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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내 인생의 노래] 조앤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the river in the pines)」

인생에서 내 돈으로 첫 번째로 산 기계는 오디오였다. 인켈 캐논. 가격은 두 달치 과외비인 40만 원쯤이었던 것 같다. 앰프, 턴테이블, 테이프 플레이어, 라디오, 스피커 등이 각각 분리되는 기계였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친구한테 선물로 받은 LP 레코드 앨범 때문이었다. 조앤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the river in the pines)」. 나의 상처이자 추억이자 자부심.



턴테이블에 올려 수천 번 들었지만, 이 앨범은 지금도 애지중지 가지고 있다. 선물한 친구가 자꾸 들었느냐고 묻는데, 턴테이블이 없어 들을 수 없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몇 번을 얼버무렸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열 달 할부로 기계를 들여 조립한 후, 처음 소리가 집안을 울렸을 때의 감동은……. 솔직히, 거의 울 뻔했다.


오오, 메리는 아가씨였죠./ 새들이 노래를 시작할 때,/ 이른 봄에 피어나는 장미보다/ 그녀는 더 예뻤어요./ 그녀의 머릿속은 즐거움과 행복뿐이었죠./ 아침에 더 맑고 밝았어요./ 솔숲 사이로 흐르는 시냇가 청년이/ 그녀의 연인이었으니까요.(Oh, Mary was a maiden/ When the birds began to sing/ She was sweeter than the blooming rose/ So early in the spring/ Her thoughts were gay and happy/ And the morning gay and fine/ For her lover was a river boy/ From the river in the pines) 


바늘을 타고 흘러나오는 청명한 애절함의 절정. 인생의 봄은 짧디짧은 법. ‘was’라는 과거형이 저토록 슬플 수 있음을 처음 느꼈다. 험란한 세상은 즐거움과 행복만 알던 소녀를 슬픔과 불행의 존재로 만든다. 


사람들은 바위투성이 해안에서 찰리의 시신을 발견했죠. 조용히 물결이 일렁이고, 바람결에 삼나무가 속삭이는 곳.(They found his body lying/ On the Rocky shore below/ Where the silent water ripples/ And the whispering cedars blow.) 


맑디맑은 봄 하늘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절망을 견디는 무심한 절제. ‘조용히’와 ‘속삭이는’으로 표현된 자연의 무정함이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의 밀도를 한껏 고조한다. 


차를 몰고 지나는 길에 찾아가는/ 외로운 무덤 하나./ 어느 맑고 밝은 날 아침,/ 사람들은 무덤에 야생화를 심었죠.(There’s a lonely grave that’s/ visited by drivers on their way/ They plant the wild flowers upon it/ In the morning fair and fine.)


그러나 참혹한 죽음도 안식을 갈망하는 꽃들을 이기지 못한다. 참담한 세상살이도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누르지 못한다. 인간은 총칼이나 물질이 아니라 꽃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비정한 현실에 맞서는 시적 목소리가 마음의 거문고를 끝도 없이 울린다. 맑고 밝은 날은 기어이 다시 온다.


조앤 바에즈


『구별 짓기』에서 피에르 부르디외가 통찰한 바 있듯, ‘문화적 취향’이야말로 철저히 계급적이다. 전국 방방곡곡, 온갖 배경을 가진 스무 살들이 성적순으로 호명되어 우정의 이름으로 묶인 세계에서 서울 변두리 달동네 출신이나 갓 상경한 시골뜨기한테 무엇을 먹고, 입고, 읽고, 보고, 듣느냐 하는 것만큼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있던가. 누군가는 집마다 턴테이블이 당연했으나, 누군가는 친구의 선의를 어쩌지 못하는 부끄러움에 안절부절못하지 않았는가.

교정에서도 술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민중가요와 트롯이 넘쳐났지만, 언어를 다듬고 색채를 조직하고 형태를 분별하고 소리를 조련하는 문화적 세련을 향한 갈망이 없을 수 없었다. 주요 클래식 음악들을 골라 들으며 외던 친구도 있었고, 헌책방 등에서 산 외국 화집을 뒤지고 전시회 찾아다니며 그림 보는 소양을 길렀던 친구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창비, 청하 등에서 나온 소설과 시집 전체를 구입해 읽는 것은 다수가 비슷했다. 아득히 들려오는 우렁찬 구호를 배경음 삼아 수업도 듣지 않은 채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에 열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앤 바에즈, 골든 프라이즈(태광레코드, 1980)


돌이켜보면 알바를 뛴 돈으로 오디오를 갖춘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문화 자본에 대한 독립선언이기도 했고, 변두리 출신 소년의 마음에 맺힌 채 지금껏 남아 있는 흉터이기도 했다. 영화 「1987」을 본 후 ‘노래를찾는사람들’ 3집을 즐기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제곡이 담긴 퀸의 ‘빽판’의 먼지를 털고 기어이 들어야 만족하는 심사가 이로부터 나왔다. 노래방에서 이문세의 「이별 이야기」나 「광화문 연가」 등을 불러야 집에 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모두 당시에 저 기계로 ‘처음’ 들었던 곡들이다. 하지만 역시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절대적이다. 이 노래로부터 나 자신이 비로소 문화적 직립을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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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에 실은 에세이 ‘내 인생의 노래’입니다. 조금 보충해서 여기에 올려둡니다. 


주간경향 1319호 : 2019.03.25