 위해 유리한 정보는 부풀리고, 불리한 정보는 치워 두어, 어떻게든 승리 서사를 마음에 써 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초조와 불안을 견딜 수 없어서다.
문제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찌그러진 이성을 수리해 성찰을 회복하지 못하는 일이다. 기대와 희망은 인간을 위대하게 하지만, 열광이 지난 후에도 돌이켜 성찰하는 힘이 없다면, 망상과 환각에 젖은 돈키호테가 될 뿐이다.
과잉 사고는 주로 온갖 너저분한 정보를 과도하게 모으거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쓸데없는 정보에 반응해 자기 감정이나 믿음을 부풀려 왜곡할 때 생긴다. 단순 착시나 패턴 인식 오류를 음모론 증거로 바꾼다든지, ‘충격’ ‘단독’ 같은 미끼에 홀려서 속절없이 주의를 착취당할 때 우리는 과잉 사고를 하고 있다.
과잉 사고는 우리가 미지의 위험을 피하게 돕는다. 혹여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고, 우주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지 않은가. 지나친 걱정으로 혹여 있을 위험을 피하는 게 모자라게 걱정해서 죽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에 지나치게 빠져들면, 인지적 경보 시스템이 망가져서 거짓과 진실,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 시시한 일과 뜻깊은 일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지나친 염려증은 우리 마음을 트라우마로 덮어써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불안과 우울만 늘릴 뿐이다.
주술적 과잉 사고는 단 한 번뿐인 삶을 망상과 음모 속에서 쓸모없이 보내게 만든다.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 수시로 쏟아지는 정보에 중독돼 ‘아멘’ 하면서 은혜받고 살지만, 정작 우리가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고 허둥지둥 헤맨다는 느낌에 괴로워하는 이유다.
삶의 가치는 눈앞의 정보에 홀려 허우적대기보다 진정한 관심을 쏟을 대상을 골라 거기에 얼마나 깊게 몰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효율성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효과성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려 애쓰는 일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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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도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좀 있다. 그동안 어맨다 몬텔의 책 세 권을 모두 읽었다. 『워드 슬럿』『컬티시』『합리적 기만의 시대』.
이 책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투쟁 현장들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세 책은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공부(정보)와 자기 체험을 밀도 높게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본능적, 감각적으로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지점이 있다.
아마도 인공지능 시대에 지식은, 그러니까 출판은 이런 식으로 공부가 경험을 향해 나아가고, 경험이 공부를 통해 관조되는 어떤 변증법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게 새로운 건 아니다. 일찍이 몽테뉴나 파스칼이, 베이컨과 홉스가 보여 주었으니까 말이다. 앎을 거리로 내려보내는 68혁명의 모토는 어쩌면 이제야 하나의 일상 문화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고백한 적이 있지만, 나는 이런 사고를 비슷하게도 흉내 내지 못한다. 언제나 거리를 두고 한 발 떨어져서.... 하는 사고 방식에 중독되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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