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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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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서지현 검사의 일을 계기로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오이디푸스, 그대가 왕이지만 답변할 권리만은 우리 두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오.” 테이레시아스가 말한다. 테바이를 덮친 전염병의 진실을 말하러 찾아온 예언자를, 성난 군주는 뇌물을 받아먹고 지껄이는 헛소리로 몰아붙인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는 자기가 오이디푸스의 노예가 아니라면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장면이다.파르헤시아(Parrhesia). 희랍어로 ‘진실을 모두 말하기’라는 뜻이다. 성서에서는 ‘담대함’으로 옮긴다. 테이레시아스 같은 태도를 말한다. 정..
피터 드러커의 배신자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8)의 북 콘서트가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렸다. 이 책은 ‘학력에서 경력으로’ 일자리 규칙이 옮겨가는 시대를 맞이하여 개인이 일터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보람 있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조지프 슘페터, 피터 드러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떠한 형태의 전체주의에도 반대한, 자유주의 경제의 철저한 옹호자들이 답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유에 대한 이토록 강한 갈망을 품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여기에 칼 포퍼나 조지 소로스를 추가하면 좀 더 완전한 목록이 될 것이다.콘서트 사회를 보면서 필자가, ‘인문의 힘’을 길러 주는 고전으로 피터 드러커의 경영서를 추천한 까닭을 물었더..
일요일 노이로제 한 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 주에는 주말병인 ‘일요일 노이로제’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조금 보충해서 아래에 옮겨 둡니다. 일요일 노이로제 사람들은 흔히 고요함과 지루함을 혼동한다. 고요함은 바깥의 소리가 침묵하는 상태다. 내면의 귀가 일어서 마음의 소리를 좇는 자리다. 생활의 분주함이 가져오는 생각의 엉킨 실을 끊고 온전히 자아에 집중함으로써, 심신에 거름을 붓는 휴식의 시간이다. 고요 안에 깊이 잠길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나’와 마주서서 이 삶을 새롭힐 수 있다.지루함은 일이 조용한 상태다. 한없이 몰려들던 일들이 어느새 멈추어 방심한 자리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 좋을……. 그런데 문득, 물음이 몰려든다.‘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생각..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대전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올해 초 교토, 나라, 오사카 여행에서 느꼈던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새해를 여행으로 시작했다. 교토, 나라, 오사카 등을 쏘다니면서 온갖 명승과 유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스마트폰 어플로 확인하니 걸어 다닌 거리만 100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교토는 고스란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천년고도답게, 세월을 얹을수록 아취를 더하는 중이다. 부족한 듯 소박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지고, 꾸미지 않아 한적하기에 도리어 마음이 광대해진다. 청수사도, 여우신사도, 금각사도, 메이지신궁의 정원도 좋지만, 교토의 절정은 개인적으로 은각사다. 비바람의 힘만으로 장식한 목조건물들, 굵은 모래흙으로 쌓아올린 탑, 갈퀴로 훑은 듯 꾸민 정원…. 저..
[책과 미래] 공자, 지식 공유혁명을 시작하다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지식 공유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편집자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는 앎을 세상 모든 이들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복무합니다. 지식의 민주화에 헌신하는 공자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면에 실린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려둡니다. ==================================== 공자, 지식 공유혁명을 시작하다 “앎이란 무엇입니까?”(問知)공자는 제자들한테서 이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주말이면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논어』를 읽는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교육이란 스승은 가르치고 제자는 배우는 일이다. 스승의 가르침 자체가 앎의 실체를 이루니, 제자는 배울 뿐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제자들은 공자에..
[책과 미래] 스티브 잡스는 왜 바보가 되라고 했을까 한 주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 주에는 스티브 잡스의 '바보가 되어라'라는 말을 계기로, 인간이 괴로움을 겪을 것이 뻔한데도 왜 안락을 버리고 과감하게 모험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서 써 보았습니다. “바보가 되어라!”(Be foolish!)스티브 잡스의 연설로 유명한 말이다. 이 구절을 ‘바보처럼 우직하라’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우직(愚直)이라면 ‘어리석고 고지식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오던 일의 가치를 믿고 고집스레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우선 머릿속에 떠오른다. 오랜 시간에 걸쳐 돌 하나하나를 옮긴 끝에 기어이 산 하나를 옮기는 데 성공한 어리석은 늙은이(愚公移山)가 생각나는 게 보통이리라. 동양문화의 유전자에서 ‘긍정적 바보’라면, 상식적으로 이 사람이 가장 먼저 발현..
[책과 미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한 주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지난주에는 제가 경험했던 창조성의 비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천재에 대한 낭만적인 신화는 점차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본래 그런 것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천재는 아이디어의 꾸준한 관리자이자 여러 사람과 잘 협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의 설계자에 가깝습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편집자로 일하고 난 후부터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당연히 글 쓰는 방법이 아니다. 작가들이 갖고 있는 창조성의 비밀을 알고 싶은 것이다. 천재에 대한 낭만적 신화 탓인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창조성을 번뜩이는 영감이나 기발한 발상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많은 작..
한 번 더, 미칠 정도로, 확실히, 놀아라 《중앙선데이》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입니다. 이번에는 사뮈엘 베케트와 돈키호테를 빌려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어보았습니다. 발표했던 것을 조금 손보아서 올려둡니다. 한 번 더, 미칠 정도로, 확실히, 놀아라 “인간이란 형편없이 조악할 뿐이다.”『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고통에 불과하다.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죽음이다.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아득한 무의미로 전락한다. 필부라면 말할 것도 없고, 대단한 자라 할지라도 ‘가만한 당신’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예고된 운명을 거스르려 했던 영웅 오이디푸스조차 노년에 이르러서는 절망을 깨달음으로 받는다.“태어나지 않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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