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천막 노동자, 평등한 공동체를 꿈꾸었다
카렌 암스트롱,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정호영 옮김(훗, 2017)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을 버리고 평범한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살아감으로써, 바울은 예수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졌던 것과 비슷하게 “자기 비움”, 즉 매일의 케노시스(kenosis)를 실천했던 것이다.(77쪽) 전독(全讀)하는 저자 중 한 사람이 카렌 암스트롱. 새벽에 읽어나 미루어 두었던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정호영 옮김, 훗, 2017)를 완독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는데도, 훈련된 나의 기독교적 영성은 별로 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듯하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성경 구절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
어느새, ‘회사 인간’
한 달에 한 번, 《중앙선데이》에 쓰는 칼럼입니다.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 회사에 길들여진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새, ‘회사 인간’ 연초에 휴가를 갔다. 새벽 5시, 여명이 있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뜨인다. 느긋한 게으름을 피우자고 마음먹은 것도 별무소용이다. 신체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작은 등을 켜고 가져간 책을 읽는다. 가족들 숨소리가 고르다.회사를 나왔을 때도 한참 그랬다. 몸을 추스르려 동생이 사는 시골마을로 내려갔다. 굳이 출근할 필요가 없는데도, 아침 8시면 몸이 지하철에 출렁이는 것 같고, 12시에는 어김없이 배가 고프고, 오후 4시에는 무조건 지루하고, 7시가 되면 술 벌레가 창자를 건드렸다.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나는 여유와 한적을..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대전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올해 초 교토, 나라, 오사카 여행에서 느꼈던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새해를 여행으로 시작했다. 교토, 나라, 오사카 등을 쏘다니면서 온갖 명승과 유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스마트폰 어플로 확인하니 걸어 다닌 거리만 100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교토는 고스란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천년고도답게, 세월을 얹을수록 아취를 더하는 중이다. 부족한 듯 소박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지고, 꾸미지 않아 한적하기에 도리어 마음이 광대해진다. 청수사도, 여우신사도, 금각사도, 메이지신궁의 정원도 좋지만, 교토의 절정은 개인적으로 은각사다. 비바람의 힘만으로 장식한 목조건물들, 굵은 모래흙으로 쌓아올린 탑, 갈퀴로 훑은 듯 꾸민 정원…. 저..
이웃이란 옆집에 산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만들어진다
이웃이란 옆집에 산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만들어진다테리 이글턴의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 윤리학 연구』(김준환 옮김, 도서출판 길, 2018)을 읽다 이글턴의 새 책이 나왔다.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 윤리학 연구』, 김준환 옮김(도서출판 길, 2018). 오후부터 읽기 시작, 손에서 놓지 못하고, 저녁식사 때 잠깐 쉰 후, 지금껏 내리 읽었다. 라캉의 삼분법(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 기대어, 인류의 윤리적 사유를 절개하고 접합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상가들 중 흥미로운 몇 명이 아직 남았지만, 일단 한겨레 기사 눈팅~~~^^;;; 최원형 기자의 핵심 정리. 이글턴은 ‘자신의 욕망을 고수하라’는 라캉의 표어에 일부 수긍하면서도, “윤리는 욕망이 아닌 사랑에 대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