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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한 입의 즐거움, 거의 모든 디저트의 역사

 

디저트의 시대가 열리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은 디저트를 ‘정찬이나 저녁 뒤에 나오는, 과일・사탕 등으로 이루어진 코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디저트라는 단어는 프랑스어 ‘desservir(식후에 식탁을 치우다)’에서 유래했다.”

영국의 음식문화 전문 작가 제리 퀸지오의 『디저트의 모험』(박설영 옮김, 프시케의숲, 2019)을 읽는데, 딸아이가 불쑥 말한다. “다 읽고, 나 줘!” 요즈음 인스타그램 등에서 예쁜 디저트 사진 올리는 게 유행이라고 덧붙인다. 후배들하고 밥 먹을 때, 종종 듣곤 했다. 배불리 먹고 직후에도 디저트 들어갈 배는 따로 있다고. 방금 전까지 다이어트를 심각히 논하면서 반 그릇만 드신 듯한데……. 바야흐로 ‘디저트의 시대’다. 

다이어트에 실패할지언정 디저트에 뒤져선 감히 힙(hip)함을 자부하지 못한다. 디저트는 식사를 끝낸 후 곁들이는 안 먹어도 그만인 입가심이 아니라, 식사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완벽한 음식으로 승격됐다. 유럽의 귀족들이 한때 “정찬을 끝내고 설탕절임과 포도주를 즐기기 위해 정원을 한가로이 걷는” 유희를 사랑했듯, 식당을 나와 잠깐의 산보로 배를 진정시킨 후 디저트 전문점에서 페이스트리, 타르트, 케이크, 아이스크림, 마카롱 등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미각적 즐거움을 분별하려 하지 않는다면, 취향의 첨단을 논할 수 없다. 와인, 커피, 막걸리, 싱글몰트, 홍차 등에 이어 이제는 모두 디저트를 이야기하려는 중이다.

제리 퀸지오의 『디저트의 모험』(박설영 옮김, 프시케의숲, 2019)

 

 

중동의 셔벗, 중국의 월병, 일본의 모치.... 디저트는 동서양 모든 지역에 존재 
맛난 사진·역사·일화도 소개

『디저트의 모험』에 따르면, 짭짜름한 주 음식의 마지막 또는 사이사이에 절인과일 같은 달달한 음식을 즐기는 음식 문화는, 중동의 셔벗이나 중국의 월병이나 일본의 모치에서 보이듯, 동서양 모든 지역에 나타난다. ‘단짠단짠’은 늘 ‘맛있음’의 중핵을 이루고, 인류는 과일이나 꿀 등을 통해 이를 즐겨왔다. 하지만 달달한 후식을 ‘별도로’ 즐긴다는 발상은 현대에 출현했다. 중세에도 물론 웨이퍼, 커스터드, 파이, 마멀레이드, 사탕과자 등 디저트의 원형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은 짭짤한 메인 요리들과 함께 테이블 위에 한꺼번에 차려낸 후 골라 먹는 음식이었지 후식이 아니었다. 한 코스씩 요리를 제공하는 러시아식 상차림이 유행한 19세기 이후에도 디저트는 “앞선 코스가 끝난 뒤에 나오는 코스”를 뜻했을 ‘따로’라는 생각은 없었다.

이 책은 설탕, 크림, 얼음, 케이크 등으로 유형화한 온갖 디저트들을 재료로 삼고, 이들 각각의 시대적 변천과정 및 관련 일화들을 버무려서 디저트의 역사를 솜씨 좋게 요리해 나간다. 우유술, 실러버브, 플리머리, 블랑망제, 커드, 유장, 정킷, 스노 크림, 트라이풀, 커스터드, 아이스크림 등 우유를 이용한 디저트만 해도 한없다. 케이크 역시 수없이 많은 가지들이 지역별로 존재한다. 적잖은 사진들이 책에 이미 실려 있지만, 낯선 단어가 나올 때마다 검색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흥미를 돋우는 에피소드들도 풍부하다.

중세 유럽 귀족의 만찬 장면

축제 때 밀가루 묻힌 사탕과자(confetti)를 던지는 과정에서 이성을 다치게 하고 정장을 더럽히는 등 소동이 잇따르자 런던의 문구회사가 이를 색종이조각(confetti)으로 대체함으로써 오늘날의 축제 퍼레이드와 같은 장면이 비로소 나타났다. 마지팬은 “아몬드와 설탕을 섞어 모양을 내고 매만지고 틀을 잡고 색깔을 입”혀 햄과 베이컨부터 배와 오렌지에 이르는 모든 것을 빚어내는 요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손님들이 자신의 마지팬 “조각품을 한 점도 남김없이 먹어치우”자 불평을 터뜨렸다. “이제 맛이 좋지 않은 다른 재료를 찾을 생각이다. 그래야 내 작품이 온전히 살아남을 것 같다.”

 

운송업·식품장비 발달하며 대중에게 급속히 퍼져나가 

디저트는 우아하다. 하지만 누군가 노동하지 않으면 디저트는 세상에 나올 수 없다. “디저트를 만드는 일은 하인”이 하고, 이를 즐기는 것은 주로 “부유한 사람들의 몫”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대중화로 인해 운송업이 발달하고 기계장비가 조달되면서 만들기 쉽고 저렴한 디저트가 늘어났다. “모두를 위한 디저트”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아이스박스가 보급되고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발명되면서 상류층만 즐겼던 아이스크림이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갔고, 불 조절 장치가 달린 가스스토브 등 새로운 오븐과 함께 교반기, 계량컵, 베이킹파우더 등이 보급되자 홈베이킹 혁명이 일어났다.

카두시어스 P. 럼의 「디저트 No.4」

20세기에 들어 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정교한 테이블 세팅, 화려한 은 식기, 줄줄이 이어지는 요리”는 “서너 개 코스”로 이루어진 간소한 식사로 대체되었다. 요리하고, 서빙하고, 한가로운 안주인 노릇까지 1인 3역을 감당했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자 공장 생산 믹스제품으로 ‘나만의’ 케이크와 디저트를 만드는 DIY 요리문화가 확산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신선한 제철 식재료”라는 본질에 집중하면서도 다채롭고 창의적인 실험, 간결하고 아름다운 플레이팅을 시도하는 “누벨퀴진”이 유행하고, 이어서 스페인의 한 시골 마을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요리에 접목”하는 ‘분자요리’가 일어섰다. 종래의 틀을 벗어나 요리가 창의성을 띠자 새로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음식 먹는 사람과 시중드는 사람이 묻고 답하면서 격의 없이 대화하는 식당의 문화혁명이 일어났다.

아름다운 디저트들

디저트 민주주의 시대가 왔다. 누구나 부담 없이 디저트를 즐길 수 있도록, “포크로 찍어 먹고 스푼으로 떠먹고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디저트가 시도되는 중이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소수의 즐거움을 모두의 즐거움으로 바꾸어가는 데 있다. 『디저트의 모험』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