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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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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여백 - 디자인에 대한 몽상(《디자인》 2012년 7월호) 이 글은 작년 7월에 월간 《디자인》에 실었던 글이다. 게재 직후에 원고 파일을 실수로 삭제하는 바람에 사라졌는데, 북디자인과 관련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문득 발견했다. 과거에 쓴 글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다. 여기에 옮겨 둔다. 거대한 여백 디자인에 대해서 쓰려 하니 가장 먼저 거대한 여백이 떠오른다. 순전한 흰색, 어떤 문자도 문양도 그 위에 그려질 수 없는 절대 공간. 한창 산을 좋아했을 때, 새벽에 텐트 문을 열고 나오면 첫 빛으로 자태를 드러내면서 망막을 하얗게 태우고 언어의 길을 단숨에 끊어버렸던 눈 내린 직후의 흰색 산야. 어느 한밤중 문득 자다 일어나 꿈속에서 썼던 아름다운 시를 끼적여보려고 대학 노트를 여는 순간, 형광등 아래에서 날카롭게 빛을 뿜어내 머릿속의 리셋 ..
독서는 능동적인 사유 행위, 스마트폰 시대에도 오히려 늘어날 것 작년 가을,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새국어생활》에 인터뷰했던 것을 최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했다. 몇 가지 팩트는 그사이에 달라졌지만, 생각의 주된 흐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 옮겨 둔다. 독서는 능동적인 사유 행위, 스마트폰 시대에도 오히려 늘어날 것― 민음사 장은수 대표를 만나다 답변자: 장은수(민음사 대표ㆍ편집인)질문자: 차익종(서울대학교 강사)때: 2012. 11. 29.(목)곳: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옥 1층 찻집 제법 붐비는 전철 안이다. 그런데 앉은 이는 물론 선 이까지, 너나없이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찾고, 쓰고, 게임을 하고 있다. 대중교통에서는 으레 신문이나 책을 보겠거니 여겼더랬는데 불과 한두 해 사이에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뜻있는..
지금, 출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기획회의》 기고) 《기획회의》 356호에 여는 글을 썼다. 이번 호 특집은 2013년 출판계 키워드 50으로 올해를 돌이켜보고 내년을 전망하자는 것이다. 해마다 11월 마지막 호는 이 특집으로 꾸려진다. 여는 글 역시 이에 걸맞았으면 했는데, 쓰다 보니 그러지 못하고 조금 우울한 어조가 나와 버렸다. 아마 글을 쓸 때 감기로 몸이 아팠던 탓일 터이다. 어쨌든 아래에 옮겨서 기록해 둔다. 어려운 시절(Hard Times)!산업 자본주의가 확산되던 시절, 고난에 빠진 영국 노동계급의 처참한 삶을 보여주려고 찰스 디킨스는 자기 소설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오늘날 한국출판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누군가 같은 이름표를 붙이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말과 글’의 비즈니스답게 해마다 출판은 수많은 화제들을 쏟아내는데, ..
읽기에 헌신하는 삶을 위한 세 가지 방법 그러니까 스페인 여행 이후, 나는 조금 더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말라가의 푸르른 지중해 바다 앞에서, 문득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는데, 여행 내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읽기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근거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읽는 것이 나의 도약대이자 진지이고 무덤이어야 하는 것이다. 편집자의 삶이란, 읽고 쓰는 일에는 오히려 지쳐 있기 마련이어서 자칫하면 진행하는 책 외에 자발적 독서가 증발하는, 읽기의 사막에 사는 데 익숙해지기 쉽다. 책을 둘러싼 수많은 전략과 전술의 난무가 읽기의 순박한 즐거움을 앗아 버리는 역설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 정신의 정화인 책을 다루는 편집자가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는 기묘한 삶의 아이러니.스페인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앞으로..
왜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는가? ― 굿리즈(Goodreads)의 조사 발표를 보고 왜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는가? ― 굿리즈(Goodreads)의 조사 발표를 보고 지난 7월 9일 세계 최대의 소셜 독서 사이트 굿리즈(Goodreads)는 회원들이 올린 글을 분석해서 책 읽기를 중간에 포기하는 현상에 대한 인포그래픽 하나를 발표했다. 나는 언젠가 이 인포그래픽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려고 에버노트에 저장해 두었는데, 오늘 마침 미국의 다른 사이트에서 이 인포그래픽을 소개한 것을 보고 시간을 내서 블로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인포그래픽은 비록 미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 성향은 아마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료가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 출판계를 부러워하면서 아래에 내용을 정리해 둔다.(여기서 다루어진 책들은 국내 출간 도..
윌리엄 포크너의 드로잉을 만나다 한국 문학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화가라고 하면 서슴없이 『초식』(문학동네, 1997)의 작가 이제하와 『무진기행』(민음사, 2007)의 작가 김승옥을 우선 떠올릴 것이다. 김승옥은 뛰어난 감각으로 민음사 세계시인선 초판(1974)의 표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디자인 작품을 남겼으며, 이제하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표지에 나오는 시인 캐리커처 초상을 시인 김영태와 나누어 맡아 한 시대를 풍미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김명주 옮김, 민음사, 2003), 『압살롬, 압살롬』(이태동 옮김, 민음사, 2012), 『성역』(이진준 옮김, 민음사, 2007), 『소리와 분노』(공진호 옮김, 문학동네, 2013) 등의 작품을 통해서 고향인 미시시피 주의 자연..
알렉산더 칼더 전시회(리움미술관, 2013)를 다녀오다 1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딸아이와 함께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서 알렉산더 칼더의 전시회를 구경하고 온 지도. 느낌은 점점 희미해지고 기억은 갈수록 사라져만 간다. 문자 중독자로 오래 살아온 탓인지 그림이나 사건이 주는 어떤 시각적 충격도 문자화하지 않으면 두 달도 못 가서 고스란히 증발해 버린다. 본래는 다른 글을 쓰려고 앉았지만, 컴퓨터 옆 독서대에 칼더 전시회 브로셔가 놓여서 재촉하는 바람에 전시장 메모들을 급히 정리해 글을 올린다.전시회 브로셔에 따르면,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을 창조하여 현대 조각의 혁신을 이끌었다. (중략) 그는 1920년대에 파리에 머물면서 몬드리안과 미로, 뒤샹, 아르프 등 당시 파리 미술계를 이끌던 작가들과 교류하며 추상 미술과 초현실..
책 읽기가 섹시한 11가지 이유 주말이 되면 에버노트(Evernote)에 저장해 두었던 책 관련 소식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주에 RSS 세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미국의 작가 저스틴 머스크(Justin Musk)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책 읽기가 섹시한 11가지 이유」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역시 하도 책을 읽지 않으니 별의별 아이디어가 다 튀어 나온다. 재미로, 아래에 옮겨 소개한다. 책 읽기가 섹시한 11가지 이유11 reasons why reading is sexy 만약 너희들이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지 않는다면, 지금으로부터 5년이 지나도 너희들 인생은 요 모양 요 꼴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존 우든(John Wooden) 1. 욕망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책 읽기 역시 그렇다.)2. 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