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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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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욕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로올리이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나보코프의 『롤리타』(문학동네)의 첫 구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의 첫 문장을 꼽으면, 분명히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몇 번을 읽어도 울림이 멈추지 않고,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떨림이 지지 않는다.사랑을 하면 인간의 신체는 예민해진다. 비로소 온몸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게 된다. 혀끝의 미세한 움직임조차 이처럼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사랑은 우리 신체를 낯설게 만든다. 사랑에 빠지면 몸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인다.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 등뼈는 곧추 서고, 피부는 일어서며, 핏방울들은 들끓어 오르지 않는가. 그래서 사..
100세 인생 시대의 노후 전략 요즈음, 아내와 앞날을 이야기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세상의 앞일이나 우주의 미래 같은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고, 주로 ‘100세 인생’을 살아갈 둘의 앞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때때로 미세먼지로 숨 막혀 죽지 않기를, 때때로 전쟁광들에 맞서 평화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 절반을 갓 넘긴 입장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히 살고 평안히 스러지려면, 노후 경제문제 등 사적으로 건사할 일도 한둘은 아니다.수명과 관련해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중보건의 지속적 확산과 의학의 비약적 발달로 기대여명이 실제로 100세가 될 가망성이 높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100세를 최소수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이 한 세기를 살아가는 사회를 인류는 경험..
독서 관련 글을 쓰면 사람들 댓글 중에 꼭 있다 독서 관련 글을 신문 등에 쓰면 사람들 댓글 중에 꼭 있다. (1) 난 반대. 책 안 읽고 사는 인간도 필요(노동하는 사람은 읽을 필요 없음)ㅜㅜ .... 노동하면서 책 읽으면 안 되나요?(2)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인공지능 도움이 꼭 필요.... 누가 뭐래요? 검색하고 독서는 비대립적입니다.^^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건 검색으로, 독서로 얻을 수 있는 건 독서로....^^(3) 유튜브나 사진 한 장으로 정보를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다.... 누가 뭐라 했나요. 책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는 따로 있다고 했죠. 서로 다르다니까요.... 제발 글 좀 다시 읽어 주세요...ㅜㅜ(4) 책보다 중요한 게 많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자꾸 책 읽으라 하지 마라.... 계속 그렇게 사시면 됩니..
본래 산만했던 인간의 뇌, 책 안 읽으면 원시인처럼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뇌는 퇴화한다인간의 뇌는 물렁물렁해상황에 맞춰 변화하는데책 안 읽으면 집중 못 하고원시인처럼 뇌 산만해져 현대인, 디지털 정보에 중독돼상시적인 주의력 결핍에 빠져인간의 사유·행동,독서에 최적화독서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읽기의 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비유는 카프카의 이 편지글에 들어 있다. 어떤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카프카는 생각했다. 판에 박힌 생각을 깨우고 틀에 박힌 영혼을 휘젓는 일종의 비상약처럼 여겼다. 인간은 책을 읽고 책은 인간을 고쳐 쓴다. 읽는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 행..
봄은 언제 시작하는가 입춘대길(立春大吉).봄이 나타나니 크게 길하리라. 문에 붙은 글씨가 씩씩하고 정갈하다. 삿된 기운은 그치고, 더러운 먼지는 돌아서라. 강병인 선생의 글씨다. 글자는 뜻을 전하는 수단이지만, 글씨는 인간을 세우는 예술이다. 선생은 기계 글자로 가득한 차디찬 세상을 인간의 글씨가 넘치는 따뜻한 세계로 바꾸는 일을 지금껏 해 왔다. 작은 인연을 기억해 해마다 기운찬 글씨를 보내는 선생으로부터 항상 나의 봄은 시작한다. 나아가 방을 단단히 붙이고, 돌아와 시를 읽으며 봄을 맞이한다.퇴계 이황의 봄은 언제 시작되는가. 근심 가득한 한밤중, 홀로 잠 깨어 서성이는데, 바람이 매화 향기를 뜰에 채울 때다. 기적을 만난 입술이 감탄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이룩한다. 홀로 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獨倚山窓夜色寒)매화가..
[책과 미래] 삼성SDS의 독서교육 ‘생각의 힘, 독서!’ 어느 도서관 프로그램 제목으로 보이겠지만, 올해 삼성 SDS에서 실시한 신입사원 입문교육 특강 제목이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읽기와 관련한 일을 평생 해왔지만,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독서 관련 강의가 포함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다.일회성 특강만 듣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위즈덤하우스), 『딥 러닝 첫걸음』(한빛미디어) 등 최고경영자가 직접 고른 도서 여덟 권을 읽고, 두 차례에 걸쳐 네다섯 명씩 조를 이루어 독서 토론을 하게 했다. 좋은 사원이 되려면 ‘생각하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힘을 기르는 데 독서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삼성 SDS 같은 정보기술기업이 ‘생각하는 힘’을..
전체주의의 대중심리 며칠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가 열렸다. 법원이 ‘허위사실 유포자’로 판결한 극우주의자 지만원 씨가 연설을 했다. 이미 귀를 씻었으니 그 말을 입에 담지 않겠다. 국회가 세금으로 허위사실을 들어주고 주장하는 공간인가, 하는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공당이라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가세한 점이다. 이종명 의원은 “폭동이라 했던 5·18이 정치세력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김순례 의원은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에 시민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일본군이 난징에서 중국인을 학살한 것..
[책과미래]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이번 주에 우리 모두가 기억할 만한 두 죽음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 사람은 사고였고, 한 사람은 과로였다.한 사람은 두 달 전 태안화력발전소의 빛도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몸이 두 동강 난 채, 무참히 죽었다. 이름은 김용균, 입사 석 달째, 고작 스물네 살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일 뻔했다.일터의 안전을 확보할 절차를 마련하고 관련 비용을 들이는 대신, 발전소 경영진이 ‘위험의 외주화’를 고안하고 집행한 것은 사실상 사고를 유도한 것이나 마찬가지. 그 비틀린 인간성을 규탄해야 마땅하다. 젊은 영혼의 안식을 담보 삼아, 유족들은 ‘죽음의 외주화’를 막는 사회적 합의를 일으켰다. 숙연히 마지막 가는 길을 기릴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