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960)
[책과 미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한 주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지난주에는 제가 경험했던 창조성의 비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천재에 대한 낭만적인 신화는 점차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본래 그런 것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천재는 아이디어의 꾸준한 관리자이자 여러 사람과 잘 협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의 설계자에 가깝습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편집자로 일하고 난 후부터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당연히 글 쓰는 방법이 아니다. 작가들이 갖고 있는 창조성의 비밀을 알고 싶은 것이다. 천재에 대한 낭만적 신화 탓인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창조성을 번뜩이는 영감이나 기발한 발상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많은 작..
[풍월당 문학강의] 피의 값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잘 알아두시오.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나도 모르겠소. 내 비록 고삐를 잡고 있기는 하나 말들은 이미 주로 밖으로 멀리 벗어난 느낌이오.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고, 내 가슴속에는 벌써 공포가 노래 부르며 격렬한 춤을 추려 하니 말이오. 아직 정신이 있을 때 친구들에게 말해두고 싶소. 내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정당한 행동이었소.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1021~1027행)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몫의 운명을 안고 태어납니다.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고 자기 운명을 새롭게 쓰려는 영웅들의 분투는 비극적 파멸을 불러들이죠. 하지만 영웅들의 불쌍한 최후는 우리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터질 듯한 희열과 고귀함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
한 번 더, 미칠 정도로, 확실히, 놀아라 《중앙선데이》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입니다. 이번에는 사뮈엘 베케트와 돈키호테를 빌려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어보았습니다. 발표했던 것을 조금 손보아서 올려둡니다. 한 번 더, 미칠 정도로, 확실히, 놀아라 “인간이란 형편없이 조악할 뿐이다.”『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고통에 불과하다.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죽음이다.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아득한 무의미로 전락한다. 필부라면 말할 것도 없고, 대단한 자라 할지라도 ‘가만한 당신’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예고된 운명을 거스르려 했던 영웅 오이디푸스조차 노년에 이르러서는 절망을 깨달음으로 받는다.“태어나지 않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
[책과 미래] 뻔뻔함과 부끄러움 “노인장! 눈 깜짝할 사이에 개들에게 큰 봉변을 당할 뻔했구려. 그랬다면 그대는 내게 치욕을 안겨주었을 것이오.”(『오뒷세이아』 14권 37~39행)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오뒷세우스는 오랜 방랑 끝에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귀향한다. 거지꼴을 한 그가 찾은 곳은 고향 이타케 성 외곽에 있는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집이다. 그런데 추레한 늙은이가 집 앞을 기웃대자 사나운 사냥개들이 먼저 그에게 달려든다. 에우마이오스가 재빠르게 바깥으로 나왔기에 망정이지, 천하의 오뒷세우스가 개한테 물리는 망신을 살 뻔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에서 후세가 기억하는 것은 오뒷세우스의 봉변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나그네의 고통을 자신의 치욕으로 받아들인 에우마이오스의 환대다. 이 수치심이 윤리의 출발을 이루기 때문이다. ..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백민석의 아바나 여행기 당신은 볼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왔다. 아바나에서 보내는 일상이 벌써부터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볼거리가 많다는 것은 당신이 소파에 앉아 줄곧 텔레비전과 휴대전화만 들여다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에 볼거리가 없다는 말은 당신 스스로 볼거리를 찾아 나서고, 스스로 볼거리를 창출하고, 스스로 볼거리가 되기 위해 엉덩이를 떼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바나의 시민들이 거실에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리고, 플로리다 해협을 등지고 앉아 트럼펫을 불고, 광장에 이천 명씩 모여 살사 댄스를 주고, 프라도 거리에서 시민 노래 경연을 벌이듯이. 글은 이인칭으로 쓰여 있다. 소설도 아니고 쿠바 아바나에 대한 여행기인데, 웬 이인칭?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고르는 민석과, 사진을 고른 후 자신한테 중얼거..
[책과 미래] 휴머리즘시대의 창조 교육 인간과 기계가 지능적 협업을 통해서 새로운 종류의 일을 창출하는 ‘휴머리즘(human+algorithm)’의 시대다. 인공지능은 기존 데이터 패턴을 빠르게 파악하고, 거기에 인간이 창조성을 더해서 눈부신 성취를 얻자는 말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 자신의 고유성을 촉진하는 쪽으로 진화할 것을 인류에게 요구한다.인공지능과 공진화하려 할 때 ‘인간의 고유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토머스 프리드먼의 『늦어서 고마워』에 중요한 실마리 하나가 나온다. ‘정지 또는 휴식하는 능력’이다. “기계는 정지 버튼을 누르면 멈춘다. 그러나 인간에게 정지 버튼을 누르면 무언가를 시작한다.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하고, 전제를 다시 생각하며, 무엇이 가능한지 다시 구상하고, 무엇보다 가장 깊이 간직하고 있는 믿..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하루 종일 논물 위에 엎드려 피를 뽑으며 생각했어요. 밥이 내 입으로 들어올 때 이젠 이 모든 것들이 오버랩 될 거야, 하고요. 갓 발아한 볍씨, 연둣빛 모판, 발가락 사이로 감겨드는 논흙의 감촉, 흙때 낀 손톱, 끊어질 듯한 허리,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 논둑을 걷는 아이들의 물그림자……. 체감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들은 쉽게 망각되지 않습니다. (중략) 머릿속으로 아는 것의 뿌리는 참 얕아서, 알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 있겠구나 싶어요. 내가 보는 세상의 피상성, 상투화가 은폐하는 삶의 세부, ‘안다’는 생각이 일으키는 착시와 결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는 책이 있다.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
[매경칼럼] 스스로 공부하는 인간 “지적 욕구에 불타던 터라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세미나 수업을 많이 신청했습니다. 그리스어로 플라톤을 읽고,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고, 프랑스어로 베르그송을 읽고, 독일어로 비트겐슈타인을 읽었습니다. …… 모두 소수학생만 듣는 수업이어서 결석은 불가능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했던 셈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나오는 동경대 수업 이야기다. 요즈음 대학을 생각하면 정말 꿈같아 보인다. 이 회고는 학부 수업만으로 다치바나 같은 지적 거인을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등교육의 목표는 ‘공부한 인간’이 아니라 ‘공부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다. 대학은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들은 후, 졸업 단추를 누르면 직장이라는 상품이 쏟아지는 자판기가 아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